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초대교회의 선교: 가정교회가 힘이다!4-2

어떤 영향을 끼쳤나?

 

 

집주인들의 리더십이 워낙 중요하다보니 한편으로 이들이 영적으로 무너져 버리면 교회 자체가 위기에 처하는 약한 부분도 있었다. 집주인들이 영적으로 교만해 지면 교회 자체가 어려움을 당하게 되고(요삼 1:9~11), 또한 말씀에 굳게 서 있지 않으면 언제든지 이단에 빠질 우려가 높았다.

 

그래서 바울은 이단들이 집을 방문하지 못하도록 하고 집안으로 끌어들이지도 말도록 경고했다(딤후 3:6; 요일 1:7, 10). 아예 처음부터 차단해 이단과 어울리지 말 것을 부탁했다. 집주인들의 역할이 가정교회를 확장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취약점이 노출되다 보니 바울은 평신도 리더십 강화를 꽤한 것을 볼 수 있다.

 

교회의 리더십 구조로 감독, 장로, 집사를 두고 그 역할도 소개하고 있고(딤전 3:1~7; 1:7~9; 딤전 3:8~13), 나아가 교회 내에서 각 성도들이 자신이 받은 은사대로 섬길 것을 강조하고 있다(4:11~13; 벧전 4:10~11; 고전 12:4~11).

 

바울의 교회 리더십 구조는 직분의 우위에 있지 않고 모든 성도들이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 아래서 한 몸을 이루기에 각자 받은 은사대로 섬겨 교회에 덕을 세우고 유익하게 하는데 있음을 일깨워 줬다(고전 14:12). 이런 섬김의 정신을 배운 초대 교인들은 세상적 지위나 신분에 관계없이 하나가 될 수 있었고 복음전파에 불씨가 될 수 있었다.

 

세 번째 윤리적인 측면으로 성별의 삶이다.

초대교인들의 절제되고 성별된 삶은 복음전파에 큰 효과가 있었다. 초대교회 당시 로마의 목욕 문화는 크게 3단계로 변했는데 첫째로 공화정 시기에는 남녀가 따로 분리된 목욕탕을 사용했다. 둘째로 1세기부터 3세기까지는 남녀가 함께 같은 목욕탕에서 목욕을 했다. 셋째로 4세기가 되어서야 남녀가 다시 따로 목욕을 했다.

 

그런데 로마의 목욕문화는 로마를 윤리적으로 타락의 길을 걷게 했다. 당시 로마의 집은 단독주택(domus)과 아파트나 빌딩(insula) 구조로 되어있는데 90%가 아파트집(3~4)으로 각 건물마다 공중목욕탕이 있었다. 로마 시민들은 대다수는 방이 1~2개 있는 빌딩식 집에 살았는데 이곳에 사는 새신자들에게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그 건물에 있는 공중목욕탕에 가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혼탕 목욕탕이 로마의 성적 타락을 유발시키는 곳이기 때문에 신앙 생활하기가 무척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성문화는 로마의 결혼관 자체를 바꾸기도 했다. 이혼은 흔한 일이었고, 두 번째 엄마와 근친상간하는 것도 비일비재했으며 심지어 낙태가 성행했고 사생아와 고아도 많았다.

 

이런 성문화는 교회에서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영지주의 사상을 따르는 자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지식을 추구하는 자들로 영적인 것은 거룩하고 육적인 것은 타락하였다고 믿어 더러운 물질세계로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을 부인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거부하였고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까지도 부인하게 됐다.

 

그래서 이들은 더욱 육적 타락을 추구하게 되자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을 충고한 것을 볼 수 있다(고전 6:9~10). 두 번째는 스토아 사상을 따르는 자들이다. 이들은 금욕주의를 따르는 자들로 바울은 스토아 사상의 영향을 받아 고린도교인들에게 고린도전서 6장과 7장에 걸쳐 일부일처제 사상을 강조하며 자신의 몸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임을 인식시켜 성별된 삶을 살 것을 권면하고 있다.

 

고린도교회가 영지주의 사상의 유입으로 내홍을 앓고 있었지만 대다수의 가정교회 성도들의 삶은 모범적이었고 높은 윤리관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 초대교인들의 윤리관은 이방인들과 대조적이었고 이혼금지에 관한 교육도 가정교회 내에 활성화 됐다. 한 마디로 초대교회의 가정교회 성도들은 투명한 삶’(integrity)을 살았고 이런 성별된 삶은 수많은 이방인들에게 귀감이 되어 헬라지역 전반에 복음이 골고루 전파되는데 일조하게 됐다.

 

한국선교가 넘어야 할 산은 이슬람권, 사회주의권, 미전도종족이 있는 10/40창 지역이다. 이 지역에는 한국 선교사의 약 51%가 사역하고 있지만 가장 선교하기 힘든 지역이다. 선교사의 추방이 잦고, 자신을 오픈해서 마음대로 선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초대교회 시절 박해가 따르던 모습과 흡사하다.

 

당시 초대교인들이 집에서 시작한 가정교회는 놀라울 정도로 확산되어져 갔는데 그렇다면 초대 가정교회의 정신을 발견해서 오늘날 전방개척선교에 적용했으면 한다. 초대교회의 가정교회는 전략이 아닌 정신으로 성공을 거뒀다.

 

한국교회가 아직까지 가정교회 교회개척으로 성공한 자들이 많이 배출되지는 못했지만 초대교회의 가정교회가 한 몸의 삶, 섬김의 삶, 성별의 삶, 증인의 삶으로 헬라권 전 지역을 복음화 했듯이 앞으로 이런 역사가 한국선교에 올 것을 기대해 본다.



배너

총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