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도를 전해서 우리나라에는 거지떼들이란 무리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의 고난과 6·25 전쟁의 전란에서 생겨난 동냥패들의 모임이 거지떼들이었다. 나는 그때 십대 청소년으로 그 거지떼의 모습을 유달리 새겨보는 지혜를 가졌다고 할까! 나는 그들의 삶의 조직과 패턴을 자세히 검토한 것 같다. 그들에게는 일정한 조직의 패턴이 있었다. 보통 10여명의 거지들이 한 떼가 되어 동냥을 하고 다녔다. 그들은 어느 동네 누구네 집에 길사(吉事)나 장례일이나 제삿날을 꼼꼼히 기억했다가 그 날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가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지만 당당히 동참한다. 그들의 조직을 자세히 보면 거기에는 왕거지 대장이 있고, 규율을 지키는 규율부장이 있고, 재무(?)를 관리하는 재무부장이 있고, 동네마다 길사흉사 등 대사가 있는 가구의 일시 주소를 챙기는 섭외부장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여기 부장이라고 한 것은 내가 지금 임의로 붙인 이름이지만 직분만은 꼭 그런 것 같다. 가령 섭외부장이 어느 집 잔치집에 들어간다. 다른 거지 양반들은 잔치집에 얼씬도 못하고 저 동네 한 모퉁이 보이지 않는 곳에 조용히 좌정하고 오직 섭외부장 한 사람이 잔치집에 들어가서 거지 인원보고와 거지 모인
얼마 전 기고한 니버(Niebuhr) 교수의 “사랑과 법”에 이어 어릴 적에 들은 도둑을 용서한 노인의 얘기이다. 도회지에 나가 살던 아들이 설을 쇠러 시골집에 내려왔다. 떠나 있을 땐 그리운 고향집이었지만 막상 돌아와 보니 한시라도 견디기 힘들었다. 집 벽에서 나는 황토 냄새가 너무 역겨웠다. 어디선가 된장 내처럼 쾨쾨한 냄새도 콧속을 후비고 들어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문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문틈으로 밖을 내다 본 그는 깜짝 놀랐다. 머리끝이 쭈뼛 선것은 도둑이었다. 다행히 손에는 흉기가 들려 있지 않았다. 살금살금 부엌을 돌아서 밖으로 나갔다. 도둑의 등 뒤로 날쌔게 달려들어 도둑을 땅바닥에 메어쳤다. 그리고 제 허리띠를 풀어서 도둑의 두 팔을 꽁꽁 묶었다. 온 식구가 깨고 아버지 영감도 달려 나왔다. 영감의 손에는 지게작대기가 쥐어져 있었다. 성깔이 불같은 노인 영감은 다짜고짜 말 한마디 없이 작대기를 휘둘렀다. 그런데 그 지게작대기가 아들의 등판에 철썩 올라붙었다. 영감이 너무 흥분한 나머지 도둑을 때린다는 것이 실수로 아들을 때린 거라고 다들 생각했다. 아들이 종아리를 싸쥐고 있는데 김 노인의 작대기가 재차 아들에게로 겨누어졌다
시골 사는 남동생이 억척같이 살아서 땅 깨나 좀 사고 소도 수 십 마리가 되는 등 그 동네에서 1호 거부(?)라 할까? 또 그 옆에 살고 있는 그의 누님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 동생은 몸을 기계처럼 쓴다는 것이다. 기계에도 윤활유가 있어야 돌아가는데 그 동생은 자기 몸 보신도 모른 채 일만 한다고 안타까워 못살겠다고 오빠인 나에게 호소해왔다. 그 동생도 환갑을 지난 나이에 농사일을 하기 때문에 조로(早老)현상이 보였다. 옆에서 보던 그의 누님이 제발 편하게 살고 건강 유의해서 먹고 자고 쉬라 해도 소 귀에 경 읽기란다. 그런데 그의 누님, 나에게 여동생이지만 그가 내리는 남동생의 여생은 모두 그럴 듯한 것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 그가 뼈 빠지게, 눈 들어가게 노동해서 한 푼 모은 것이 결국 자식 입에 들어가고 자기 입에는 알사탕 한 개도 빨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안되기를 일단 기대하고기도를 드렸다. 시골 남동생 이야기를 하다가 서울에 있는 나를 생각해 봤다. 나도 똑같은 코멘트를 받아야 마땅하다. 폭염 속에 오늘도 30도가 넘는 기온을 기록한 것을 보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그냥 노목(老牧)이 아니라 지금도 강의, 집필, 상담을 하고 있는 청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 피조물 인간이 하나님을 어찌 시험할 수 있는가? 