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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성경이 우리에게 오기까지(17)


지난 10월 한글날을 기념해 기독교를 비롯한 각계 언론에서 한글에 영향을 끼친 선교사들을 일제히 보도했다. 예를 들어 지금 연재하고 있는 ‘개신교 최초의 성경 번역자’인 ‘존 로스’와 ‘띄어쓰기, 마침표, 쉼표’를 도입하게 된 ‘헐버트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학계 인사들을 통해 중점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런 기사들은 없었지만, 우후죽순처럼 관련 기사들이 생겨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학계와 언론 중 일부는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모르고 단지 겉핥기나 무지에 가까운 식으로 주장하는 이들도 있어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러나 어쨌든 ‘모로 가도 서울이라’고, 우리가 더욱 쉽게 한글을 사용할 수 있었던 배경이, 서양 선교사들의 공헌에 있었다는 것을 드넓게 알리는 점은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여겨진다. 


조선의 선교사들에 대한 연구를 하면 할수록, 무엇을 깨닫는지 아는가? 어둠에 있던 조선을 빛으로 인도한 선교사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만이 가슴에 떠오른다. 


특별히 앞서 언급한 헐버트 선교사는 생전에 한국의 광복을 보게 됐고 1949년 7월 29일, 광복절을 맞아 국빈으로 한국에 초대되어 약 40년 만에 해방된 한국 땅을 밟게 되지만 기관지염으로 8월 5일 별세했다. 당시에 한국으로 가는 배편에 오르면서 AP 통신 기자에게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는 것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합니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30일에 가까운 여행은 나이 90을 바라보는 노인인 그에게는 너무 무리였다. 한국에 도착한지 일주일 만에 소천 했으며, 그의 장례식은 대한민국 최초의 사회장으로 거행됐고, 그의 유해는 그의 소망대로 양화진외국인묘지(현재 양화진외국선교사묘원)에 안장됐다. 헐버트 선교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묘비명을 써주겠다고 했지만 아쉽게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대신 작은 추모 비석을 헌정했다. 이후 50년이 넘도록 묘비명이 적히지 못하다가, 헐버트 기념사업회의 노력으로 1999년 8월 5일, 김대중 대통령의 친필을 받아 ‘헐버트 박사의 묘’라는 묘비명을 새기게 됐다. 


다시 이응찬의 얘기로 돌아오자. 도망친 이응찬은 영어 성경과 미완성된 성경 번역본(한글)를 소지하고 있었다. 이응찬은 혹여나 관아에 붙잡힐 것은 대비하거나, 국경을 수월하게 넘기 위해, 한 가지 방책을 마련했다. 그는 각 성경을 한 장씩 뜯어서 새끼줄을 꼬아 봇짐(물건을 보자기에 싸서 등에 메는 짐)을 메는 끈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성경을 봇짐 메는 끈으로 사용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것이다. 이 일종의 책략은 이응찬이 나중에 한 번 더 사용하게 되는데, 그때는 번역이 끝난 한글 성경을 조선에 안전하게 반입시킬 때였다.


봇짐은 현재의 여행 가방인 ‘트롤리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캐리어’는 한국식 영어다. 당시 봇짐에 여러 물건을 넣고 파는 사람을 봇짐장수 즉 “보상”이라고 했다. 보상은 걸어 다니며 물건을 판매하기 때문에 싸고 무거운 걸 들고 다닐 수 없었다. 그래서 주로 ‘포, 면, 비단, 종이, 모시, 금, 은, 동, 인삼, 녹용, 수달피, 담비가죽, 갓 망건, 필묵 등’ 가볍고 작지만 값비싼 상품을 취급했다.


반대로 상품을 지게에 얹어 등에 짊어지고 다니며 장사하는 사람을 등짐장수 즉 “부상”이라고 했다. ‘생선, 소금, 나무 그릇, 질그릇, 가마솥이나 무쇠로 만든 용기 등’ 무겁고 크지만 비교적 값싼 상품을 팔았다.


아마 사극에서 “보상”과 “부상”을 봤을 것이다. 보상과 부상을 합쳐 이들을 “보부상”이라고 했다. 현재 우리에게도 “보부상”이라고 많이 알려져 있지만 “부보상”이라고도 한다. 표준국어 대사전에는 ‘보부상’과 ‘부보상’이 동의어로 올라 있으나 한국 전통 상학회를 비롯한 학계에서는 “부보상”이 옳은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또 한편으론 이들을 ‘장돌뱅이, 장돌림, 장꾼’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었다.


보상과 부상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으며, 특히 이들은 행적이 일정하지 않고 생활이 불안정한데다, 각지를 돌아다니다 맹수나 도적에게 피해를 입기 쉬웠다. 따라서 서로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 중세의 길드나 현재의 조합원 같은 조직을 형성하기도 하였는데, 나름 규약과 규율이 엄격하기도 했다. 

<계속>

 

백정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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