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교회는 위기에 빠져있다. 교인 수가 감소하고 있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라 새삼스러울 것이 없지만,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대형교회 주변에 있는 작은 교회들의 아우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교리 상으로는 목에 핏대를 세울 만큼 진화론을 배척하면서도, 교회를 운영하는 데는 약육강식의 진화론적 법칙이 그대로 먹히는 곳이 목회현장인지도 모른다.
여러 해 전 이야기라지만, 서울 명일동에 있는 새벽기도로 유명한 교회의 반경 1km 이내에 100여개 교회가 있었는데, 몇 년 후에(5년 후라던가?) 27개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대형교회의 수적 증가가 대부분 작은 교회에 다니던 성도들의 수평이동이라는 것도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바다. 교회들이 ‘부흥’을 외치지만, 현실적으로는 ‘생존’에 매달린 지도 오래됐다.
여러 사회 현상과 영적 상태가 맞물려서 ‘현상 유지하는 것만도 목회 잘 한 것’이 되고 말았다. 아직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신앙을 갖게 된다면 어느 종교를 선택하겠느냐?’는 설문조사에서, 기독교(개신교)는 불교와 천주교에 한참 뒤지고 말았다. 교회에는 거품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교회 규모가 총회나 지방회에서 자리 매김을 한다. 목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은퇴를 앞둔 목사님이 사역하는 교회 이야기가 나왔다.
아들에게 담임 자리를 물려줄 계획이란다. 그 자리에 있던, 같은 지방회에 소속한 목사님이 말했다. 그 아들은 자기가 가르치던 제자인데, 이제 그와 같이 목회를 하게 되다니 기분이 묘해진다고 했다. 아마 그 아들 목사는 자기 앞에서 기를 못 펼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목사님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지 않을 거라고. 오히려 앞으로 그 아들 목사가 지방회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할거라고. 그 교회 규모가 가장 커서, 지방회비도 제일 많이 내고, 행사 때 찬조나 봉사 협조나 교회당 제공도 제일 많이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 참~ 그렇~지!
사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닌데, 실감이 났다. 큰 교회들이 큰 역할을 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 그만한 장점이 있기 때문에 커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기준이나, 교회됨은 무엇일까? 교회들이 지금까지 보여주기 식 ‘쇼’(show/이벤트)를 많이 한 것이 아닐까? 그 시대의 양심의 보루는 종교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진실해야 할 곳은, 예수님의 복음을 은혜로 받은 교회여야 할 것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보다는, 알게 모르게 형식, 기교, 요령을 너무나도 많이 배워온 것 같다. 논문 표절문제로 시끄럽다. 제자훈련의 본보기라고 하는, 정감운동(정직과 감사운동)을 펼쳐오던 대형교회에서, 담임목사의 박사논문 표절논란이 중앙일간지 1면까지 진출했다.
빙산의 일각처럼,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서 터져 나온 것이라고도 하고…. 그 속은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자의반 타의반으로 박사학위들을 내려놓고 회개하겠다고 하여 겨우겨우 봉합하는 듯하다. 연예인에게까지도 불똥이 튀어서 배우 김혜수는 석사학위를 반납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파장이 얼마나 더 번져갈지 알 수 없지만, 이번 사건으로 가슴 덜컹한 박사 목사님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근래에 충청도 어느 지방회 소속 교회에서 담임목사 청빙 광고를 했다고 한다. 교회 부지에 교회당도 지어져 있고 사택도 있는 시골교회였다. 그런데 성도는 노인 4사람 정도였다. 청빙절차에 따라 서류를 접수하고는 모두가 놀랐다고 한다. 우리가 손꼽는 미국의 유수한 신학대학원 출신의 박사 7명을 포함해서 48명의 목사가 지원했다고 한다. 열심히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일이야,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그것을 펼칠 수 있는 장(場)이 너무나 좁아서 안타깝다.
그런데 세상적 구색 갖추기 식으로, 적당히 학위 따기에 급급하다면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에서도 담임을 청빙할 때, 박사학위 소지자를 조건으로 내거는 일도 각성해야 할 것이다.
남들은 어떻든 적어도, 하늘의 소명을 따라 사는 목회자들이라도 세상적인 것을 초연하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성도들을 품고 돌보며, 잃은 영혼들을 구원할 수 있는 목회자를 청빙해야, 교회다운 행복한 교회가 되지 않을까?
목회에서는 다른 것은 몰라도 진실해야 할 것 같다. 전도는, 상대방이 반응해줘야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리를 따라 마음을 다해서 신실하게 살고자 하는 진실함은, 나 혼자라도 잘 하면 가능한 일이 아닌가!
이는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상관이 없을 것이다. 작은 교회라고 진실하다고 할 수 없겠고, 큰 교회라고 잘못되었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큰 교회가 잘못될 가능성이 훨씬 많지만.)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안에서, 거룩한 영이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작은 것부터, 나부터, 지금부터, 여기서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진실하게 목회해야겠다. 강단에서 설교한 대로 목회자부터 진실하게 살아가야 겠다. 하나님의 거울 앞에 벌거벗은 내 모습을 비춰보며, 요즘 이 말씀을 묵상하고 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 3:18)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엡 5:9)
김효현 목사 / 늘푸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