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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지방회와 함께 한 기독교유적지 탐방(3끝)


사도 바울 따라 산 넘고 바다 건너

모든 길이 차단된 저 산정에 오르기 위해

많은 도구 필요치 않네

구부러진 막대기 하나, 낡은 옷 한 벌로 족하네

구름도 쉬어가는 저 산정 내려오기 위해

복잡한 서류 필요치 않네

그동안 빌려 입은 낡은 육신 벗어놓고

바람밧줄이면 족하네

-메갈로 메테오른<이병구>

 

지각티스 강가에서

유럽의 복음화는 바울 일행이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로 직행해 네압볼리에 도착함으로 시작됐다. “신도시라는 뜻을 가진 작은 항구도시 네압볼리는 비잔틴시대에는 크리스토폴리로 불리다가 오스만통치 이후로는 말잔등이라는 뜻의 까발라로 불리고 있다.

까발라에는 사도 바울의 비마자리가 있다. 비마란 강단이라는 뜻인데 배에서 내린 바울이 여기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처음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비마자리에는 바울이 마게도니아인의 환상을 보고 배를 타고 건너온 일화가 모자이크벽화에 그려져 있었다.

우리 일행은 까발라에서 일박을 하고 다음날 호텔 측에서 마련해준 장소에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우리의 순례는 네압볼리에서 시작해서 빌립보와 암비볼리, 아볼로니아, 베뢰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와 메테오라와 고린도 그리고 아테네로 이어졌다. 그리스반도를 북에서 남으로 종단하는 길이다.

로마의 식민지요 마게도니아의 첫 성인 빌립보유적은 언덕 위의 A지역과 아래 B지역으로 나뉘고 그 사이로 비아 에그나티아가 가로지른다. “모든 길은 로마로라는 말처럼 비아 에그나티아는 이탈리아반도에 있는 비아 아피아와 더불어 로마제국의 중요한 고속도로였다.

A지역은 대형극장과 바울과 실라가 갇혔던 옥이 있었다. 몇 차례 지진으로 훼손이 심해 임시 나무기둥으로 지붕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었다. B지역으로 내려가면 드넓은 아고라와 공중화장실 바실리카 등이 있었다. 그러나 빌립보에서 가장 내 눈길을 끈 곳은 지각티스 강가의 루디아 침례터였다.

지금은 강폭이 좁아져 시냇물 수준이지만 이곳에서 유럽의 첫 번째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탄생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내 마음은 감동이었다. 침례터 주변을 세차게 흐르는 물소리는 우리 목회자가 다른 어떤 일보다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침례를 주어 교회를 세우는 일이 우선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 그리고 데살로니가를 거쳐 베뢰아에 도착했다. 베뢰아는 언덕위의 작은 도시인에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사람보다 너그럽고 신중하다고 칭찬했던 도시답게 정숙하고 고풍스러웠다. “바울도착기념교회마당에는 사도 바울의 비마와 함께 동상이 서 있었다.

아마 사도 바울의 유일한 동상일 것이다. 우리 목회자들이 가장 본받고 싶은 그의 모습을 잠간 언급하자면 얼굴은 흠모할 만한 모습이 아니며 특히 머리카락은 거의 없는 민머리였다. 거기다가 본인 스스로 언변이 탁월하지 못하다고 했으니 결국 우리가 그분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외모가 아니라 복음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리라.

우리 일행은 베뢰아의 작은 카페에 들려 커피를 마시고 다시 산길을 돌고 돌아 그리스 중부의 깔람바카로 갔다. 깔람바카에서 일박 후 아침에 산복도로를 이용해서 메테오라로 올라갔다. 메테오라는 기이하게 솟은 높은 바위 위에 세워진 수도원인데 주후 14세기에 아타나시우스가 이 지역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 메테오라이로다한 데서 기원했다.

메테오라는 하늘에 떠 있는 별이나 유성을 뜻하는 말이다. 주후 16세기에는 많은 수도사들이 하늘 가까이에서 수도하기 위해 몰려들어 번창했는데 지금은 5개의 수도원과 1개의 수녀원이 운영되고 있다. 우리는 수도원 가운데 가장 큰 메갈로 메테오른을 방문했다.

이들 수도원은 일종의 봉쇄수도원으로 한 번 들어오면 죽어서도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모든 것을 철저히 자급자족하고 부족한 물건은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줄을 내려 공급받았다. 전시관에는 수도사들의 일상용품과 함께 수백 개의 해골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시대마다 요구되는 영성은 다를 것이다. 수도원영성에도 본받을 점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내면을 향한 영성과 함께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사회적 영성을 요구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라비아사막의 고고한 은둔자로 머물지 않고 안디옥과 갈라디아와 아덴과 로마로 끊임없이 움직였던 것이다. 메테오라는 오늘 우리가 어떤 영성으로 시대를 섬길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였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린도로 가는 길은 멀었다. 깔람바카에서 무려 6시간이 소요됐다. 그동안 우리는 영화 “300”의 배경인 유황냄새 자욱한 테르모필레를 들려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드 동상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버스 안에서 영화 알렉산더 대왕을 시청했다.

침내 프랑스기술자가 완성한 고린도해협을 건너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들어갔다. 우리는 아크라고린도가 보이는 해변호텔에서 일박한 다음 고린도유적지를 둘러봤다. 순례 10일째 되는 날이었다. 고린도는 두 개의 항구를 거느리고 있었다. 북서쪽으로 레기온항과 남동쪽의 겐그리아항이다.

겐그리아는 사도바울이 일찍이 서원한 게 있어서 머리에 삭도를 댄 곳이다. 옛날의 흔적은 이미 물속으로 사라져버린 겐그리아를 지나면서 나는 오래전에 하나님께 서원했던 것을 떠올려보았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던 예수님께서 그날 내게도 물으셨다.

그 때 나는 겁도 없이 주님, 제가 주를 사랑합니다. 죽기까지 따르겠습니다.”고 했다. 겐그리아 바닷가의 작은 파도소리는 주님의 음성이 되어 내게 다시 물으시는 것 같았다. “아직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투어버스는 살라미스해협을 끼고 한 시간을 달려 아테네 시에 진입했다. 아테네 외곽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 다음 곧장 아테네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갔다.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 제 1호인 처녀의 집 파로테논신전을 둘러보고 내려오니 아레오바고였다.

사도 바울은 이곳에서 허탄한 신화와 철학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소위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해 설교했다. 우리는 바울이 선 곳이라 추정되는 곳에 올라 함께 기도했다.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세상이 알지 못하는 신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분명히 전하는 메신저가 되게 해달라고.


 

 

우리 일행은 아테네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저녁비행기로 이스탄불로 갔다. 이스탄불에서 일박을 하고 순례 11일째 되는 날을 맞이했다. 오랜만에 늦은 아침을 먹고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를 둘러보고 선상투어와 이집션바자르를 들린 다음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록 몸은 힘들었으나 영혼은 어느 때보다 즐거웠던 순례였다.


이병구 목사 / 세종우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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