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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기고

원산지역 32인의 순교적 삶 조명, 침례교단 통일의 길목

정교진 박사의 북한 바라보기-25

며칠 전 우연히, 책 한권을 만나게 됐다.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보고였다. 원산지역에서 박해를 당한 32인의 침례교 지도자들에 대한 정보가 담긴 책이다.
책의 저자가 32인에는 속하지 않지만 함께 구속되었던 강주수(교사)의 아들이었다. 책 제목이 ‘아버지의 기도’인 만큼 저자(강대건)는 서두에서 그의 아버지를 소개하는데 32인은 그 안에 포함된 내용들이다. 강주수는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였다. 뿐만 아니라, 32인중 이종근 목사(감목)와 더불어 그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전치규 목사(3대 감목)와는 사돈지간이었다.


전치규 목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아버지는 동아 기독교 목사 전치규 외에 32인의 교역자들과 함께 구속됐는데, 아버지와 전치규 목사와는 서로 사돈 간이었다.(전목사의 맏딸과 나의 사촌 형- 큰아버지 강병수의 아들-이 결혼한 것이다) 결국, 전 목사는 1944년에 순교했지만(2월13일) 아버지는 동아 기독교에 직접 속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석방됐다(31페이지 내용). 당시, 33인이 구속됐던 헌병대에 오장(일본군 하사관 계급)으로 있으면서 이들을 고문한 인물이 노덕술임도 밝히고 있다.
이종근 감목이 1945년 만주에서 공산당에 의해 순교당한 사실도 알리고 있다. 
1943년에 저자는 자신이 안대벽(펜윅 선교사의 양자, 책에서는 안대백 표기)의 양자가 될 뻔한 내용도 전한다. 저자가 어렸을 때 안대벽의 집에 자주 심부름을 가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집에서 펜윅 선교사를 직접 본 기억을 담기도 했다.


“안씨 집의 기억으로는 또 하나가 있다. 방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아버지와 나는 펜윅 선교사의 방에 가서 그를 만나보았다. 온통 흰옷 차림으로 지팡이를 의지하여 의자에 앉아 있는 홍안 백발의 노인인 그의 모습은 산신령을 방불케 했다. … 72세가 된 그의 모습은 호호백발의 형해의 노골이었다”(145페이지)   
북한 연구자로서, 침례교의 본산인 원산지역에 대해 누구보다 관심을 갖고 지리적, 역사적 배경 연구를 해오면서 필자는 교단 관련 인물연구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너무나 좋은 정보를 얻게 된 것이다. 필자는 금년에 타 교단 신학교 연구프로젝트에 공동참여를 했었다. 연구중점은 해방 전·후시기 민족운동을 한 개신교지도자들을 조명하는 일이다.


필자는 조만식 선생님을 비롯한 북한지역 교회 지도자들을 고찰했다. 내년에도 계속 참여하게 되어 월남한 개신교 정치지도자들을 집중 조명하게 될 것이다. 연구에 참여하면서 우리 교단 내에도 그 정신을 계승할 만한 위대한 분들이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한시도 떨치지 못했었다.
바로 그때 이 한권의 책이 32인의 원산지역 지도자들에게로 안내해 줬다. 교단 차원에서 이분들을 집중조명 할 필요가 있다. 그 엄혹한 시기에 순교적 정신으로 끝까지 모진 고초를 감내하며 승리의 개가를 부르신 분들, 전치규 목사와 이종근 목사는 결국 장엄한 순교의 반열에 서기까지 했다.


하나님 앞에 통일의 세대로 사명을 받은 우리는 과연 어떤 정신을 가져야 하는가. 그 정신은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민족을 품으며 신앙의 본을 보인 우리의 선배들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다. 그러기위해서는 그분들이 어떠한 정신으로 민족을 바라보고, 해방을 염원했는지, 또한 공산치하에서 신앙의 자유를 선포했는지 그 삶의 궤적을 따라가야 한다. 그래서 묻혀져 버린 그분들의 고결한 생애를 조명해야 내야한다. 비록, 교단 내에서 펜윜 선교사에 대한 찬반논의가 있지만, 그렇다고 주님의 나라를 위해 숭고한 삶을 살아낸 우리 내 선진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분들을 조명하는 것은 우리 교단 내에서 통일을 준비하는데 있어 우선적으로 진행돼야 할 작업이다. 이분들의 생애가 조명될 때 그 정신이 보여 지고, 그 정신은 우리로 하여금 통일로 나가게 하는 길목에 서게 한다.


최근에 역사학계에서는 ‘기독교 민족주의’가 화두이다. ‘기독교’와 ‘민족주의’는 양립될 수 없다는 주장들도 나오지만, 주님의 마음으로 민족을 품는 것이 ‘기독교 민족주의’ 아니겠는가.
특히, 남북분단이라는 특수상황과 환경에 처해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이 두 개가 분절될 수 없다고 본다. 기독교 정신은 민족을 뛰어넘는 초월적 영역이라는 견해도 일리가 있지만, 구약의 선지자들이 하나같이 민족을 품었던 자였고, 심지어 선교의 아버지라고 하는 사도바울도 그 누구보다 민족에 대한 애정과 아픔을 절절히 표현했던 주님이 제자였다. 필자가 언급한 32인의 믿음의 선진들도 주님의 마음으로 이 민족을 뜨겁게 끌어안았던 주님의 제자들이었다.


32인이 해방과 자유를 갈망하며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누구보다 민족을 품었기 때문이다. 내 민족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어져도 좋다는 사도바울의 고백이 이들 모두의 절절한 고백이었을 것이다. 비록, 반쪽 영토의 자유지만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축복은 이분들의 피끓는 절규의 결과물인 것이다. 이젠 정말 그분들의 숨결을 느껴야 한다.
오늘날 우리를 향해 외치는 그분들의 일성을 들어야 한다. 그분들의 정신이 이제 우리 가슴 속에 흘러 들어와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 안에 통일의 불꽃이 당겨질 것이다.


정교진 소장

침례교통일리더십연구소, 고려대 북한통일연구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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