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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건 선교사와 함께 하는 나가사키 땅 밟기 (3)

오오무라 지역 순교지

(스즈타 감옥터)

 

스즈타 감옥은 오오무라의 남쪽으로 이사하야로 통하는 국도 근처의 작은 언덕 위에 있다. 원래의 오오무라 감옥은 혼코우지 감옥이라고도 불리며 3대 번주인 스미노부의 때인 케이안 원년(1648)에 나가사키 봉행의 요청으로 외국인 죄수들과 특별히 막부의 명령으로 체포한 죄인들을 가두어두기 위해 건립됐다. 오오무라가의 기록에 의하면 기존의 감옥이 타마치에 있어 그것을 부쿠로코지로 이전했다.

 

겐나 년도(1618)에 나가사키 부교의 명에 의해 스피노라 선교사와 신도들을 부쿠로코지의 감옥에 수감하였다가(16198월 조선인 베드로 아리조의 참외 반입사건으로 인해) 이들을 스즈타 감옥(1619)으로 이감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현재는 그 부근에 1959년에 세워진 높이 6m의 십자가 탑이 세워져 있다. 이 감옥은 16181213일에 나가사키에서 체포된 선교사들과 신자들 35명이 161987일부터 162299일까지 수감되었던 장소로 알려지고 있다.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3인이 사망하고 스피노라 선교사 등 24인은 162299일 나가사키로 호송되어 다음날인 10일 나가사키의 니시자카 언덕에서 순교하였고, 프랑코 선교사 등 8명은 동년 912일 오오무라의 호코바루에서 순교했다.

 

(처자 이별의 바위)

 

처자 이별의 바위는 국도에서 좁은 골목길로 조금 들어간 니시노쇼지 공민관 앞의 묘지에 있다. 1657년 잠복 키리스탄이 발각된 대 사건 코오리 쿠즈레와 관계가 있는 장소이다.

 

1657년 코오리 쿠즈레 당시 체포되어 오오무라 감옥에 수감되었던 131명은 검거된 다음해인 1658년 오오무라 감옥으로부터 200인의 무사가 엄중히 호송하는 가운데 처형을 위해 호코바루 처형장으로 끌려가게 됐다. 도중에 처자를 비롯한 가족과 친척들과의 최후의 이별이 허용됐는데 이곳에서 마지막 이별을 나누며 눈물을 흘렸던 장소로, 처자 이별의 눈물바위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전해지고 있다. 그 당시 너무도 많은 눈물이 흘러서 지금도 이끼가 끼지 않는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곳에는 원래 일곱 개의 바위가 있었는데 태평양 전쟁으로 세 개가 분실되고 현재는 네 개만이 남아있다.

 

호코바루 처형장에서는 참수형이 결정된 406인 가운데 131인이 1658727일 처형되었다. 처자 이별의 바위에서 가족들과 눈물로 이별을 고한 순교자들은 형장에 도착하여 다시 한번 더 엄중한 조사를 받은 후 4열로 줄을 지어 무릎 꿇은 채 차례로 참수형을 당하였다.

 

(호코바루 처형장)

 

순교자들은 한 마디의 신음 소리도 내지 않고 묵묵히 죽음을 맞이했다고 전하는데 처형 당시 칼이 목을 칠 때에 마치 오오무라의 키리스탄 근절을 고하는 듯 젖은 수건을 힘주어 털어내는 것처럼 -, -하는 소리만 들렸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는 순교자 기념탑이 세워져 있는데 정면에는 전국의 순교자를 기념하는 동판 릴리프가 그리고 후면에는 코오리 쿠즈레의 순교자를 기념하는 동판 릴리프가 조각되어 있다.

 

호코바루 처형장의 순교 기념비 바로 앞쪽에 조선 출신의 순교자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 뒷면에는 조선인 순교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코오리 쿠즈레 당시 호코바루 처형장에서 처형된 131인의 순교자들의 머리는 소금에 절여 20일간 오오무라의 주민들에게 본보기로 전시됐다. 게시문에는 131인의 순교자들의 이름과 함께 이자들 131인은 크리스천 신도로서 단죄했다라고 적혀있었다고 전한다. 가족이나 친척에 의해 유체가 도난당하지 않도록 아시가루(최하급 무사) 4인과 백성 2인을 두어 2사람씩 교대로 번을 서게 했다고 한다.

 

머리 무덤은 오오무라 공항에서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쪽으로 향하는 국도의 큰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조금 들어간 곳에 있다. 코오리 쿠즈레 당시 목이 잘린 131인의 순교자의 몸체를 사쿠라바바의 인적이 드문 대나무 숲 속에 2곳의 구덩이를 파고 매장하였다고 하는데, 매장 후 3일만에 몸체를 다시 파내어 오오무라만에 버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600m 정도 떨어진 국도 부근의 하라구치의 에노키노네모토에 코오리 쿠즈레 당시 순교자 131인의 머리가 매장된 것으로 전해지는 순교자 머리 무덤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몸체 무덤에서 멀리 떨어져 매장한 이유는 죽은 크리스천이 요술을 부려 몸체와 머리가 붙어서 다시 살아날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현승건 선교사

나가사키순교기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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