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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숙 교수의 문화나누기> 자연의 정직함을 닮은 음악


봄이 왔다. 그 길었던 겨울은 아직도 미련이 남은 듯 꽃샘추위로 심술도 부려보고 난데없는 찬바람으로 옷깃을 여미게 하더니 결국 겨울은 떠나고 그 자리에 찬란한 봄이 왔다. 자연은 그렇게 하나님의 주권아래 순리에 따라 언 땅을 뚫고 새싹을 틔워내고 꽃을 피워낸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게 시작한 봄도 시간이 지나면 또 여름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우리 곁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 떠남의 과정이 힘들어도 억지로 순리를 거역하거나 고집부리지 않는 자연의 흐름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또 왜 우리는 그런 자연의 모습을 닮을 수 없는 것인가 하는 반성도 하게 된다.


흔히 요즘 세대를 극단적 개인주의의 자아를 가졌다고 진단한다. 자신의 생각만 절대적인 선이며 정의이며 옳음이라고 외치며 자신의 방법만이 정의 구현의 참된 길이라고 고집한다. 그 과정에서 상처받고 아파하는 타인의 입장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의 어떤 정의도 절대적일 수는 없다. 자신의 옳음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가끔씩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이 아닐까? 깊어가는 봄을 보며 때가 되면 자리를 내어주는 계절처럼 순종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이 세상은 조금 더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생각 끝에 떠오르는 음악이 있다. 바로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이다. 봄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작품은 베토벤 자신이 제목을 붙인 것은 아니지만 장중하고 무게감 있는 베토벤의 다른 작품과는 달리 경쾌하고 희망에 찬 선율로 가득하다. 마치 봄에 움트는 새싹들의 생동감과 피어나는 꽃들의 소박한 자태를 노래하는 듯한 이 작품은 바이올린의 경쾌한 울림과 피아노의 화려함으로 이라는 제목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표제 음악은 아니지만 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느낌은 매 악장마다 봄의 각기 다른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1악장은 봄의 희망을 노래하고 제 2악장은 나른한 봄의 어는 오후를 연상케 한다. 3악장에서 작곡가는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의 팔딱거림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역동적인 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마지막 4악장은 마침내 완성된 봄의 모습이 주는 충만함을 노래하고 있다. 이런 많은 이야기들을 베토벤은 25분 남짓한 바이올린 음악에서 충분히 그리고 감동적으로 전달해 주고 있다.


1801년에 작곡된 이 곡은 이제 막 30대에 들어선 베토벤의 열정과 순수의 결정체다. 그러나 곡 중간 중간에 나타나는 슬픔은 당시 난청이 악화되어 청각을 완전히 잃어갈 무렵의 베토벤의 불안감과 두려움의 표현일 것이다. 찬란한 희망의 메시지를 이야기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숙명적 고난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은 베토벤의 음악을 더 간절한 울림으로 만든다.


아마도 그 마음이 그대로 음악에 투영된 결과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직함과 진솔함으로 자신의 심정을 음악으로 토로하면서도 베토벤은 순리에 순종하는 마음이 갖는 만족감과 평화의 비밀을 아는 듯하다.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고난에 대한 거센 항변을 하지만 종국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려는 의지가 이 음악에 생명력을 더해준다. 마치 순리에 순응하는 자연의 모습처럼 베토벤의 음악은 정직한 설득력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들의 마음이,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 언 땅을 녹이고 새로운 생명을 피워내는 봄을 닮았으면 좋겠다. 고집도, 아집도, 이기심도 다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의 모습으로 새로 태어나는 그런 봄이면 좋겠다. 이런 간절한 바람과 함께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봄과 함께 찬란한 봄날을 가슴으로 안아본다.


최현숙 교수 / 침신대 교회음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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