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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건 선교사와 함께 하는 나가사키 땅 밟기 (4)

운젠 지옥 순교지

  (미미사이 정류소)

나가사키로부터 운젠지옥으로 보내지는 것을 야마이리(입산)’라고 불렀는데 나가사키로부터 모기로 나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오바마에 상륙하여 운젠에 올라갔다고 전해진다. 야마이리의 신자들은 한쪽 귀를 잘린 채 끌려갔는데 이는 탈주하더라도 곧바로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오바마로부터 운젠을 향해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도중에 크리스천의 귀를 잘랐던 옛 관청 건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미미사이(귀 자르기)정류소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순교자의 오솔길)

오바마와 구치노츠 그리고 아리에로부터 운젠으로 올라오는 길들이 합쳐지는 지점에 여기부터 운젠이라고 하는 석주가 있고, 그 옆에 이 길을 따라 운젠지옥으로 끌려가는 크리스천들이 걸었다고 하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1616년 시마바라에 영주로 임명 받아 오게 된 마츠쿠라 시게마사는 처음엔 기독교의 선교를 묵인하였다. 시마바라성의 건설을 위해서는 영민들의 협력도 필요한데다 크리스천이 많은 시마바라를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에도에의 참부 후에 갑자기 박해를 시작하였다. 토쿠가와 이에미츠로부터 질책을 받은 것이 원인이었다.

 

 

 

 

토자마(변방지역) 다이묘들을 갈아치우던 당시의 정세에서는 막부의 명령을 위반한다는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점차로 개종하지 않는 크리스천에 대해 탄압이 증가되어갔다.

 

1627년부터 1631년까지 마츠쿠라 시게마사는 운젠지옥의 펄펄 끓는 열탕을 개종의 고문에 사용하였다. 나가사키 봉행(시장)인 타케나가도 나가사키의 감옥에 있는 크리스천들을 운젠지옥으로 연행하여 배교하도록 강요하였다. 열탕에 담그다 꺼내기를 반복하면서 10일에서 1개월간에 걸쳐서 고통을 가했다. 아리마 하루노부의 가신인 파오로 우치보리 등 16인이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운젠지옥에 세워진 십자가 순교비)

 

1629년 나가사키에서 체포된 64명의 크리스천들이 운젠으로 끌려가 지옥고문을 받게 되었다. 그 가운데 27명은 여성이었는데 조선인인 이사벨은 13일에 걸친 끓는 온천물의 고문에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죽음이 임박하자 순교하지 못하도록 나가사키로 다시 보내져 외지로 추방되었다고 한다. 최초의 일본 여자 수도회에서 활약한 마리나 박이라는 조선인 여인은 쿄토에서 체포되어 고문을 당한 후 나가사키항을 통해 필리핀으로 추방됐다.

(운젠지옥의 현재 모습)

 

현승건 선교사

나가사키순교기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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