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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영 목사의 군선교 이야기-1

“내가 속한 곳에서도 사고가 일어날 줄이야….”


지난 4월부터 일어난 몇 차례의 연속된 군 대형 사고가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으면서 군대의 분위기가 경색되고 군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싸늘하며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님들의 불안은 증폭되어 있다. 이로 인해 병영문화 혁신을 이루기 위해 국방부 차원에서 여러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인권 강화란 이유로 군 선교가 상당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고 하나만 놓고 보면 분명히 잘못된 것이고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님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은 분단된 조국의 상황이 존재하고 있고, 군대란 만약에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국가차원에서 주둔하는 것이며, 병역의무는 헌법에 의해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군대를 사고에만 집중해서 판단하거나 언론의 확대 보도는 국익에 별로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판단아래 본 글을 기고하게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과 분위기속에서 필자는 독자들의 관심과 중보기도를 바라는 마음으로 군 병원 사역에서 있었던 진솔한 이야기들을 군인 신분이 아닌 민간 군 선교사의 객관적인 입장에서 연재의 글로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일반인들에게는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단풍의 계절이지만 필자에게는 기억하기 싫은 잔인한 10월이었다. 왜냐하면 필자가 속한 환경에서 살인사고가 일어난 지 1주년이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작년 103일에 위문행사 준비로 야근을 마치고 늦게 귀가한 후에도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에 잠을 청한지 얼마 안 된 시간에 전화 벨소리에 깨어 비몽사몽간에 수화기를 드는 순간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들려왔다. “목사님! 큰일 났어요! 우리 아들이 죽은 것 같아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정신을 차려보니 교회 신우 형제의 어머니였다.


춘천병원에서 살인사고가 났는데 우리 아들이 꼭 죽은 것 같으니 빨리 확인해 달라는 절규였다. 아니 병원에서 나온 지 몇 시간도 안 되었는데,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지만 곧 냉정을 찾고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세상에 이럴 수가 국군병원 흉기 난동 ‘1명 사망난동병사 총 맞고 중태라는 기사가 화면을 도배하고 있었다. 내가 매일 드나드는 곳에서 나와 함께하던 병사들 사이에 이런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다니 부인할 수 없는 현실에 나는 망연자실하여 한동안 멘붕 상태에 빠져 있어야만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났다는 생각이 들 때에 헌병대 수사 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가해 병사 부친이 자기 아들이 목사님한테 수차례 상담을 받았다고 진술하는 바람에 참고인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조사받기위해 병원에 도착해보니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사고현장을 보존하기 위해 노란 띠가 쳐져 있었고 바닥에는 깨진 유리와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104일 새벽 350분에 일어난 사고의 참혹했던 상황을 한 눈에 알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영현실에 들어가니 사망한 피해병사의 어머니가 울부짖으며 내 옷을 붙잡고 내 아들을 살려 내라며 실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목사로서 무언가 위로의 소리를 해야 한다고 자신에게 촉구했지만 결국은 입을 떼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격동의 시간이 지나면서 장례식을 인도하고 병원에 돌아와 보니 기간병사와 환우병사들은 갑자기 일어난 사고의 환란 속에서 여전히 공포감에 떨고 있었고, 사고로 인한 후유증과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정상의 생활을 회복하기에는 긴 시간의 노력들이 필요했다.


가해병사는 훈련소부터 관심병사로 분류되어 본 부대로 전입오자마자 장병 기본권 상담관인 필자에게 상담을 받게 됐다. 상담 결과는 부모의 이혼 가정에서 가정폭력에 시달렸고, 1때는 선배의 폭력과 왕따로 자살을 시도한 경력이 있었으나, 혼자 교회에 나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안정된 고3을 보내고 졸업한 뒤에 공기업에 취직하여 군에 입대할 때까지 성실히 근무하며 할머니와 동생을 부양해온 모범 가장이었다.


저는 혹독한 성장기를 보냈기에 군대온 것이 너무 편하고 좋습니다. 주위에서 다들 잘해주십니다. 앞으로 열심히 신앙생활하며 군 복무에 전념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소리에 필자는 문제병사라기보다는 어린나이에 역경을 극복한 인간승리로 여겨졌고 진한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굴곡의 삶은 무시할 수가 없어서 중대 행보관과 중대장에게 특별관리 대상자임을 알려줬고 예배에 올려주면 그때마다 상담을 해주겠다고 하였다. 기대에 부응하듯 그 병사는 예배시간마다 참석해 맨 앞자리에 앉아 의젓한 모습으로 예배를 드렸고 막간을 이용해서 태권도 고단자로서 병사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으며 선임들에게도 평이 좋은 모범 병사이었다.


