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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의 선교 : 가정교회가 힘이다! 2-2

 

누가 인도했나?

 

원형교회의 부흥은 곧 바로 다른 교회를 분가시키는 힘이 된다. 원형교회가 잘 되면 다음 교회 분가도 잘 된다는 뜻이다.

 

그 예를 안디옥교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루살렘교회는 정치적 핍박을 받아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는데 일부가 안디옥까지 흩어져 안디옥교회를 세웠다(8:1; 11:19). 놀라운 것은 신생 안디옥교회가 교회를 개척하자마자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이다(11:21).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안디옥교회의 창립 멤버가 예루살렘교회 출신들이란 사실이다.

 

이들 핵심은 마리아와 바나바로 예루살렘에서 이미 가정교회로 성공의 맛을 본 자들로 안디옥교회를 세우는데 그리 힘들지 않았다. 과거에 예루살렘교회에서 성공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전수의 힘이다. 즉 예루살렘교회에서의 사랑과 섬김의 힘은 안디옥교회에 그대로 전수되어 교회 일꾼들을 세우고 복음을 확장시키는데 큰 역할을 감당했다.

 

안디옥교회에서 바나바와 마리아의 신앙을 전수 받은 자들이 바로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13:1) 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신분이 높고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자들이었다. 그렇다보니 안디옥교회는 자연스럽게 안디옥 도시 전체를 복음화 시키는데 속도를 가일층 증가 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4세기말 안디옥은 인구 50만 명 중 절반이 크리스천이 됐다고 한다. 전수의 핵심은 삶(life)에 있다.

 

우리는 전수시킬 때 소위 듣고 배우는 것에 너무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단지 성경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제자는 오래갈 수 없다. 전수는 듣고 배우는 것보다는 보고 배우는 것이 힘이 넘친다. 보고 배울 수 있는 삶을 제자들에게 전수시킬 때 그 힘이 대단한 것이다. 바나바와 마리아가 그러했다. 이들의 사랑, 희생, 섬김은 안디옥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감동 그 자체였다.

 

더욱이 바나바는 바울과 함께 안디옥교회를 1년간 맡은 뒤 곧 바로 선교사로 파송 받아 안디옥교회의 가정교회 정신을 헬라 전 지역에 전수시키는데 앞장섰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가정교회들이 빌립보교회의 루디아의 집(16:14~15), 고린도교회의 디도 유스도(18:7)와 스데바나의 집(고전 1:16), 에베소교회의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집(고전 16:19), 라오디게아교회의 눔바의 집(4:15), 데살로니가교회의 야손의 집(17:5) 같은 곳이다.

 

초대 가정교회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스토리는 빌레몬의 집이 있는 골로새교회이다. 골로새교회의 개척멤버는 담임목사인 에바브라와 평신도 지도자인 빌레몬과 그의 아내 압비야와 아들 아킵보, 그리고 종이었던 오네시모였다(1:1~2). 빌레몬서 12절의 네 집에 있는 교회는 그리 크지 않은 작은 가정교회로 골로새교회를 말한다.

 

바로 자기 집을 교회로 제공한 자가 빌레몬이다. 참 재미있는 것은 오네시모는 종의 신분이었는데 물욕과 세상 욕에 눈이 어두워 주인 빌레몬의 돈을 훔쳐 로마로 도망가 집시처럼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바울을 만나 회심하게 되었다. 오네시모는 당시 법에 따라 마땅히 심판을 받아야 하지만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그를 더 이상 의 신분이 아닌 형제로 받아 줄 것을 요청하였다(1:16). 이것은 상상도 못하는 일이다.

 

오네시모를 법정에 세워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빌레몬은 바울의 뜻을 받아 들여 그를 용서했다. 놀라운 것은 용서받은 오네시모는 훗날 변하기 시작한다. 그가 종의 신분에서 벗어나 에베소교회의 감독(목회자)이 된 것이다.

 

이것이 가정교회의 힘이다. 빌레몬 역시 마리아처럼 아버지 리더십으로 오네시모의 허물과 죄악을 꾸짖지 않고 마음껏 품어 주었다. 오네시모를 가족처럼 식구처럼 보았기 때문이다. 가족이란 누구든지 잘못이 있어도 용서하는 법이다.

 

사랑으로 너그럽게 품어주기 때문이다. 빌레몬이 그러했다. 빌레몬의 집인 골로새교회는 용서의 공동체였다. 그 결과 사람이 변화였다. ‘회당 스타일교회에서는 기대하기가 힘들다. ‘가정교회 스타일이 되어야 한다. 사랑과 용서와 희생이 있는 가정교회, 그 곳이 바로 골로새교회였다. 바라기는 한국 선교사들이 세운 현지인 교회와 한국교회에서 마리아, 바나바, 야고보, 빌레몬 같은 일꾼들이 많이 배출되길 바란다. 초대 가정교회는 바로 이러한 일꾼들의 희생과 섬김으로 폭발적으로 확장할 수 있었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안희열 교수 / 침신대 선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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