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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수정 교수의 문화읽기>“Dies Irae”와 “The Holy City” (최후의 날과 거룩한 성)

창공이 열리고 수천 개의 트럼펫 소리에 천지가 진동하며 휘날리는 구름 속 천지 사방이  어둠속에 갇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무덤이 깨어지고 묻혀있던 앙상한 뼈들이 일어나며 삶과 죽음의 경계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것은 바로 그 날, 진노의 날,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최후의 심판과 승리의 거룩한 도성이 도래하는 날.  기독교의 교리를 성경에 쓰여 진 문자 그대로 마음에 새긴 자들이라면, 경중에 차이는 있겠으나, 다들 나름대로의 종말론을 품고 산다.

 

필자도 어린 시절엔 심각한 꼬마 종말론자였다. 갑자기 검은 구름이 낮게 드리웠을 때, 태풍전야의 고요함이 창문 앞 까지 엄습했을 때, 광풍 속 나뭇가지 들이 미친 듯이 휘날릴 때, 나는 언제나 은근한 두려움 속에 기대하곤 했었다. “오늘이 그날인가?” 물론 이제 필자는 예수의 재림을 더 이상 감각으로 느끼며 기대하던 꼬마 종말론자는 아니다. 성장함에 따라 그 날은 결코 예측할 수 없는 하나님만의 시간이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가끔은 창공이 열리며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높은 보좌 위에 앉으신 주님이 드러나시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님을 뵙기를 사모함에는 변함없다.  작곡가 Juseppe Verdi (쥬세페 베르디)의 “Dies Irae”(최후의 날)는 진혼곡(Requiem)에 등장하는 라틴어 가사에 기초 작곡된 음악이며 최후의 심판 날을 의미한다. 처음부터 굉음처럼 터져 나오는 아비규환의 울부짖음이 엄청난 고음의 혼성합창과 요란한 타악기의 박동을 타고 거침없이 흘러내리는데 가히 전무후무의 음악적 폭발이며 예술적 압권이다.

 

베르디의 “최후의 날”은 아마도 이제껏 작곡된 수많은 진혼곡 중 가장 충격적인 진노의 날일 것이다. 누구나 한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종말론적 음악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반면에 이와는 대조적인 음악 기법으로 우리를 죽음에서 승리로 이끄는 음악도 있다. 최후의 심판 그 이후를 얘기하는 음악, 바로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의 도래를 알리는 스테판 아담스(Stephan Adams)의 “거룩한 성”(The Holy City)이다. 부활절 특송으로도 잘 알려진 이 곡은 꿈이란 매체를 통해 성서적인 찬양시를 표현한 문학성이 돋보이며 스토리 전개를 위한 논리적인 음악구성 또한 탁월하다. 즉 상황 설명을 위한 세 개의 레시타티브는 항상 반복적인 세 번의 힘찬 아리아와 후렴 형식의 음악을 통해 승리를 예감하게 한다.  


“거룩한 성”은 1)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알리는 종려주일에 관한 환상, 2)예수 십자가의 죽음에 관한 슬픔의 환상, 그리고 3)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새 예루살렘의 영광에 관한 승리의 환상 등으로 나뉘어 전개되는데, 베르디의 “최후의 날”이 폭력적이며 거대한 카오스의 세계를 다룬 장편 소설이라면, 물론 규모나 난이도 면에서 비교가 불가한 다른 장르의 음악이지만, “거룩한 성”은 죽음과 승리의 모든 이야기가 잘 압축되어 표현된 뛰어난 단편 소설과도 같다.


“최후의 날”과 “거룩한 성”은 마치 동일한 본체이되 양면의 다른 두 개의 얼굴처럼 극과 극의 대립을 이루는 주제로 수많은 작곡가들의 영감이 되었다. 위의 두 곡 역시 동일 주제의 특성을 십분 살리며 영감의 원천을 이어가고 있다. 특별히 “거룩한 성”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요한계시록 21장 21-26절의 압축된 내용은 다시 올 새 예루살렘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며 심판을 벗어난 자들의 영광의 발걸음을 상상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영국 작곡가 스테판 아담스의 “The Holy City”는 언젠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질 지상에서 낙원으로의 순간에서 주님 얼굴 뵈올 순간을 상상해 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노래가 아닌지 별 넷의 등급을 찍어 본다.

 

“The Holy City” (거룩한 성)
신비로운 꿈을 꾸었습니다;
성전 옆 오래된 예루살렘 성 곁에 서서 
마치 천국의 화답과도 같고, 천사들의 음성과도 같은 아이들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를 들었습니다. 

    예루살렘!  예루살렘! 
    문을 열어라, 노래하여라
    호산나! 높이 찬양하라
    호산나! 너의 왕께.

다른 장면의 꿈을 꾸었습니다; 
거리엔 노래 소리도 아이들이 환호하던
기쁨의 호산나도 멈추었습니다
태양은 점점 신비로운 어둠에 갇히고
춥고 을씨년스런 새벽, 그 외로운 언덕위에
십자가의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예루살렘! 예루살렘!
    들어라! 천사들의 노래를
    호산나! 높이 찬양하라
    호산나! 너의 왕께!

또 한편의 다른 장면을 꿈꾸었습니다; 
새 땅이 임한 그곳에서 거룩한 성을 보았습니다. 밀물도 썰물도 더 이상 없는 저 바다 곁, 하나님의 광채가 거리마다 비추고 문들은 활짝 열렸으며 그 성에 들어가는 자들은  아무도 거절당하지 않았습니다.   
밤의 달과 별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낮의 해도 필요치 않습니다.
그 것은 바로 새 예루살렘!
영원히 멸망치 않을 도성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예루살렘!
   노래하라 밤은 지나갔도다!
   호산나, 높이 찬양하라!
   호산나! 영원히.


차수정 교수 / 침신대 교회음악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