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제 목사 조부 박성엽 열사 93년만에 공적패 수여
일제 강점기 시절, 1919년 3.1운동으로 전국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이 전북 익산에도 4.4만세 운동으로 일어났다. 그 만세운동의 중심에 있던 남전교회(한국기독교장로회) 최대진 목사와 박성엽(박선제 원로목사 조부), 김치옥, 문용기 성도가 주도적으로 솜리장터에서 3000여 군중과 함께 대한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했다.
일본 헌병의 무자비한 탄압 속에 순국과 갖은 옥고를 치른 순국열사들의 뜻을 기리고 애국정신과 희생정신을 이어받기 위한 익산 4.4.만세운동 제94주년 기념예배가 지난 3월 31일 부활주일에 익산 마동교회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 익산노회 주최, 익산 4.4.만세운동 기념사업위원회(위원장 전영철 목사) 주관으로 열렸다.
전영철 목사(장신)의 인도로 진행된 기념예배는 애국가 제창, 기장 익산노회장 김종곤 목사(익산계문)의 기념사, 박성엽 열사를 비롯해, 박영문, 박도현, 김치옥, 장만준 열사의 유족에게 익산시 이한수 시장이 공적패를 수여하고 축사를 전했다.
김영옥 찬양선교사의 기념공연, 박성인 목사(동광)의 기도, 여신도회익산연합회장 박영옥 장로(맹산)의 성경봉독, 기장 익산노회 연합찬양대(지휘 전환철 장로)의 특별찬양이 있은 뒤, 주명준 교수(전주대 명예)가 “익산 4.4만세운동과 기독교”란 주제로 익산 만세운동의 생생한 증언과 역사적 의의를 설명했다.
이어 기장 남신도회익산연합회장 고광성 장로(이리제일)의 봉헌기도, 기념사업위원회 서기 김연태 목사(남전)의 광고, 전병생 목사(단비)의 축복기도가 있은 뒤, 이종열 목사(동부)의 만세삼창으로 모든 행사를 마쳤다.
익산 4.4. 만세운동을 주관하며 주도적으로 역할을 수행한 박성엽 열사는 교단 증경총회장 박선제 목사(대신교회 원로)의 조부로 남전교회 창립맴버로 신도들 가운데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로 알려져 있었으며 궁말의 선교부에서 해리슨 선교사를 돕고 있는 사이로 군산 궁말에서 3월 5일에 있었던 만세운동이 익산 4.4 만세운동이 일어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이에 박성엽 열사는 군산 선교부에서 독립선언서를 가져와서 보관하기도 했으며 함께 뜻을 모아 만세운동을 준비하며 성도들을 설득한 일을 담당했다. 4월 4일 정오 남전교회 성도들과 만세운동 주동세력이었던 박성엽, 김치옥, 최월봉, 전창여, 강성원, 박영문, 박동근(박영찬), 장경춘, 장만준, 정찬성, 이성춘, 정명안, 정심덕과 도남학교 학생, 신덕리 주민, 이리 고현교회를 비롯해, 서두교회, 황등교회, 천도교 일부 신자들도 만세 운동에 동참했다.
독립선언서 낭독과 독립 만세의 물결은 당시 일본군 본영이 위치한 대교농장으로 향했으며 결국 일본 헌병대와 보병부대, 소방대와 일본인 농장원까지 동원, 창검과 총, 곤봉, 갈고리로 평화적 만세 시위에 참여한 군중들을 탄압했다. 이에 문용기 열사를 비롯해, 박영문, 장경춘, 박도현, 이충규, 서정만 열사는 그 자리에서 순국했으며 그외 열사들을 부상을 당하고 피신했다. 박성엽 열사도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로 피신하기도 했다.
93년만에 열사로 공적을 기릴 수 있었던 것은 김치옥 열사에 대한 일제 재판 기록을 살펴보던 중 박성엽 열사에 대한 조사 기록을 통해 확인됐으며 93년 만에 공적을 기리게 됐다. 박선제 목사는 “장손으로 조부님의 과거 행적을 확인하고 회복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나라 사랑과 애국애족 정신을 본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