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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설교

 

나의 모 교회이자 첫 사역 지였던 대흥교회는 당시에 대전의 중심가인 은행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삼천 명을 헤아리던 교인 수에 비해 예배당은 본당을 빼면 목양실과 작은 사무실 몇 개밖에 없었다. 나중에 교육관이 생겼지만 차로 이삼십 분이나 가야할 정도로 떨어져 있어 마음먹고 가기 전에는 활용하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라도 하려면 교회 안에서는 마땅한 장소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80년대 초반 무렵 대전에는 기존의 다방(소위 마담, 레지가 있는)과는 다른 커피숍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 기억으로는 처음 생긴 곳이 고전음악을 틀어주고 원두커피를 대학생 알바생이 서빙해주는 마음의 고향이라는 자칭 커피 전문점이었다. 기존의 다방과는 인테리어도 분위기도 차별화된 커피전문점은 마땅히 갈 곳이 없었던 젊은이들이에게 인기가 있었고 불과 이삼년 만에 시내 번화가에는 건물 하나에 한 개가 생길 정도였다.

 

지금의 대부분 체인점화 된 별 다방, 콩 다방등과는 다른, 각 커피숍마다 다른 분위기, 음악, 커피 맛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의 대부분 커피전문점은 요즘같이 커피머신으로 커피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네가 블랜딩한 커피를 사람이 직접 손으로 내렸고 스트레이트커피(원산지를 섞지 않은)의 경우에는 싸이폰으로 내려주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대로 교회 안에 마땅한 공간이 부족했던 나도 성경공부나 회의가 아닌 거의 모든 만남에 커피전문점을 이용하게 됐다. 커피자판기도 흔치 않던 시절이라 천 원짜리 점심을 먹고 사백 원짜리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그렇게 매일 한두 번 이상 커피전문점을 이용하다보니 교회 주변에 자주 가는 단골집도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자주 가던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평소의 커피맛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서빙하는 친구를 불러 주방장(그 때는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있는지도 몰랐다)이 바뀌었느냐고 물으니 주방장이 어디 가서 다른 사람이 내렸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 같은 커피라도 내리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주 단순한 작업으로 보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부터 커피가 원산지에 따라, 품종에 따라, 볶은 정도에 따라, 브랜딩(배합)에 따라, 내리는 방식에 따라 그리고 사람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월요일이었다. 교역자들이 쉬는 날이어서 유성에 가 온천을 하고 만날 약속이 있어 가끔씩 가는 조그만 커피전문점에 갔다. 시간 때문인지 날씨 때문인지 다른 손님은 아무도 없었고 뜻도 모르는 샹송이 흐르고 있었다.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나도 사람이 오질 않았다.

 

바람 맞은 것이다. 중요한 약속은 아니었지만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한참을 앉았다가 그냥 나갈 수 없어 커피 한 잔을 시켰다. 샹송을 부르는 가수의 목소리가 축축하게 느껴졌다. 누구냐고 주인에게 물으니 에디뜨 삐아프란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그 향기와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 때까지 먹어본 커피 중에 가장 맛있는 커피라고 느꼈었다. 그 집 커피 맛이 원래 그렇게까지 좋은 것은 아니었는데 그 날만 특별히 좋은 커피를 사용한 것도 아니었을 텐데 나는 그 커피가 그렇게 좋았던 것이다. 그 커피 맛을 좋게 느끼게 작용한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커피 자체에 있다고 하기 보다는 분명 커피를 마신 나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이 분명했다. 그 때부터 나는 커피 맛은 마시는 사람의 기분이나 상태, 환경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결국 커피 맛은 커피 자체와 내리는 사람과 마시는 사람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해 전 나는 같은 성경본문을 설교한 여러 명의 설교를 비교해본 적이 있다. 같은 본문이기에 담고 있는 기본 메시지는 같았다. 즉 해석은 비슷했다. 하지만 구조나 전개, 강조점이 달랐다.

 

그로 인해 설교가 주는 느낌이라고 할까 맛이라고 할까 하는 것이 확연히 달랐다. 누구의 설교가 더 훌륭하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웠지만 분명히 달랐고 나름대로의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신학교 2학년 무렵 나는 약간의 영적 침체를 겪고 있었다. 교회에서의 예배시간이나 학교에서의 채플 시간에 목사님들이 하시는 설교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 기간이 거의 1년 가까이 계속됐다. 그러던 중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닌데 내가 좋아졌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그것은 쭉 들어오던 담임 목사님의 설교가 어느 날부터 귀에 쏙쏙 들어오며 깨달음과 감동이 계속되는 것이었다. 반쪽도 채우지 못하던 설교노트가 그 때부터 빽빽하게 채워지기 시작했다. 늘 해오시던 강해설교를 이어서 하고 계셨던 목사님이 바뀌신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변한 것은 나였던 것이다.

 

이런 점들을 생각해볼 대 설교는 설교자와 청중의 상호작용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커피를 마시다가 설교도 커피와 비슷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써본 것이니 설교를 커피에 비유했다고 야단치지 마시길 바란다.

 

고성우 목사 / 반조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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