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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 빠져보자

목회하며 책읽으며-40

조성배 목사
행복한교회

필자는 지난 20년 넘게 고민하는 단어(槪念, image, 틀)가 있다. 오랜 시간 그 실체를 잡아보려 도전적으로 질문한 단어였다. 그 단어 “인문” “인문학” … “기독교와 인문” “ 기독교인문학” 참으로 이제는 알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모를 것 같은 쉽지 않은 요상한(?) 단어다. 과연 인문학은 무엇인가? 그리고 기독교 신앙과 인문학의 관계는 무엇인가? 수 천권의 책을 읽어서 뇌 속에 이제는 희미한 무늬라도 남을 것 같은데 그간 좋은 소개서(書) 못 만나서 그런지 기독교신앙과 인문학의 접촉이 필자에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주 한 권의 책을 읽으며 새로운 신세계(new vision)을 발견했다.
인간이 다른 모든 동·식물과 다른 점은 ‘인간 그 자체를 스스로 외부에서 바라보며, 통찰하여 그리고 모든 만물을 새롭게 창조해 나간다’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에게 그래서 더욱 악(惡)을 범하지 말고, 인간과 인간이 아름답게 이 땅에서 살아가라고 성서는 명령하고 있다. 지난 무궁한 시간들, 시대는 변하여도 성서의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인간(삶, 우주, 물질, 관계)의 본질을 해석해 주는 학문이 있다. 


그 창조적 지혜의 질문이 바로 인문(人文, Humanities)학이다. 나(我)를 찾고, 공동체(人間, 敎會)를 보고, 세계의 구도(構圖, 하나님나라)를 보며, 우주를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신(神, 하나님)을 만나야 제대로 된 인문학이 가능하다는 신간(新刊)이 같은 침례교단의 충실한 목회자 한재욱 목사(강남비전교회)의 ‘인문학을 하나님께’(규장 2018년 4월 발행)를 통해 나왔다. 한 달이 안 돼 2쇄를 찍었다. 기독교부분 초(超)베스트 셀러이다.
제목처럼 인간 지혜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이시다.


역설적으로 먼저 하나님을 알고 시작된 본질에 대한 질문은 쉽고, 분명하며 매사의 원리(根本, Origin)가 밝혀진다. 인간이 스스로를 기록하던 초기부터 문학, 역사, 철학은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인문학 열풍을 가져온 최근의 한국사회는 상하탑의 대학에서, 은둔의 고수들의 해박함에서 이제는 길거리로, 동네의 까페로 근원을 찾아 떠나는 대학생들과, 직장인들과 아줌마, 아저씨의 TV 프로그램까지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교회다. ‘인문학을 하나님께’가 교회안의 인문학 열풍을 가져 올 것이다.


저자가 진행한 극동방송에서의 열광적 풍경을 이제는 한국교회들이, 한국침례교회들이 받아 새로운 부흥의 계기를 만들 것이다. 교회사를 되짚어 보면 중세로부터 교회가 집단적 지성의 연구소였다. 이때 인문 ‘근대’를 위한 디딤돌이 놓여졌다. 그래서 고전(古典)을 복사하고, 해석하며 근대유럽을 만든 주역들은 루터(法學)의 종교개혁에 강력한 영향을 준 것이다. 성서의 바른 뜻을 펼치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려고 시대마다 창조적 신앙인들이 등장했다.


오늘날 미국을 만든 개척정신(frontier spirit)이 성서 안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인문학에서 온 것이다. 결코 인문학은 교회의 적이 아니다. 시대마다 새로운 시야(해석)로 성서를 읽어야 한다. 인간의 시대마다의 악한 모양을 성서의 말씀으로 해석해주면서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야 한다. 인문학은 방법론이다.
인간과 하나님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체이다. 문학, 역사, 철학 그리고 오늘날 영화, 연극, 노래, 심지어 과학, 요리, 의복, 장신구까지 그 영역을 넓혀 가야한다. 초대교부들 이레니우스, 아구스티누스는 그 당대 최고의 인문학자들이었다. 중세개혁의 시발점인 에라스무스(文學), 칼빈(法學), 쯔빙글리 그리고 아나뱁티스트(Anabaptist)들도 역시 시대를 밝혀준 성서의 인문해석자들이었다.


인문학은 오늘날 해석학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땅의 언어, 공감의 말”로 표현될 수 있다. 예수님도 당대 최고(어린이들과 상인들의 말)로 쉬운 말로 하늘의 뜻을 풀어냈다. 그래서 바리새파들의 고고한 위선을 무참히 박살내고, 따뜻한 시선으로 당대의 비천한 무리인 이방인들, 여인들, 어린이들을 최고의 삶(중심)의 무대에 주인공으로 우뚝 세웠다.


인문학을 알면 설교가 쉬워진다. 목회가 눈물바다가 된다. 그만큼 인간을 알았다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해석한다는 것이다. 예수(성서,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것은 삶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우주적 관점에서 땅의 기운으로 뭉쳐 인생 단맛, 쓴맛, 신맛의 오묘함을 적절히 섞어 부활과 승천의 천국에 비유하는 역설로 알아간다는 것이다.


보수적인 목회자들 사이에서 인문학에 대한 오해가 많다. 세상‘적’이라는 것이다. 성경을 더 읽고 연구해야지 어찌 목사가 세상의 소설, 문학, 철학을 그리도 좋아하느냐고 핀잔을 주는 분이 있다. 그 시간에 기도를 더 하라고 말한다. 분명 바른 측면이 있다. 그런데 필자가 어릴 적 교회 안에서 대중악기 ‘기타’를 칠 수 있느냐! 논쟁이 붙은 때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들은 기타 정도를 넘어 교회 안에서 ‘드럼’까지? 온갖 시끄러운 악기까지, 춤(worship dance)까지 추고 있다. 인문학은 그런 것이다. 시대는 돌고 돈다.

 
목사는 분명 말씀과 기도에 전념해야 한다. 그러나 역시  앞서간 목회자는 세상을 알고 세상이 추구하는 그 방향에 하나님이 유일한 “정답”임을 소개해야 한다. 그 방법으로 인간을 제대로 연구하기 위하여 성경연구 만큼 더 열심히 인문(人文)을 연구하자! 먼저 앞서간 한재욱 저자의 책을 가이드로 보고 뒤쫓아 따라가자! 그래서 21세기 침례교부흥의 기초를 놓아보자! 젊은(다음) 세대들이 몰려오는 교회는 그냥 되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를 꿈꾸며 준비하기 위해 인문(人文, 새로운 해석, 새로운 융합)의 강에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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