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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숙 교수의 문화나누기>가슴에 품은 조국 : 쇼팽의 피아노 연습곡 “혁명”을 들으며

어느새 일년의 절반이 지나가려한다. 한 해의 정 중앙에 있어서인지 6월은 마음을 숙연하게 하는 달이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6월이 오면 유난히 차분해 지는 다른 이유는 아마도 6월은 보훈의 달이기도 해서일 것 같다.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많은 분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보훈의 달, 그래서 6월이 되면 우리 마음에 나라에 대한 생각이 특별한 자리를 잡기도 한다. 모국이라고, 내 나라라고 부를 수 있는 나라가 있음에 우리는 얼마나 감사하고 살았는지 잠시 반성해 보기도 하면서 6월을 맞는다.

200년 전쯤 폴란드의 한 음악의 천재가 있었다. 감수성 예민하고 음악에 대한 비범한 재능을 지닌 이 젊은이는 음악 뿐 아니라 자신의 나라를 가슴에 안고 살았던 인물이었다. 많은 곡절을 겪은 나라, 폴란드가 결국 주위 여러 나라에게 지배되며 독립적 자주성을 잃었던 시기에 태어나 성장한 피아노의 시인,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 1810~1849)이 바로 그 사람이다. 천성적으로 유순하고 내성적인 성품을 지녔던 쇼팽은 요란하고 큰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나라를 깊이 사랑하고 그 나라를 향한 심정과 아픔을 음악을 통해 표현했던 작곡가였다. 그러나 그 음악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그 어떤 행위보다 강렬하고 간절한 마음을 전하며 폴란드를 각인시키고 있다.

파리에서 활동하던 쇼팽은 자신의 심장만이라도 조국의 땅에 묻히기를 소원했을 정도로 그는 자신의 나라에 대한 마음이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마음이 극명하게 나타나는 작품이 피아노 연습곡 작품 1012, ‘혁명이다. 이 작품은 러시아군이 폴란드 혁명운동을 탄압하고 무력으로 바르샤바를 점령했다는 소식을 파리에서 듣고 작곡했다고 알려진 곡으로 쇼팽의 의분과 슬픔이 담겨진 음악이다. 그 기간 연주여행 중에 있었던 쇼팽은 자신의 연주수익금을 조국의 혁명운동을 위해 기부했다고 하니 그의 마음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은 훗날 자신의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폴란드를 방문하려했으나 러시아의 제제를 받아 갈 수 없는 결과를 낳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이런 갈등은 쇼팽의 사후에도 계속되어 그토록 고국 땅에 묻히고 싶어했던 작곡가의 소망은 러시아로부터 거절당하고 결국 그의 심장만이 폴란드 땅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쇼팽의 묘비는 폴란드에 하나, 그리고 프랑스에 하나, 두 곳에 남아있다.

쇼팽의 무언의 항변인 혁명연습곡은 그의 27개의 피아노 연습곡 중에 12번째 곡으로 그 어떤 작품보다 작곡가의 강한 내면이 드러나는 곡이다. 이 작품은 1831년에 작곡되어 당대의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에게 헌정되었다. 3분이 채 안되는 연주시간이 소요되는 음악이지만 이 짧은 곡을 통해 전해지는 감동은 매우 크다. 왼손의 빠르고 복잡한 음형은 폴란드의 상황의 긴박함과 혼란스러움을 표현하고 c 단조로 진행하는 오른손의 단호한 선율은 조국의 운명을 바라보는 쇼팽의 울분과 슬픔의 표출이다. 중간 부분은 쇼팽은 간절함을 담아 오열하듯 구슬픈 선율로 노래하지만 마지막 순간 확신에 찬 강한 선포로 곡을 끝맺는다. 마치 폴란드의 독립과 번영에 대한 확신을 세상을 알리려는 듯 가장 분명하고 웅장한 피아노 소리로 결론짓는다. 쇼팽의 혁명연습곡을 다시 들으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나라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지 못했음을 깨닫게 된다. 부패했다고, 상황이 나쁘다고 불평하면서도 정작 이 땅의 백성으로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하게 구하지 못했다. 여름을 시작하는 6월은 쇼팽의 피아노 곡이 주는 교훈을 마음에 담으며 우리들의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최현숙 교수

침신대 교회음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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