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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정신의 함양 ‘가나안농군학교’를 가다

김경배 목사의 탐방 속으로

기독교 정신으로 민족을 일깨웠던 일가 김용기 장로(1988년 소천)는 1962년 강원도 원주에 가나안농군학교(현 교장 김태은)를 세웠다. 가나안농군학교는 사회교육기관으로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책임 있는 인간이 되도록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민족정신의 함양을 도모해 농촌지도자를 육성하기 위해 설립됐다. 농군학교는 근로·봉사·희생의 교육이념으로 정신교육, 공동체 교육, 지도자 교육, 전인교육을 통해 사회지도자를 양성하며 교육은 당일 교육을 비롯해 일주일 미만으로 단기 과정과 어린이 과정, 학생 과정 등이 있다.

 


교육목표는 올바른 인생관 및 정체성 확립, 자기 극복을 통한 개척정신의 생활화, 효 사상을 바탕으로 한 건전한 가정 윤리 확립, 건전한 소비문화 조성을 위한 근검절약의 생활화, 함께 사는 시민의식 및 공동체 의식 함양, 건전한 근로관 및 직업관 확립, 올바른 국가관 확립을 지향하고 있다.


김용기 장로는 1933년 고향인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능내리(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봉안이상촌을 만들었다. 청교도 정신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협동마을 건설을 목적으로 농업기술 개발에서부터 농장개척·교육·일상생활 등을 모두 협동방식으로 운영했다.


이어서 김 장로는 1946년 서울 구기동에 삼각산농장, 1952년 경기도 용인에 에덴향, 1954년 경기도 광주에 가나안농장, 1973년 강원도 원주에 신림농장을 세워, 봉안이상촌과 비슷한 조직으로 운영하면서, 1962년 농촌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가나안농장 안에 가나안농군학교를 세우고 1973년 강원도 원주에 제2 농군학교를, 그리고 1981년에는 농군사관학교를 설립해 영농후계자 양성을 전문화했다. 농민 외에도 점차 교육의 대상이 확대되면서 일반 사회지도자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가나안농군학교의 설립자인 김용기는 농촌운동에 대한 공로로 1966년에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1980년에는 일가회를 설립해 농업 부문, 산업 부문, 사회 공익 부문 등에서 공헌한 사람들을 선정해 시상하고 있으며 제1 가나안농군학교 산하기관으로 청소년교육원, 효도학교, 가나안세계효운동본부가 있으며, 제2 가나안농군학교 산하기관으로 복민훈련원 지도자교육원, 세계지도자교육원, 성도원이 있다. 관련기관으로는 김용기의 사상을 연구하고 기념 사업을 추진하는 일가재단이 있으며 제2 가나안농군학교 근처에 일가수도원이 있다.


가나안농군학교는 동남아를 중심으로 12개국에 15개의 학교(2022년 현재)를 두고 있으며 2030년까지 자립적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뤄나갈 100개의 개척공동체를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에 건설하는 것을 비전으로 삼고 있다. 현재까지 가나안농군학교를 거쳐 간 수료자는 대략 70만 명 이상이다.


주요 시설로는 본관을 중심으로 복민관, 구국기도실, 성도원, 세계지도자교육원, 일가관, 고구마 저장소, 생태농장, 가족 묘소, 일가의 집 등이 있다. 교육시설과 숙소는 대관이 가능하며 가나안농군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시설 사용 안내를 받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40명 숙소(2인 1실)와 세미나실, 강당, 식당, 친환경 농장(스마트팜) 등을 이용할 수 있다.

 


가나안농군학교의 시설 중 의미 있는 곳은 다음과 같다.
◇ 개척의 종 : 본관 앞에 있는 개척의 종은 김용기 장로가 1954년 11월 18일 새벽부터 치기 시작해 대를 이어 현재까지 치고 있다. 이 종은 새벽마다 3번씩 10번을 타종하는데 이는 육체의 잠, 사상의 잠, 영혼의 잠을 깨우는 의미라 하며 이 종을 개척의 종이라 부르는 이유는 게으르고 나태함 속에서 깨어 일어나 다 함께 잘사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 김용기 장로의 반 평 묘지 : 십자가 모양의 가족 묘소에는 김용기 장로를 비롯해 14명의 일가 친척이 잠들어 있다. 김 장로는 지나치게 큰 묘로 인해 땅이 죽어있는 사람을 위한 땅으로 바뀌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반 평짜리 작은 묘를 생전에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 구국기도실 : 지금도 가나안농군학교 뒤편 산자락에 오르면 개인구국기도실들이 보이는데 당시 80여 개나 있었다고 하며 민족을 위해 뜨겁게 기도하던 그 당시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중 김 장로가 1975년 3월부터 기도하던 구국기도실 입구에 “조국이여, 안심하라, 온겨레여, 안심하라”라고 적혀 있는데 김 장로는 평생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했으며 매일 새벽 4시부터 6시까지,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하루 두 번 4시간씩 기도했다고 한다.

 


◇ 김용기 장로의 집 : 일가(一家)의 집은 김용기 장로가 평상시 생활하던 집으로 13평의 작은 공간이다. 집 앞에 있는 사랑방은 방문객들과 정담을 나누던 곳이고 나눔의 방은 방문객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집 앞의 돌들을 세로로 세워놓은 것은 일가 선생의 ‘생명 없는 돌이지만 누워있지 말라’는 교훈을 담고 있으며 돌 위에 돌을 얹어 놓은 것은 ‘서 있지만 말고 일을 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곧 여름철 교회 행사를 계획한다면 가나안농군학교에서의 색다른 체험 수련회도 좋을듯하여 추천해 본다.

호남제주지방국장 김경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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