더욱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감히 하나님을 시험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경망한 불경죄요 저주받을 일인데, 예수님도 마귀에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신6:16)는 구약 성서의 말씀을 인용해 꾸짖어 승리하셨다. 그런데 말라기 선지자는 어째서 감히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하셨는가? 1967년 8월 무더위 속에 춘천 기독교 연합성회가 열렸다. 나는 오전에는 죽림동성경교회에서, 오후에는 동부교회 연합집회에서 통역을 맡았다. 그런데 미국 전도단을 서울에서 안내해 온 목사님이 젊고 발음이 좋은 교인과 목사님을 선정해 오전 예배에 먼저 데리고 가셨고, 72세의 노인과 더 나이 많은 분을 나에게 남겨 두셨다. 그 당시 나는 사복 군인으로서 춘천 군인 복지센터 관장으로 봉사하며 춘천침례교회 부목사로 사역하고 있었다. 72세의 노인 이름은 찰스 이 내쉬(Charles Nash) 집사였다. 그는 미국 오순절
꽃과 똥이 다르듯이 나비와 똥파리는 다르다. 나비가 똥을 싫어함과 똥파리가 꽃을 싫어함은 그 속에 싫어하는 혼(魂)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나비가 꽃을 좋아하고 똥파리는 똥을 좋아하는 것도 그 속에 좋아하는 혼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동양사상에서 그것을 하늘이 명해준바 타고난 성품이라고 했다. 즉 성(性)은 하늘이 내려준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나비보고 똥에 앉으라 하던지 똥파리보고 꽃에 앉으라 해도 그 놈들이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속에 있는 혼의 다름 때문이다. 그 혼의 문제는 성의 문제이다. 나비는 똥을 피하고 똥파리는 꽃을 피하는 것은 똥과 꽃의 문제가 아니라 그놈들의 혼성의 문제이다. 그리스도인들을 찬송가 소리가 어떤 유행가보다도 듣기에 좋지만 불신자들은 그것도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말씀이 달고 오묘한 말씀이지만 불신자들에게는 무슨 주문이냐고 귀를 막는다. 그리스도인에는 진리의 영이 계셔서 진리를 좋아한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7) 그러나 세상은 그 진리의 영을 받을 수가
첫 번째 재판이 끝나니 독방에서 합방으로 옮겨졌다. 74년 3월 10일 처음 독방에 들어왔을 때 고독감에다 환멸을 느껴 누구와 말 할 사람을 찾아봤다. 건너편의 죄수들과 통방도 시도했으나 경비가 삼엄해 여의치 않았다. 사람인(人)자는 막대기 두 개가 서로 기대어 있는 것으로 사람은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대화하는 사회적 동물(social animal)임을 독방신세에서 절감했던 터였으나 4개월간 독방과 합방 4개월간 성경을 17독하고 50여권의 책을 읽고 9사 상하층 건물 200명의 수감자들에게 전도하고 기도하며 묵상하다보니 오히려 독방생활이 매우 친숙해졌다. 그런데 첫 번 재판이 끝나자 한 평도 안되는 방에 합방해 들어가니 먼저 들어온 5명 중 ‘감방장’ 길봉수 씨는 ‘감방규율’인 안철용 씨와 의논해 나의 자리를 마련해주고 ‘좌상’이라 불렀다. 나는 좌상이 무엇인지 모른 채 6명이 첫날을 지내는데 당시엔 긴급조치 아래 많은 죄수가 들어와서 용신하기조차 어렵고 밤에는 새우잠이나 앉아서 자는 형편이 되니 오히려 외로웠지만 독방생활이 당장 그리워졌다. 온갖 종류의 죄수들이 한 방에 모였고 무더운 여름 고약한 땀 냄새, 코고는 소리, 몸부림, 잠꼬대, 이를 가는 소리
옛날 어르신들께서 젊은이를 보고 던지는 한탄스러운 말이 있다. “이 식충아, 그것도 못하느냐? 이 식충아, 그러면 어떻하노?” 너무도 한심스러운 젊은이의 행동을 목격하고 답답해서 던진 어른들의 말이었다. 마땅히 생각해야 할 생각을 못하고,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을 못하는 젊은이들을 보고 밥만 먹어치우는 벌레들이라는 말이다. 사람이 밥 먹어 치우는 벌레라고? 그게 식충(食蟲)이다. 말하자면 밥값을 못 하는 사람들에 대한 모독적인 호칭이다. 식충인간은 입으로 넘어간 밥에 부끄러운 인생살의 주역들이다. 밥을 먹었으며 밥값을 하라는 것. 불교의 수행 중에 매끼마다 밥그릇을 향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는지 자성하는 관례가 있다고도 한다. 식충인간들은 밥값을 못하는 인간 일뿐만 아니라 한편 밥 찾아 하루 하루를 보내는 삶이 그들 삶의 전부라는 것이다. 평생 사는 것이 밥을 구하는 일, 그리고 그 밥을 먹고 배설하는 일, 그게 식충인간의 삶의 전부이다. 벌고 떠 벌어도 밥값에 다 들어가는 수입을 엥겔계수가 높다고 하는데 정말 작은 수입 때문에 밥 타령하는 것도 인간의 비극이고 엥겔계수 걱정 안해도 될 사람이 밥 타령하면서 사는 것은 더욱 비극이다. 이래저래 밥 밖에 아무
