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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수정 교수의 음악읽기> 음악 속의 이열치열(以熱治熱)

2012년 여름은 참으로 더웠습니다. 때로는 사정없이 쏟아지는 뜨거운 열기가 마치 진원지를 알 수 없는 독가스처럼 살인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더위도 위협적일 수 있을까요? 그럼요. 노인들에게 더 위험한 건 추위보다 더위랍니다.   


사랑하는 침례교 형제, 자매 여러분, 내년 여름을 위해 미리 알려 드리죠. 음악 속의 이열치열법입니다. 우선 심각한 음악은 안 되겠고, 서정적인 여성의 목소리 보다 열정과 낭만을 갖춘 남성의 목소리, 역시 더위엔 시원한 테너의 음성이 최고입니다. 그리고 이열치열이라, 태양과 정열을 얘기하는 음악이면 더욱 안성맞춤이겠지요. 그래서 떠올린 곡이 바로 해양으로 둘러싸인 태양의 나라 이탈리아의 네아폴리탄 가곡들(Neapolitan Songs), 소위 나폴리 민요라 불리는 노래들입니다.


뜨거운 태양이 쏟아지는 곳, 시원한 바람이 키 큰 나무들 사이로 너그럽게 불어오고, 덥지만 습하지 않은 곳, 바로 나폴리의 음악입니다.
대부분의 나폴리 가곡들은 선율이 경쾌하고 화려한 것이 특징입니다. 강렬한 태양을 노래하고 금싸라기 같은 해변을 찬미합니다. 활기와 낭만이 넘치는 항구와 열정과 변덕스러움이 술렁이는 도시를 노래합니다. 물론 찬란한 연인들의 사랑과 이별은 필수입니다.


그러나 나폴리를 정열의 항구 도시로만 이해하는 것은 50%의 이해입니다. 그곳엔 지상의 낙원으로 불리는 카프리 섬도 있지만 토마스 아퀴나스가 수학하고 또한 후학들을 가르친 유서 깊은 도미니크 수도원도 있습니다. 서구 역사상 가장 오래된 나폴리 대학 음악원이 있는 곳도 역시 나폴리입니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교회음악 산실인 플레미쉬(Flemish) 학파가 시작된 곳이며, 그 후 근 500여 년 동안이나 음악적 명성을 이어왔고 근대에는 매년 9월마다 삐에디그로타 가곡 페스티발 (Piedigrotta Song Festival)의 후원지가 되어 주옥같은 나폴리 민요들을 속속 탄생시킨 곳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후니쿠니 후니쿨라(Funiculi, Funicula), 오 솔레 미오(O Sole mio), 산타 루치아 (Santa Lucia), 돌아오라 소렌토로(Torna a Soriento) 등과 같은 혹시 학창시절 음악시간을 좋아하신 멋진(?) 분이라면 그 중 한 곡 정도는 이태리어로도 부르실 수 있는 가곡들입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세계적인 테너 삼인방이었던 파발로티, 도밍고, 카레라스가 노래하여 전 세계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을 열광시킨 바로 그 열정과 낭만의 노래들입니다. 


그렇다면 나폴리 민요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해방감이 아닐까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넓은 감정선, 인공적인 조절이 전혀 필요 없는 아름다운 선율, 빠르기의 맥박이 잠시 불규칙하여도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 자유로움 등등, 음악적 카타르시스가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스레 달래줍니다. 태양과 정열과 비록 죽을 것 같은 실연의 아픔을 이야기 하여도 곡조에 부채가 달린 양 음악은 여전히 시원합니다.


카푸아(Eduardo Capua, 1865-1917) 작곡의 “오 나의 태양”은 “산타 루치아”와 함께 나폴리 민요 중에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노래입니다. ‘오 맑은 햇빛 너 참 아름답다/ 폭풍우 지난 후 너 더욱 찬란해/ 시원한 바람 솔솔 불어오니/ 하늘에 밝은 해는 비친다/ 나의 몸에는 사랑스러운 오 나의 태양 비친다 / 오 나의, 나의 태양, 찬란하게 비친다’  


위의 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번안 노랫말입니다. 태양이 의인화되어 마치 사랑하는 연인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의 이태리 시 속엔 이와 달리 두 개의 태양이 뚜렷하게 찬미의 대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늘에 빛나는 태양과 또 하나의 태양, 바로 동격으로 표현된 나의 태양, 마치 하늘의 태양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사랑하는 그대입니다. 그야말로 한 노래 속에 두 개의 태양이 나를 비추고 있으니 진정 음악 속의 이열치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폴리 민요 속에 잠시 상상해 봅니다. 햇살 가득한 맑은 날, 바다는 수천의 고기비늘처럼 반짝입니다. 저 멀리 나폴리 항구에서 청아한 나폴리 민요가 바람결에 실려 옵니다. 때론 강하게, 때론 고요하게. 가만히 눈 감으니 무더운 더위가 시원스레 사라집니다.


때로는 삶 속에서 마치 피할 수 없는 한 여름 밤의 무더위처럼 살인적인 나날들과 부딪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건 아름다운 가을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입이십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잠시라면 음악 속의 이열치열법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오 나의 태양” (o sole mio)
햇살 가득 청명한 날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대기는 마치 폭풍 후처럼 맑게 개이니
마치 성대한 의식을 치르는 것 같구나
햇살 가득 청명한 날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또 하나의 태양이 더욱 찬란하구나!
바로 나의 태양, 나의 태양인 너,
그대의 얼굴에선 광채가 나누나. 
오 나의 태양, 너의 얼굴에서 빛이 나누나.


차수정 교수
침신대 교회음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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