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끝나봐야 안다. 한 인간의 업적이나 성공과 실패를 도중에 평가할 수는 없다.
그 사람이 죽은 뒤에 평가 하는 것이 정당하며 심지어는 죽은 뒤에도 한 세대가 지나고 나서야 그의 가치가 재평가 되는 경우도 많다. 그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건도 부딪쳐봐야 안다. 몸으로 부딪치지 않고 머릿속으로만 계산하다가 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미국의 농무장관이 교황에게 사과한 일이 있다. 교황이 산아제안에 반대한다고 의사를 밝히자. 그 농무장관이 기자들에게 농담으로 “교황은 게임은 직접 하지도 않으면서 룰(게임의 규칙)만 말한다”고 한 것이 캐토릭 교회의 항의를 받은 것이다. 세상 생활에서도 게임에는 직접 참가 하지 않으면서 룰만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일을 직접 하지 않으면서 입술로만 왈가왈부 하려는 것은 건설적인 일이 아니다.
올림픽 게임에 참가해서 메달권에 들지 못한 선수들에 대하여 우리는 종종 “참가에 의미가 있다”라고 한다. 옮은 말이다. 직접 참가해서 부딪쳐 보아야 긍정도, 부정도, 비판도, 칭찬도 진실에 가까워지는 법이다.
이제 말은 그만하고 행동으로 옮기자. 겉만 번지르르한 말에는 이제 정말 지쳤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회칠한 무덤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별히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의 부정적인 면을 지적할 때 언급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행동이 없는 허울뿐인 말에 대해 예수님께서도 “외식하지 말라”고 지적하셨다. 성경에서 “몸으로 산제사를 드려라”라고 말씀한 것은 어떤 이론을 말함이 아니다. 하나님의 관계에 있어서도 말로만 하지 말고 실제로 행동하라는 말씀이다.
미국의 TV시청률 조사에 의하면 아직도 최고인기 영화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고 한다. 이것은 마가렛 미첼이라는 사람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미첼이라는 사람은 다리 부상으로 기자생활을 할 수 없게 되자 26세 때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7년 만에 완성했다.
그런데 이런 베스트셀러도 처음 3년 동안은 출판해주는 출판사가 없어서 빛을 보지 못했다. 맥미란 출판사의 레이슨씨가 애틀란타에 출장을 갔을 때 이 원고를 읽어봐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정거장에서 억지로 받아 들었으나 무명작가의 원고를 읽을 마음이나 시간이 전혀 없었다.
그러던 중 기차를 타고 뉴욕으로 돌어가는 중에 전보를 3통이나 받았다. 내용이 ‘꼭 원고를 읽어 주십시오’라는 전문이었다. 레이슨씨는 그 정성에 못 이겨 처음에 한 장 만이라도 읽어주려고 원고를 펼쳤는데 나중에는 기차가 뉴욕에 도착한 것도 잊고 원고에 열중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소설 속에도 주인공의 집념이 등장하지만 작가 미첼은 정말 집념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리 부상으로 불구가 되어서도 비관하지 않는 그의 인생관, 7년 동안 소설 한 권을 완성하기 위해 바친 노력, 그리고 3년 간 출판하겠다는 사람이 없는데도 계속해서문을 두드리는 끈기 등은 하고자 하는 일의 대한 엄청난 집념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소년인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기에는 너무 크다 ‘Too big to win’고 생각했지만, 다윗은 담대하게 나갔다. 그랬더니 의외로 골리앗은 다윗이 준비한 물맷돌 다섯 중 하나로 넘어지고 말았다. 골리앗은 다윗의 물맷돌이 빗나가기에는 너무 컷던 것이다. ‘too big to miss’ 눈으로 보면 어렵게 보이는 문제도 실제로 부딪쳐 보면 의외로 쉬울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내 앞길에 있는 돌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만 디딤돌로 이용될 수도 있다.
내가 본 모든 성공자들은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든 사람들이었다.
말만 늘어놓는 사람들이 아니라 말과 행동이 하나 되어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느니라“(고전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