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재 총회장과 함께하는 35명의 순례자들은 유럽의 종교개혁지 방문을 통해 한국교회의 갱신을 다지는 기회로 삼고 있다.
유럽의 종교개혁가 ‘얀 후스-루터-츠빙글리-칼뱅’ 개혁자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돈과 국가권력, 그리고 명예욕’에 자유롭지 못한 한국교회의 뼈아픈 현실을 되짚어 보는 기회를 제공했다. 체코의 얀 후스와 독일의 마르틴 루터는 각각 자국어로 된 성경을 번역하며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부르짖으며 목숨을 걸고 저항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말씀의 실천에 소홀했던 한국교회의 철저한 회개가 필요한 시기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독일은 루터의 종교 개혁과 함께 루터교가 세워졌고 그 외 유럽지역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칼뱅을 포함한 츠빙글리 등의 신학적 영향으로 개혁교회(The Reformed Church)가 만들어졌다.
특별히 스위스 취리히는 아나뱁티스의 탄생지로 유명하다. 아나뱁티스트는 침례교회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아미쉬와 메노나이트 교파의 뿌리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번 유럽 종교개혁지 탐방 가운데 가장 의미있는 곳은 스위스 취리히라고 해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취리히는 아나뱁티스트의 탄생과 고난의 역사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총회장 유관재 목사는 이번 유럽 종교개혁지 및 종교개혁가의 활동과 관련, “루터의 종교개혁은 국가권력과 함께 했다. 츠빙글리도, 칼뱅도, 장로교회도 심지어 식민지 시절 미국교회의 시작도 국가권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침례교회는 국가 권력과 함께 가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기에 침례교회는 다른 교단처럼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인 신앙을 갖게 됐다. 복음적이면서 성경적일 뿐 아니라 예배가 살아있고 선교적인 교회가 될 수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총회장은 또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올해 권위적이지 않고 자발적 회중정치의 시스템을 갖고 있는 침례교회가 이 시대 한국 교회의 새로운 부흥의 물줄기를 만들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아나뱁티스트 3인방으로 불리는 펠릭스 만츠, 콘라드 그레벨, 조지 블라우록이 자주 모여 성경공부와 개혁에 관한 토론 등을 자주 가져 반사회적 위험인물로 내몰렸다. 1526년 12월 츠빙글리와 함께한 취리히 시의회는 “유아세례” 등을 거부하는 아나뱁티스트의 교리를 가르치거나 설교를 하는 자들에 대해 사형에 처하도록 하는 법을 제정했다. 이 법이 발효된지 얼마되지 않아 펠릭스 만츠는 법을 어긴 죄로 전신이 묶인 채 산채로 리마트강에 던져져 아나뱁티스트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됐다. 이때가 아나뱁티스트가 탄생한지 불과 2년을 갓 넘긴 1527년 1월 이었으며, 2004년 6월에 그가 수장된 위치가 보이는 강가에작은 추모 명판에 이렇게 적혀있다.
“여기 리마트강의 중간 지점에 종교개혁 시기인 1527년부터 1532년까지 펠릭스 만츠와 다른 다섯명의 아나뱁티스트가 수장됐다. 취리히에서 1614년 마지막으로 처형된 아나뱁티스는 한스 랜디스다.”
/ 스위스 취리히=최치영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