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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최고지도자 상징, ‘수령’ 성격 변화 (1)

정교진 박사의 북한보기-5

- ‘작은 스탈린으로의 김일성 

예수님은 30세에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시고 3년 동안 공생애 삶을 사셨다. 그분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시기 위해 특별히 12명의 제자를 세워서 그들과 동고동락하셨다. 그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을 뭐라고 불렀을까? 우리는 쉽게 예수님이라고 불렀겠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분의 존암(이름)이다. 오늘날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면 그것은 큰 실례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이 어느 날 제자들을 향해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실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16:16)라고 고백한다. 이 대답에서 우린 두 가지를 유추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예수님께 그리 많이 불려 지지 않았다는 것과 제자들이 예수님을 향해 자주 부른 호칭이 ’(Lord)라는 사실이다. 주는 쉽게 말하면 주인님이다. 이처럼, 신약성경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주님’(Lord)으로 부른 것을 알 수 있다.


구약의 하나님은 모세 이후부터는 여호와’(Jehovah)라고 불리 우셨다. ‘스스로 계신 분’(자존자)이란 뜻으로 하나님의 인격적 특성에 맞는 용어들과 짝을 이뤄 사용됐다. , 여호와 이레(예비하시는), 여호와 라파(치료의), 여호와 닛시(승리의), 여호와 샬롬(평화의) 등으로 불리 우셨다. 분명한 것은 구약의 여호와, 그리고 신약의 주님은 직위와 직함이 아니다. 하나의 상징이자 호칭이다.

북한의 수령도 마찬가지다. 수령은 김일성의 절대적 권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이미지이자 상징이다. ‘수상’(1948)주석’(1972)처럼 북한헌법에 규정된 직함이 아니다. 김일성이 수령으로 불려 진 시점에는 다양한 주장들이 있다. 또 그 수령의 의미에서도 다양한 해석들이 있다. 하지만, 저자가 연구한 지도자이미지의 상징화측면으로 접근할 때, 해방된 이후 북한지역 사람들에게 김일성에 대한 수령의 이미지를 심어준 때는 대략 1946년 정도로 보인다.


김일성이 소련에서 평양에 들어온 시기가 1945(10.14)이지만 이 당시는 소련군정이 조만식 선생을 지도자로 지지해 조만식 선생이 위원장이자 당수인 인민정치인민위원회’, ‘조선민주당’(1945.11)이 북한지역을 주도하고 있었던 때였다. 따라서 이 당시 김일성은 소련의 지시하에 조만식 선생을 향해 고도의 통일전선전술(저자는 북한의 최고의 통일전선전술로 평가)을 펼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조만식 선생이 평양 고려호텔에 연금(1946.1.6)된 이후부터 김일성은 소련의 비호아래 급부상하고 정치력을 발휘했다. 바로 이때부터 김일성은 자신이 북한의 스탈린이라는 이미지를 얻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나타내는 용어가 바로 수령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수령용어는 북한 초기정권이 김일성을 작은 스탈린이라고 선전하는 대표적 수단이자 용어였다. 이러한 성격으로의 수령의 이미지는 김일성이 빨치산 아류였던 갑산파를 제거하고 주체사상을 공식적으로 제시하며 일인독재권력을 구축한 1967년까지 계속 이어졌다. 수령이라는 지도자 이미지는 1967년에서야 김일성의 대표적 지도자 상징으로 자리잡으며 동시에 김일성의 대표적 호칭이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수령의 성격도 작은 스탈린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게 된다.


/ 정교진 박사 침례교통일리더십연구소 소장

고려대북한통일연구센터 연구교수

ezekiel919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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