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일본 그리스도교 대 문학가 엔도 슈사쿠의 강연집이다.
그의 대표작 ‘침묵’과 더불어 ‘사무라이’ ‘스캔들’ 등 자신의 작품에 얽힌 창작 비화와 집필 의도,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테레즈 데스케루’와 그레이엄 그린의 ‘사건의 핵심’ 쥘리앵 그린의 ‘모이라’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등 20세기 유럽 문학에 나타난 그리스도교의 모습을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엔도 슈사쿠의 목소리로 듣는다.
이 책의 원제는 ‘인생의 후미에’다. ‘후미에’는 에도시대 그리스도교 신자를 색출하기 위해 예수상이나 성모 마리아상을 동판에 새겨 나무판에 끼워 넣은 것으로 이를 밟으면 살 수 있지만, 밟지 않으면 곧바로 죽임을 당하거나 고문을 받는다. 엔도는 “인간은 후미에를 밟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경우가 있다”며 신념을 배반해야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의 약점과 슬픔을 위로하고 자신의 인생관, 종교관, 문학관을 들려준다.
번역에 들어가기 전 이 책을 검토한 일본 인문, 소설 분야 번역가 송태욱 씨는 “지금껏 많은 책을 검토해왔지만, 이 책만큼 망설이지 않고 추천하기로 한 책은 별로 없었다”며 “이 책의 내용 자체로 번역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책은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내용이 많지만 이 강의를 즐기는 데 신앙의 유무는 강조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문학을 통해 진정한 그리스도교의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일반 문학 독자는 소설을 맛있게 읽는 법과 창작의 비화를 듣는 재미를 선사한다. 또한 대략의 줄거리를 말해주며 이야기를 전개해가고 있어 이 책에서 소개된 작품들을 읽지 않았어도 강의를 즐기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진지한 자세로 소설을 읽어나가려는 독자들에게 책은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범영수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