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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영 목사의 군선교 이야기-11

은혜와 감동의 간증들 ‘두 아버지’

군선교를 하면서 나름대로 몇 가지 세워놓은 원칙이 있었다. 그중의 하나는 군교회의 역사성이다. 비록 민간 목사의 신분으로 군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지만, 언젠가 이 사역을 그만두고 후임자가 왔을 때 그동안의 사역을 파악하고 계승시켜 사역의 연속성과 발전을 위한 목적에서이다. 이를 위해 민간 목사가 하지 않아도 되는 수고를 감당해야만 했다. 그것은 행정적 부분이다. 예를 들어 입원 환우들의 상황을 매주 파악하여 불신 환우들은 전도 대상자, 믿는 환우들은 인도 대상자로 분류하며, 전도대상자도 성향과 가능성 여부를 A. B. C 등급으로 파악, 해서 교회를 소개, 안내하고 예배로 인도한다. 이 과정 속에서 관심 병사들이 발견되어 상담과 기도를 통해 문제 해결이 이루어진다. 기간병과 간부들에 대한 사역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것들을 자료화해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대책을 세워 나가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수고의 열매로 정기적인 위문예배도 필자가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연결된 팀들이 지난 10년 동안 변함없이 함께 해오고 있고, 오랜 시간 맞춰온 팀웍을 통해 효과를 증진시키고 있으니 필자를 믿고 함께해준 분들에게 한없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리고 5월 가정의 달에는 성령과 가정이란 타이틀로 기도회를 인도하며 작품 공모전을 열고 있다. 장르는 편지, , 수필, 간증수기 등이고, 제출한 작품들을 심사해서 마지막 주 목요일 저녁에 실시되는 축복의 날위문 시간에 당선자에게 푸짐한 상품을 전달하고 파티를 열어주는데, 당선자가 작품 내용을 발표할 때에 은혜와 감동이 되어 참석한 청중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특별히 정해진 기간만이라도 부모님과 가족들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가정 구원을 이루기 위한 것과 인생에 영향을 준 스승님들을 공경하며 현대의 단편적 사고에 빠져있는 병사들을 깨우고 의식을 함양시키기 위한 행사 목적도 있다.

그동안 많은 당선자들이 배출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5월이 되면 잊지 못할 병사가 떠오른다.

미술을 전공한 형제로 용모가 만화책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생겨 별명이 독고탁으로 불리어졌는데, 그 형제는 본 교회에 있는 동안 전공을 살려 행사 포스터와 광고 카피 문구 및 만화 전도지를 만들어 복음을 전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항상 밝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근심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면회 오는 것을 통해 아버지가 두 분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워낙 예민한 부분이라서 조심스러워 물어보지도 못했는데, 이 형제의 간증수기가 당선되어 발표되므로 구체적인 내용을 알게 되었다.

간증이라는 것이 직접 듣거나 글의 전문을 읽어야 마음에 와 닿는 법인데 여기서는 지면 관계상 간단히 소개해도 성령께서 그 전심을 은혜롭게 전달해 줄 줄로 믿는다.

저는 지금 누구보다 행복합니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 않은 살림에 건강한 정신과 육체가 있고 공부하고 싶은 것을 공부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부모님이 건강하시고 저를 누구보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저는 행복합니다. 무엇보다 전능하신 주님이 저와 동행하시기 때문에 저의 얼굴에 웃음이 넘치고 행복합니다. 이렇듯 행복한 사람인 저이지만 누구나 그렇듯 저에게도 힘든 시절이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저에게는 아버지가 두 분 계십니다.

나를 낳으신 아버지와 나를 기르신 두 분의 아버지가 계십니다.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5살 때부터 기억들은 대부분 아버지의 기억들로 시작하는데 아버지는 한 마디로 폭군이었습니다.”로 시작하는 간증문은 장문으로 이어지는데 구구절절 가슴 아픈 사연들이었다.

요약해보면, 술과 도박에 빠진 아버지의 가정폭력 때문에 어린 시절 고통스러운 기억밖에 나질 않는다고 했다. 가족폭력에 시달리다 못 견뎌 어머니가 신고해서 간 경찰서에서 7살짜리 소년은 울고 계시던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드리며 엄마 울지마 내가 지켜 줄께라고 했단다. 그 후로 어머니와 어린 아들은 지옥 같은 집을 탈출해 방랑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떠안은 도박 빚을 갚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떨어져 살아야 했고, 그때부터 어린 아들은 여기 저기 친척집을 전전 하며 떠돌이 생활을 해야만 했다.

쫒겨나는 것이 다반사이고 심한 냉대와 구박 속에 견디기 힘든 어린 시절이었지만, 그 소년은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도하였다. 그런 와중에서도 크리스천인 어머니는 아들을 신앙으로 교육하셨고, 교회와 가까이 지내고 기도하는 방법과 찬양하는 법등을 가르쳐 주셨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셨다고 회상한다.

중학교 때 외할머님 집에 있으면서 교회 생활을 통해 심리적인 안정을 찾기 시작했고, 교회에서 좋아하는 그림 공부도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견딜 수가 없어서 두통에 시달리며 제발 한번만 엄마를 보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밖에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기도는 응답되어 어머니가 재혼을 하시고 찾아오셨는데 새 아버지는 믿음이 너무 좋으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만져 주시고 싸매어 주셔서 같이 사는 고교 시절 동안에 어린 시절의 상처가 회복되고 그림 그리는 꿈과 비전을 위해 준비해서 미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증언한다.

그리고 새 아버지를 통해 행복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회상해보니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저를 위한 외할머님의 매일 기도와 어머니의 속삭임 너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야 하나님이 천군천사를 동원해 너를 지켜 주실거야 엄마는 아들을 믿어라는 말씀이 마음에 새겨져서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감 넘치고 밝게 웃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형제는 다음과 같이 간증을 마무리했다.

비하인드 스토리이지만 친 아버지는 내가 대학교 2학년 때 다시 만나서 지금은 자주 만나 뵙고 연락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아직 10년의 세월이 아버지와 나 사이에 있지만 서로 그 차이를 좁혀가고 있습니다. 아직 어렸을 적 일이 생각날 때가 있지만, 10년 만에 뵌 아버지는 너무 많이 늙으셨고, 나의 맘속에 남아있는 앙금들은 아버지의 눈물을 본 순간 녹아 버렸습니다. 친 아버지는 도박을 끊고 열심히 일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아직은 나를 낳아주신 친 아버지께 입으로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 말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당시에 이형제의 간증을 듣고 참석했던 예배자들 모두가 은혜와 감동의 도가니에 젖어 폭풍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깨어진 가정의 아픔을 뒤로하고 군에 몸담아야 하는 청년 장병들이 너무 많은 군 병영에서 사고를 예방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군 복무에 전념케 할 수 있는 비결은 사랑과 신앙의 힘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시간이었다. 그리고 어릴 적의 신앙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쳐 주는 교훈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귀하고 감사한 것은 필자가 받은 은혜이다. 그것은 복음을 전하러 온 군병원 선교 현장이지만, 오히려 내 자신이 은혜 받고 부족함을 채워주며 변화시켜 주는 영적 훈련소라는 사실 때문이다.

유지영 목사

국군춘천병원 새소망교회

사역문의) 010-3410-3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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