한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침례신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했을 때 대전지방회와 지방회지원 담당 서달수(Cloyes Starnes) 선교사가 협의해 핍박이 심하고 부흥이 안되는 도안교회(현 서머나교회)가 문닫게 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선교부에서 후원해 세운 농촌교회지만 문을 닫게 된다는 말은 신학도가 된 나에겐 충격이었다. 개학 전 남보다 먼저 신학교 기숙사에 와서 성경을 한 주간 읽으면서 성령 충만을 체험한 나는 견딜 수없는 주님의 부르심이 있었다. 1964년 3월 8일 주일, 계룡에서 버스를 타고 유성에 내려 10리길 되는 도안리로 걸어가 찾아가 교회당 청소를 하고 11시가 되니 교인들이 모여왔다. 남자는 이교성 청년 한분이고, 나머지는 박용금 박세순 두 여집사와 병이 있어 나온 자매, 이제자와 김용분 여청년, 그리고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감금례와 박병순으로 도합 8명이었다. 저녁예배를 마치고 돌아올 때 박용금 집사가 가제수건에 싸준 계란 두 개를 사례로 받아 도안교회 전임자요 동방인인 최한원 전도사와 이튿날 나눠 밥에 비벼 먹었다. 그 다음 주일 예배를 마치고 교인들과 함께 나오니 기다렸다는 듯 아래 주머니에 손을 넣고 나에게 굽실굽실 모여들어
전기 줄에 참새 다섯 마리가 종알거리고 있었다. 두 포수가 새 총을 쏴서 두 마리 참새를 떨어 뜨렸다. “쾅”하는 순간에 그러 그 전기 줄에 몇 마리의 참새가 남았을까? 수학도(數學徒)가 말했다. “세 마리요.” 다섯 마리 중 두 마리가 총 맞아 떨어졌으니 세 마리가 남은 것이 확실하다. 누가 이 답을 틀렸다고 말할 것인가? 순진한 수학도의 수학적 산수적 대답이다. 수학에는 참, 거짓을 가리는 힘이 있다고 수학자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전기 줄에 참새 세 마리가 남아 있을까? 현실파 사람이 씩 웃으면 말했다. “한 마리도 남은 게 없어요.” 맞는 말이다. “쾅”하는 총소리에 총알 안 맞는 놈은 혼비백산하고 날아갔기 때문이다. 어느 참새가 미련하게 거기 앉아 있겠는가? 이것은 현실파 사람의 현실적·현상적 대답이다. 우리는 판단해야 한다. 수학도의 답이 맞느냐, 현실파 사람의 답이 맞느냐? 어느 한 쪽 답만 맞다고 하기엔 곤란하다. 수학적·원리적 대답으로는 참새 세 마리가 있다는 게 맞고, 현실적 대답으로는 참새가 없다는 말이 맞다. 그러나 질문자가 기대한 대답은 무엇일까? 질문자의 속셈은 주관적이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질문자가 기대하는 답이 무엇이었
나는 가정형편상 대학진학은 못하고 57년 건달 놈팽이가 되어 폐결핵을 앓아, 평생 먹을 수 없었던 개를 여러 마리나 잡아먹으면서 수개월간 치료를 받았다. 59년 8월말에 또 다시 파라치욘 중독과 홍콩 독감 합병증에 걸려 열이 42도까지 오르내리자 병원에 입원하였고, 응급치료 후 3개월 또 병상신세를 졌다. 사라호 태풍 때는 죄악의 두려움을 느꼈고 혹시 죽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하루는 병상소식을 듣고 찾아오신 노령의 임부춘 전도사님께서 나를 억지로 일으켜 앉히고 10시간이 넘도록 설교를 하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주님의 섭리였다. 그때는 임부춘 전도사님이 미워서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마태복음 15장의 가나안 여인이 자기의 딸이 흉악한 귀신 들린것을 고치지 위해 예수님을 찾아와 부르짖어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15:28)는 응답의 칭찬받아 나았는데, 한 선생은 이방인도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인데 정당하게 기도하면 , ‘어찌 자기 자녀의 병을 고쳐 주시기 않겠느냐?’고 책망했다. 가만히 듣고 보니 이치에 맞는 말씀으로 믿어졌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아침 일찍 일어나 흐르는 냇물에 세수를 하고 감나무 가지를 철봉 하듯 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