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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Way

 

자기 길을 가는 사람도 처음부터 자기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다양한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파란만장한 삶과 절치부심의 고뇌 끝에 자기 길을 찾은 것이다. 내가 걸어가는 길 ‘My Way’는 내 이야기 ‘My Story’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자신만의 고유한 역사(My History)를 축적해 나갈 때 생기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방탕하게 시작해 방도에 이르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나의 길을 찾기 위해 가장 먼저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할 일은 대책 없이 방탕(放蕩)’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 ‘방탕은 방만(放漫), 방자(放恣)와 친구 사이다. 다시 말해서 가까운 사이라는 뜻이다. 맺고 끊는 데가 없이 제멋대로 풀어져 생활하는 방만방탕을 부채질 한다.

 

방탕은 자만과 교만을 수준을 넘어 오만방자한 상태로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지금 이 순간의 욕망을 쫓아 생활을 하는 것이다. ‘방탕을 어느 정도 경험한 사람이 만나는 6방 시리즈 중에 두 번째 방은 바로 방랑이다. ‘방랑은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표류(漂流)나 유랑(流浪)이다. 뚜렷한 목적의식 없는 떠돌이 생활이기에 그 끝도 쉽게 보이지 않는다. ‘방랑은 방류(放流)하거나 방목(放牧)해서 방생(放生)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기대를 갖고 뭔가를 시작하지도 않는다. 그냥 발길 닿는데로 가서 해가 저물면 하룻밤을 지내고 해가 뜨면 다시 방랑을 시작할 뿐이다. 그 다음 단계인 방황’(彷徨)은 마음을 다잡지 않고 풀어 놓아 버린 방심’(放心)한 상태로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는 것이다. ‘방랑과는 달리 언젠가는 방향(方向)을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방황은 이전과는 다른 생각과 행동을 전개할 것이다. ‘방황은 이전과는 다른 생각과 행동을 전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곳저곳을 헤매며 방황하다보면 뜻하지 않은 만남과 마주침에 직면하게 되고 예전에는 없었던 문제의식이 생기면서 내 삶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방황을 거듭하다보면 어떤 사람이나 장소를 찾아가 이런 저런 의문을 풀기 위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문’(訪問)을 하게 된다.

 

방문’(訪問)은 우선 방문(房門)이다. 이쪽 방에서 저쪽 방으로 드나들어야 한 쪽 방에서는 할 수 없었던 생각을 할 수 있다. 여기서 방은 다방면(多方面)으로 뚫린 지역이 될 수도 있고 장소나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방방곡곡으로 방황하면서 다방면의 장소와 사람을 만나 의문을 품고 질문하면서 방문하는 것이다. 이처럼 방황하며 방문을 하다보면 방향(方向)이 찾아온다.

 

어제와 다른 의문을 품고 이제까지 던져보지 않은 질문을 던질 때 이전과 다른 방의 문이 열리면서 내가 찾는 방향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즉 무엇인가를 지향하고 꿈을 꾸는 사람이 방황하면서 방문을 하다보면 방향은 반드시 찾아온다. ‘방향을 찾기 위해서 그동안 방황하고 색다른 질문을 던지면서 방문했던 것이다.

 

방황방문을 통해 찾은 방향이라야 목적을 달성하는 구체적인 방법방편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무수한 실험 끝에 나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여러 번 반복하다보면 방법은 나만의 방편이 된다. ‘방편방법에 나름의 철학과 열정이 가미되어 창조된다. ‘방편은 내가 하면 편리한 방법이자 남과 다르게 일을 추진하는 나만의 방식’(方式)이다. 그리고 방식이 축적되면 비로소 방점’(傍點)을 찍고 극도의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는 길, ‘방도’(方道)가 열리는 것이다.

 

내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 내 길을 찾는다.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찾은 나만의 길, 우여곡절의 궤적 속에서 찾은 가슴 뛰는 길이 바로 방도. 방도(方道)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어떤 시련과 난관이 닥아 와도 헤쳐 나갈 수 있는 방안’(方案)이 있다. ‘방도를 찾기까지의 여정이 바로 내가 살아온 역사(My History). 내가 살아온 역사는 곧 내가 살아오면서 만든 나의 이야기(My Story)가 축적되어 생긴 삶의 족적(足炙)이다. 결국 내 삶의 이야기(My Story)가 축적되어 나의 역사(My History)가 탄생하고, 나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길이 곧 나의 길(My Way)이 된다.

 

그저 내 몸에 체화된, 그래서 나와 한 몸이 된 삶이기 때문이다. ‘방도를 걸어가는 사람에게 진리를 아십니까?’ 라고 물어보면 그들은 그저 묵묵히 자기 길을 갈 뿐이라고 말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은 어떤 것이냐? 나의 분수를 알고, 나의 사명을 자각하고, 나의 설자리가 어디고, 나의 할이 무엇이고, 나의 나아갈 길이 무엇이고, 나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이고, 나의 능력과 천분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자기의 형편과 처지에 맞게 행동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나를 알지 못하는데서부터 오판이 생기고, 잘못된 행동을 저지르고, 허세와 허욕을 부린다. 자기를 객관화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자기를 냉철히 관찰하는 총명함이 있어야 한다. 자기를 과대평가 하지도 말고, 과소평가 하지도 말고 공정하게 평가하는 슬기를 지녀야 이 시대의 현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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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에도 우리의 기도는 멈추지 않는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는 충남 강경 옥녀봉에서 찬송과 기도의 부르짖음이 울려 퍼졌다. 114차 총회(총회장 이욥 목사)는 지난 5월 10일 강경 옥녀봉 ㄱ자 복원교회에서 신사참배거부 교단기념일 감사예배를 드렸다. 이날 예배는 81년 전, 1944년 5월 10일 일제총독부 함흥재판소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교단이 폐쇄된 날을 기리고 믿음의 선진들의 뜻을 되새기는 행사로 진행했다. 1부 감사예배는 총회 교육부장 김성렬 목사(만남의)의 사회로 평신도부장 김태욱 목사(두란노)가 대표로 기도했다. 이어 전국여성선교연합회 글로리아합창단이 찬양하고 총회 여성부장 하숙현 권사(범일)가 성경을 봉독한 뒤, 이욥 총회장이 “하나님 말씀 순종에 목숨 건 사람들”(렘 38:5~6)이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욥 총회장은 설교를 통해, “예레미야는 제사장의 아들이자 선지자로 무너지는 유다 왕국의 마지막을 보며 애통한 선지자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백성들의 불순종과 왕국의 멸망을 예언하며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선포했다”며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고난과 수난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교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