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빌1:29)
“왜 내게? 왜 이런 고난이 닥쳐올까?!” 수 많은 사람들에게 고난과 고통이 닥쳐올 때 누구나 외치는 말이다. 수난, 역경, 곤고, 시험, 병고, 좌절, 파산, 낙심, 위험, 핍박, 기근, 재난, 적신, 절망, 환란 등의 숲을 지나 늪을 헤쳐가는 삶이 인생길인가?
사람에게 고난이란 운명적인가? 죄로 인한 고통, 가난과 궁핍의 고통, 전쟁과 질병, 무지와 부주의, 불가항력적인 지진, 홍수, 폭풍우, 화재, 같은 천재지변으로 인한 고난들이 산 넘으면 또 산이요, 강 건너면 사막이요, 사막을 지나면 파도가 높은 바다처럼, 희노애락과 역고성쇄가 밀려드는 파도처럼 되풀이하여 엄습하는 것도 어쩌면 자연발생적인가?
역사를 섭리하시는 선하고 좋으신 하나님께서 이런 고난을 수수방관하시는가? 또 왜 선하고 착한 사람에게도 불행하고 비극적인 일이 종종 생기는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극한 고난과 환란을 허락하시는가? 고난에 대한 질문도 해답 못지 않게 끝없다.
요셉의 고난과 종국, 욥의 대환란과 회복, 다윗이 당한 사망의 그늘, 이사야, 예레미야, 사가랴, 침례요한, 사도 바울이 당한 환란 (고후11:23~28), 예수님의 십자가의 형극의 고난의 승리는 무엇을 발해 주는가?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고난과 고통이 닥쳐올 때 자신과 타인 및 사회나 국가를 원망하고 심한 반발로 극복하고 참아내지 못하는 것을 본다.
행복을 추구하는 인생이 불행도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마땅하다. 사람은 자가에게 고난이 부딪쳐올 때 그 고난을 고통이 없는 인생을 생각할 수 없는데도 막상 자기 앞에 밀어닥치는 고난을 직면하고 도전하기 보다는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도피하려고 애쓸수록 고난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피해자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에게 고난이 부딪쳐올 때 그 고난을 통해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존재이다. 그러기에 어쩌면 고난과 고통 없이 성장하고 성공하는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고통의 연단을 통해서 인격을 연마되고 더 높은 차원으로 이끄는 축복도 된다.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 를 쓴 헉스리(Hexley) 는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한다” 고까지 말했다. 또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심리를 연구한 아브라함 하슬로우(Abraham Haslow)는 “그 사람이 얼마나 자기를 실현했느냐는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고통과 고난을 경험했느냐와 비례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고난을 당할 때 불평과 원망을 토하면서 환경에 대해, 타인에게, 자신에 대해 원망하다 심지어 하나님을 향해 원망 함으로서 부정적인 마음이 생겨 자신의 영혼을 손상시켜 평안과 기쁨과 소망을 잃고 조절과 낙담의 깊은 수렁으로 함몰할 뿐만 아니라, 생명의 근원인 심령이 상하고 쓴 물이 차고 넘쳐서 결국은 파멸과 저주의 늪 속에 사라지고 만다.
고통 없이 축복과 성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신앙인은 고통과 환란을 당하면 풍비박산으로 산산 조각나고 만다. 고난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면 동정의 시냇물은 말라붙고, 우리의 영적 혜안은 장님이 되고, 비뚤어진 성품은 탐욕의 사막이 되어 오아시스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성경은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109:67) “고난 당한 것이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09:71)라고 시편 기자는 노래했다.
그러므로 고난을 당할 때 우리는 굳건한 신앙심으로 당당하게 대처하고 고난의 깊은 가치를 알아 수용해야 승리자가 된다. 악마로 다가왔던 고난은 천사로 변하고, 저주의 고통은 모래알을 품어 진주를 만드는 조끼와 같이 행복과 성공으로 승화시킨다.
고난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도전이요 영광에의 길이다. 섬광처럼 닥쳐와 금방 사라지는 고난은 우리에게 간단한 충격을 줄 뿐이나, 쉽사리 물러서지 않는 혹독하고 지속적인 고난은 오히려 고매한 인격을 형성케 하고 영원한 기업을 전수케 한다.
기독교의 생명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빼놓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고, 머리털까지 세시는 하나님의 깊고 높은 연단의 섭리와 성령님께서 내주하사 합력선(롬8:26-28)으로 인도하시는 역사를 모르고는 이해할 수 없다. 베드로 사도는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나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21)고 권면하셨다.
고난의 원인을 찾아 이해하라
고통과 환란을 딛고 과감히 일어서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
어떠한 고난이라도 대담하게 수용하라
진정한 고난의 가치를 수용한다면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도무지 이해되지 않고 견디기 어려운 고난에 대해서도 긍정적이고 능동적이며,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생산적이고 창조적이며, 자원하여 도전하고 극복하며 승리하는 믿음의 용사가 되라!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1:18) 아멘
한명국 목사
BWA전 부총재
예사랑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