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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에 숨겨진 이야기>인애하신 구세주여(새279/통337)

찬송에 숨겨진 이야기

인애하신 구세주여(279/337)

작사: 패니 크로스비

(Fanny Jane Crosby, 1820-1915)

작곡: 윌리엄 도언

(William Howard Doane, 1832-1915)

불쌍한 눈먼 얘야

 

1.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후렴) 주여 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 오라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2. 자비하신 보좌 앞에 꿇어 엎드려

자복하고 회개하니 믿음 주소서

3. 주의 공로 의지하여 주께 가오니

상한 맘을 고치시고 구원하소서

4. 만복근원 우리 주여 위로 하소서

우리 주와 같으신 이 어디 있을까

 

패니 크로스비(Fanny Crosby)가 태어난 지 6주쯤 되었을 때 감기에 걸렸다. 뉴욕 퍼트넘 카운티의 의사는 감기로 눈이 부어있는 아기에게 겨자 연고를 처방해주었다. 잘못된 치료로 아기는 평생 동안 조금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자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는 태어나면서부터 불행한 인생이 시작되었다.

크로스비가 5살이 되었을 때 이웃사람들은 돈을 모아 밸런타인 모트 박사에게 보내주었다. 뉴욕의 유명한 외과의사 모트 박사는 어린 소녀의 눈을 진찰했다. 명의인 모트 박사도 크로스비의 잃어버린 시력을 회복시킬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어린 크로스비는 진찰을 받은 후 의사선생님이 침울한 목소리로 불쌍한 눈먼 얘야~”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의사의 동정어린 표현은 그녀의 마음에 평생토록 남았다. 5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였지만 그 말로 인해 크로스비는 비록 나는 볼 수 없지만 아름다운 삶을 살꺼야라고 혼자서 되새기며 살아갔다. 시력이 절대로 회복될 수 없다는 진단을 받고도 아이는 슬퍼하지 않고 기쁘게 살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8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녀는 세상을 볼 수 없지만 마음의 눈을 뜨고 하늘의 소망을 이렇게 노래했다.

 

, 난 얼마나 행복한 아이인가.

Oh, what a happy soul I am,

비록 내가 볼 수 없어도

Although I cannot see;

이 세상에서 나는 만족하리.

I am resolved that in this world contented

I will be.

나는 얼마나 많은 복을 누리는지

How many blessings I enjoy,

다른 사람이 누리지 못하는 복을.

That other people don’t;

내가 눈이 멀었기에 울고 한숨짓는 일

To weep and sigh because I’m blind,

나에겐 있을 수 없으리.

I cannot nor I won’t.

 

20년이 지난 후 크로스비는 시인으로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24세 때 그녀는 시집 ?눈먼 소녀와 시?(1844)를 출판했다. 뉴욕 맹아학교를 졸업한 후 그녀는 모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음악가 등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었다. 어느 날 교장선생은 그의 비서가 눈먼 크로스비가 읊는 시를 받아쓰는 광경을 보고 근무시간을 낭비한다고 나무랐지만 그들은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나중에 대통령 스테판 클리블랜드까지도 그녀를 백악관으로 초대해 시를 받아 적었다.

글을 쓰는 재주가 뛰어났던 크로스비는 44세까지 다양한 주제로 세속시를 썼다. 하지만 찬송 작곡가 윌리엄 브래드버리를 만나면서 그녀의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예배를 위한 찬송을 쓰는데 재능을 사용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라는 그의 권유가 그녀에겐 하늘의 음성으로 들려왔던 것이다.

그 날 이후 크로스비는 단 한 편의 세속시도 쓰지 않았다. 수많은 작곡가들이 그녀의 가사에 곡을 붙였고, 그녀는 브래드버리에게만 2,500여 편의 찬송시를 건네주었다. 그녀가 지은 찬송이 8천여 편에 달했다. 한국 찬송가에는 크로스비가 지은 찬송이 무려 21곡이나 실려 있다.

크로스비는 어릴 적 불쌍한 눈먼 얘야.”라고 들었던 것을 기억하며 결코 자신이 불쌍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앞이 안보여 아름다운 시에 집중할 수 있어서 실명된 눈을 복으로 여긴다고 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시력을 돌려주신다 해도 거절하고 싶을 거예요. 제가 눈을 뜨자마자 보고 싶은 건 천국에서 뵙는 예수님 얼굴이기 때문이죠.”

이렇게 늘 믿음을 지키며 살던 그녀에게도 사탄의 유혹이 틈을 탔다. 크로스비가 48세였을 때 여러 일들이 그녀를 괴롭혔다. 크로스비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순간마다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한 것을 깊이 뉘우쳤다. 주님께서 부르지 않으시면 한순간도 세상을 이길 수 없다고 가슴을 치며 주님께 간구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 오라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날 부르소서.” 이 찬송이 바로 인애하신 구세주여이다.

찬송에 사용된 내가 비오니,’ ‘날 부르소서,’ ‘꿇어 엎드려,’ ‘구원하소서,’ ‘위로하소서처럼 가사에 간절함이 묻어난다. 특히 후렴에서 주여, 주여를 반복하여 부르는 것은 그저 부르는 것이 아니라, 다급히 외치는 갈급한 절규이다. 우리도 이처럼 주님을 불러야 한다. 주님을 떠나서는 잠시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긍휼을 베푸시는 주님 안에서 살 때 세상을 이길 수 있다.

김남수 교수 / 침신대 교회음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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