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출 장의신┃(재)국립극단
국내외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교류를 통해 한국 연극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노력하는 (재)국립극단은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며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동시에 받고 있는 정의신 작가·연출가와 협력을 통한 합작공연 <푸른배 이야기>가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오는 3월 8~24일 공연된다.
이 극안의 주인공들은 어촌마을에서 살고 있는 소시민들이다. “소래강 제일 하류에 위치한 남촌도림동 지명의 어촌. 북쪽은 논밭, 남쪽은 ‘백만 평 앞바다’라고 불리는 광활한 황무지가 펼쳐있으며 그 너머는 바다다. 황무지와 바다로 고립된 이 작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은 남루하다.
망가지고 볼품없는 배를 강매하는 할아버지, 매일 격렬하게 싸우면서도 도박판에서는 사이좋은 부부,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배에서 홀로 살고 있는 늙은 선장, 부모에게 버림받고 길에서 음식을 주워 먹으며 무덤가에서 뛰노는 소녀, 영화를 처음 접한 아이, 힘 쓰는 일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일용직 노동자... 등 그들은 무례하고 무지하며 노골적이다.
이 작품에는 특별한 사건이 없고 가난한 마을 속에서 본능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각자의 사연이 소란스럽게, 또는 담담하게 펼쳐질 뿐이다. 허나 그들의 뻔뻔한 삶 속에는 인간 본성에 숨겨진 야성과 생활력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푸른배 이야기>는 30년 전, 이 가난한 어촌마을에서 3년 동안 머물렀던 작가가 다시 이곳을 찾아가면서 마을 사람들의 삶을 옴니버스 형태로 이야기한다. 개성이 뚜렷한 마을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삶을 비관하지도 않는다. 순간순간 본능적으로 생활할 뿐이다. 그러나 정의신 작가는 저질스럽고 교활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 존재하는 소박하고 순수함을 주목한다. 그는 그들만의 삶으로 특수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자연 그대로의 꾸밈없는 본성과 생을 대하는 자세에 에 대한 이야기로 확대시킨다.
특히 주목할 점은 14명의 배우들이 40여명의 마을 주민들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역을 혹은 한 배역을 여러 배우가 나누어 맡기도 한다는 것이다. 각각 강한 개성과 삶의 이력을 가진 마을 주민들을 한 배우가 연기하는 형식은 관객들의 환기력을 극대화시켰다.
또한 이전 장면에서 노인을 맡았던 배우들이 다음 장면에서 어린아이로 다시 등장하는 등 실험적인 연출을 시도했다.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와 노인이 서로의 역할을 주고받는 장면 등에서 관객은 신선함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푸른배 이야기>는 야마모토 슈고로의 소설 <아오베카 모노가타리>에서 정의신이 모티브를 얻어 무대공연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소설 속에서 백만 평의 넓은 갯벌을 가진 소박한 어촌마을은 현재 도쿄 디즈니랜드가 위치하고 있다.
정의신은 이를 착용, 인천시 남촌도림동을 <푸른배 이야기> 배경의 실제 모델로 삼았다. 소래길, 남동로, 호구포가 맞닿는 남촌도림동은 송도신도시가 개발되면서 구획정리 사업과 함께 전형적인 현대적 도시로 변했다.
한편, 정의신작가·연출가는 재일한국인 3세로, 08년 재일 한국인 가족의 삶과 애환을 담아낸 한일합작 연극 <야키니쿠 드래곤―용길이네 곱창집>, 전라도의 한 섬을 무대로 이발소를 운영하는 홍길네 가족과 섬 주둔 일본군들 간의 애증을 다룬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 일제 강점기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의 사랑과 우정 그린 <나에게 불의 전차를> 등 한·일 양국의 역사 및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여러 차례 만들었다.
작품의 내용 뿐 아니라 연출방식에 있어서도 한국과 일본 양 국가의 특징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감정을 억누르고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대신에 웃고 떠들며 감정을 격렬하게 드러낸다. 경계인으로 살아온 그의 이력처럼,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정서와 감정, 생각과 문화, 역사와 배경이 정의신 작품 속에서 융화되어 있다. 양국의 대중들은 익숙한 느낌과 이국적인 인상을 동시에 받는다.
역사적 소재, 사회적 문제 등 다소 민감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한일 양국에서 공연되고 있으며 호응과 찬사를 동시에 받고 있다. 또한 공연에 참여하는 스탭 및 연기자도 국경의 제약이 없어 양국 문화교류 차원에서도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