정신과 군의관의 면담에서도 필자의 생각과 별 차이가 없어서 오히려 관심병사의 등급이 하향 조정된 상태이었다. 그런데 전입 온지 두 달 만에 일병 진급 시기에 첫 휴가를 다녀온 다음 날 새벽에 사고를 일으켰다.


수사과정과 재판과정을 지켜보면서 알게 됐지만 휴가기간 중에 진로문제 때문에 부친과 심한 다툼이 있었고,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한 병사는 귀대 후 새벽에 일어나 자살을 시도하려는 찰나에 이를 제지하는 불침병 선임과 몸싸움을 벌이다 일어난 사고였다고 한다.


피해병사는 서울의 모 대학에 재학 중에 입대한 재원이었다. 종교는 없었지만 이등병때 예배에 참석하여서 필자도 잘 알던 병사였다. 안타까운 것은 사고 난 당일에 불침번 근무를 마치고 휴가를 나가게 되어 있어 분당에 사는 가족들이 가족사진 촬영과 휴가 파티를 준비하던 중에 비보를 듣게 되어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필자는 이런 연유로 아픈 가슴을 쓸어안은 채 군사법원의 1심 재판이 끝날 때까지 재판을 지켜보면서 헌병대에 수감되어 있는 병사를 면회하며 돌봄의 사역을 감당해야만 했다. 1심 재판에서 학창시절에 정신질환이 인정된 사실이 있어 정상참작을 해달라고 가해병사 측 변호인이 간절히 요청했지만 정신과의 진단서가 첨부되질 않아서 수용되지 않았고 결국 중형을 선고 받았다.


선고 후 고개를 떨구며 비통해 하는 형제에게 성경과 신앙서적을 넣어주며 성경 읽는 법과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줬고, 읽어야 할 분량을 과제로 내주며 다음 면회 때 점검을 해주는 식으로 영혼을 돌보게 됐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는 죄인 된 영혼을 향하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체념한 형제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간절함으로 성경을 붙들고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그의 입에서 찬양을 한다는 소리와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며 회개한다는 고백을 듣게 된 것이다. 순간 필자는 강력하게 권면했다.


신앙인으로서 범한 죄에 대해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할 것과 피해병사와 유족들을 생각하며 기도해 줄 것과 마지막으로 20대 초반의 형제가 죄의 대가를 치루고 세상에 복귀해도 살아야 할 남은 인생이 창창하다.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없애야만 가능하다.” 마지막 면회에서 형제는 아버지를 만나서 용서하고 화해했다고 증언했다. 눈물을 흘리며 참회하는 형제의 평온한 모습을 바라보며 필자는 감격 대신에 가슴을 쥐어뜯으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주님! 이 어린 양이 왜 이런 가혹한 형벌을 받아야 합니까?”


가정 폭력과 부모의 욕심은 군대에서 어린 아들의 분노를 폭발하게 만들었고, 본인의 삶은 물론 장래가 촉망되는 피해병사와 가족들의 삶까지 파괴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이러한 과정은 무시한 채 군 환경에서 일어난 사고라고 군대만 비난하는 언론과 사회는 공동 책임의식을 가져야하고 이런 사고 인식의 전환이 없는 한 군에서의 사고는 계속해서 일어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군 입대를 해야만 하는 아들을 가진 부모들은 아들과의 관계를 점검하고 상처가 있다면 최대한 사랑으로 싸매어 주고 행복한 가정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사고예방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혹시라도 질병이 있다면 진단서를 지참케 하는 것은 필수이다. 부모들이 바쁜 관계로 챙겨주지 못하여 고통 받는 병사들을 많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미처 알지 못하고 입대한 부족한 병사들을 돌보고 치유하며 예방접종을 해주는 곳이 군인 교회이다.


사고이후에 PT를 만들어 사고예방 강사로 활동하는 사역이 하나 늘었는데, 사고난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는 생각은 사고는 먼발치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눈앞에서도 일어날 수 있으며 어느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교훈이다. 그리고 현대교회에 사망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침투하는 사단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깨어서 기도하는 길 밖에 없다는 소중한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무릇 지킬만한 것 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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