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세계교회협의회(WCC)를 앞세운 종교연합운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 배후에서 활동하는 사단의 모습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사단의 악한 계획은 먼저 주의 종들을 넘어뜨리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참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세속주의에 물든 거짓선지자들의 단체가 바로 종교연합운동으로 시작된다. 교회 안에서 버젓이 기독교, 불교, 천주교 등의 종교예식이 행해지고 있는데도 이것을 “타종교와의 대화” 라는 구실로, 사단의 우상숭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하고 있다.
결국 종교연합운동은 이 세상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 종교들을 기독교회가 인정하여 존중하게 만들어, 우상숭배의 앞잡이가 되게 할 것이다. 가증한 것들의 어미인 거짓선지자들이 수많은 영혼들을 짐승에게 넘겨주어 우상을 섬기게 할 것이다.
WCC는 세계교회의 통일을 부르짖으며 지난 60여 년 동안 다양한 교회 통일 운동을 펼쳐왔다. WCC는 연합(unity), 대화(dialogue), 구원(salvation),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 하나님의(Missio Dei), 인간화(humanization) 등과 같은 매우 매력적인 신학적 용어들을 전 세계의 흩어져있는 수많은 교회들을 유혹해 왔다.
WCC가 즐겨 사용하는 용어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건전하고 전통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용어들이 담고 있는 신학적 의미와 실체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WCC의 선교 신학이 얼마나 위험하고 비기독교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 있는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971년 벨지움 루뱅 대학에서 결정된 문헌을 보면 WCC가 더 이상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다. 성경의 권위에 근거하지 않은 그들의 신학적 작업은 다양한 오류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신학적 해석을 기반으로 하는 실천 신학에 있어서도 당연히 오류를 만들어 낸다. WCC가 사용해 온 신학적 용어가 지닌 의미가 전통적인 의미와 전혀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WCC는 타 종교와 함께 진리를 공동으로 연구해 발전시키고, 타 종교에 담겨있는 부분적인 진리를 수용 발전시키는 것을 중요한 선교적 과제라고 생각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WCC는 기독교 선교사들을 더 이상 타 종교 권역에 파송하지 말아야 할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 소위 선교사 파송금지를 선언함으로써 타 종교들 안에 구원이 존재함을 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들은 타 종교에 대한 공격을 금지시키고, 타 종교와 함께 공동의 선을 추구해 나가야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19세기까지의 세계선교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수행하는 복음 전도에 초점이 모아져 있었다. 그러나 1948년에 암스테르담에세 선교협의체로 출발한 WCC는 시간이 흐를수록 복음전도를 도외시하고 있다. 적어도 암스테르담 총회(1948년)는 기독교적 고백에 입각하여 모였다.
하지만 웁살라 총회(1968년)부터는 개 교회와 지역 교회의 보편성을 인류의 보편성과 관련시키면서 사회참여와 사회정의 실현을 교회의 선교과제로 천명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복음전도에 따른 영혼구원은 뒷전이며, 생태, 환경, 복지 등 지극히 인본주의적인 쟁점들만 강조하고 있다. 특히 타종교와의 대화를 강조하는 나이로비 총회(1975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혼합주의의 경향을 띄기 시작했다.
벤쿠버 총회(1983년 제5차)에서는 힌두교, 유태교, 이슬람교, 시크교 지도자들을 초청해 공식 연설을 듣기도 했다. 이 총회의 지도자들은 인디언 토템 주상을 세웠으며 신학자들은 타 종교의 예배 의식에 참석했다. 그러다가 1990년에는 바이마르 선언문을 통해 종교 다원주의를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쿠알라룸프르 대회(1990)에서는 성령께서 온 세상에 내재해 계신다고 선언했으나 이는 성령의 편재성을 강조한 것이 아니다. 이 대회에서 성령은 “창조되지 않은 에너지”로 규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WCC가 우리 대한한국 부산에서 개최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사단의 계략이고 공산주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