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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의 논쟁을 끝내라 명백한 성경적 이단 안식일 교회의 정체 (7)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1:25)

율법은 멍에다 사람으로 자유케 하는 것이 아닌 억압과 속박과 굴레다. 율법이 제공하는 자유가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율법인 자유의 법과 비교할 때 그러하고 율법의 끝을 볼 때 심판과 저주와 형벌뿐인 결과를 생각 할 때 그러하다.(2:14~15, 3:13)율법에는 용서와 자비와 긍휼이 없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러므로 속죄와 희생의 피가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자유는 듣고 잊어버림이 아니라 실행 하게하는 법이다.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정결하고 깨끗한 경건이다.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대속의 피와 생명을 희생시키셨음을 자신의 은혜(선물)로 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마음과 생각에 기록된 새 계명이요 자유의 율법인 것이다(8:10, 10:16, 31:33).

 

옛 계명이 돌과 양피지에 기록되었다면 몰랐었다고 회피 할 수 있었겠으나 새 계명은 심비에 기록됐으니 핑계할 수 없다. 즉 어떤 면으로는 더욱 엄격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이웃 사랑의 최고한 법은 긍휼(사랑)을 행하는 법이다.(2:8)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 한다 하였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 사랑은 율법의 최상의 법이며 율법은 사랑의 최하의 법이라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법은 사랑하나를 실천함으로 율법 전체를 준행하게 하는 법이다. 이는 한 가지 율법을 범하면 모든 율법을 범하는 것이 된다는 법의 반대 방법이다.(2:10~11. 5:3)

 

율법을 연구하는 유대인의 두 방법

율법 전체를 크게 대별하고 전체의 뜻을 함축하는 방법 (22:35~40)이며 율법의 세밀한 부분을 분석하고 각 부분을 실행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방법(23:1~5)이다. 율법을 각 조항을 따라 세밀히 지키는 법은 유대인들이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방법을 좇아 장로들의 유전을 행하느라 율법의 원 뜻과 참된 의미를 상실하게 된 복잡다단한 방법이다.

 

예수께서는 십계명과 율법을 간략히 두 부분으로 함축하여 온 율법과 선지자의 대 강령이라 하심으로 율법의 완성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선포하셨다(22:37~40. :13~34). 유대인들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방법을 따라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자 한 방법은 율법을 행하여 구원 받고 의로워지고 칭찬과 상을 얻으려한 지극히 인간적이고 육신적 방법으로 이 삶을 실행한 이들은 행하면 행할수록 좌절과 낙망에 빠졌다(27:26).

 

그 뿐만 아니라 장로들의 유전을 다 지키려니 더욱 힘들었다(23:1~5). 바리새인 니고데모의 고뇌(3:1~21)와 부자 청년의 고뇌에 찬 질문 어찌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9:16~22) 이 질문은 율법을 행하는 이들의 불가항력 한 인간적 한계에 부딪친 절규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실현 가능한 방법을 사랑을 실행함으로 이루라고 명하시며 자신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 온 율법의 실현임을 선포하셨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대로 행하면 나의 친구라 (15:9~14) 하셨다.

 

그러므로 사랑을 실행함은 온 율법의 완성인데 바울사도는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다. 라고 기록했고(5:14) 또한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많은 계명이 있을 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13:8~9)했다.

 

이제 율법을 실행하는 두 방법을 비교했는데 이는 앞서 말한 고기를 잡는 던지는 그물(투망이라 함)줄 하나 밑에 낙하산 모양 같은 그물과 밑에 두루 추가 달린 투망은 당김 줄을 통하여 고기를 잡게 만들어져 있다. 이 투망은 크기가 크고 넓어 추와 그물(율법: 옛계명)을 잡고서는 고기를 잡을 수 없다 추가 너무 많아 두 손으로는 던질 수 없기 때문이다. 방법은 끝에 달린 줄(사랑의 계명; 새계명)을 이용하여 그물과 추(율법)를 당겨 추슬러야만 그물을 던질 수 있고 고기를 잡을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추와 그물을 직접 잡는 법은 율법주의자들의 방법이요 끝의 한 줄을 잡고 그물전체를 추슬러 잡는 법은 예수의 사랑의 계명을 실행함이다. 율법을 행하여 구원과 의를 얻으려 하는가? 바리새인과 서기관 장로들의 유전으로 구원과 상급을 얻으려 하는가? 사람의 계명과 가르침으로 구원과 상급을 얻으려 하는가? 포기하라!(5:3, 27:26)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따라 그분의 삶을 행하라! 그분처럼 행하라! 율법은 저절로 끌려 따라오게 되고 이루어져 당신은 구원과 상급과 칭찬을 받게 될 것이다.(5:14, 13:8~10) 이것은 불순종한 한사람 아담의 뒤에 설 것인가 아니면 순종한 한사람 예수 그리스도 뒤에 설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5:12~21) 또한 계집종과 그 아들을 따라 내어 쫓김을 받으려느냐? 아니면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로 유업을 얻을 것이냐를 선택하는 것이다.(4:21~31)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로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5:39)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1:1~2)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 되었고”(1:16)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2:2b~3)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2:8)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율법)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예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2:14~17)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주인공이며 열쇠며 감추인 보화다.

그에게서 하나님을 보며 배우고 교훈을 받으며 영생을 얻으며 사단을 물리칠 힘과 지혜를 얻는다. 그러므로 사탄은 예수를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생각지 못하게 하고 따르지 못하도록 우리의 눈과 귀와 생각과 마음을 유혹하고 미혹한다. 속지 말라 !

오직 예수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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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상 목사 / 은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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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에도 우리의 기도는 멈추지 않는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는 충남 강경 옥녀봉에서 찬송과 기도의 부르짖음이 울려 퍼졌다. 114차 총회(총회장 이욥 목사)는 지난 5월 10일 강경 옥녀봉 ㄱ자 복원교회에서 신사참배거부 교단기념일 감사예배를 드렸다. 이날 예배는 81년 전, 1944년 5월 10일 일제총독부 함흥재판소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교단이 폐쇄된 날을 기리고 믿음의 선진들의 뜻을 되새기는 행사로 진행했다. 1부 감사예배는 총회 교육부장 김성렬 목사(만남의)의 사회로 평신도부장 김태욱 목사(두란노)가 대표로 기도했다. 이어 전국여성선교연합회 글로리아합창단이 찬양하고 총회 여성부장 하숙현 권사(범일)가 성경을 봉독한 뒤, 이욥 총회장이 “하나님 말씀 순종에 목숨 건 사람들”(렘 38:5~6)이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욥 총회장은 설교를 통해, “예레미야는 제사장의 아들이자 선지자로 무너지는 유다 왕국의 마지막을 보며 애통한 선지자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백성들의 불순종과 왕국의 멸망을 예언하며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선포했다”며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고난과 수난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교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