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발톱개구리는 세상이 물과 진흙이라 생각한다. 팔마토게코 도마뱀은 세상이 모래와 이슬이라고 알고 있다. 북극 여우는 이 세상이 눈과 얼음 그리고 동굴이라고 믿고 있다. 만약에 아프리카 발톱 개구리와 팔마토게코 도마뱀과 북극 여우가 만나서 ‘이 세상이 무엇이냐’라는 주제로 공방을 펼친다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
팔마토게코 도마뱀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자신이 살아온 세상을 설명한다고 해도, 또 북극 여우가 아무리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해도 자신이 보고 듣고 느껴온 세상을 벗어나기란 좀처럼 쉽지가 않아서 아마도 결론이라는 것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세상밖에는 알지 못하니까. 그것을 기준으로 설명하고 듣고 느끼면서 상상할 수 밖에 없을 테니까.
어쩌면 갈등이란 그렇게 시작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아무도 속임수를 쓰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에 대해서 확신을 가진 것뿐인데 그런데도 갈등은 시작되고 싸움은 벌어질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서만 안다.
그러니까 내가 ‘안다’라고 믿고 있는 건 그냥 ‘내가 아는 것’만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내가 아는 것’만 ‘아는 것’이 옳지 못하다면 우리들의 관계를 흔드는 갈등이 되고 금이 가는 불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내가 아는 것만 아는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난 요즈음 나름으로 많이 알았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에 대해 생각보다 모르고 있음과 모르고 있는 그것에게 당하고 있는 자신을 볼 때가 많다.
김영현 작가는 ‘나쓰메 소세키를 읽는 밤’이라는 책에서 “무감각과 함께 나를 무장한 단단한 갑옷 중에 하나가 바로 편견이다. 편견, 이 얼마나 편리한 것인가? 나는 나의 편견으로 남을 편견하며, 남들을 통해 소리를 듣고 나의 편견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만 비로소 안심하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편견은 나의 지식이며 힘이며 폭력이며 권력이며 나의 안락한 안식처이자 집이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나의 편견으로 세상과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편견은 숙명적으로 다른 사람의 편견과 마주칠 수 밖에 없다.”라고 쓰고 있다.
타인은 그의 편견으로 나를 판단하며 그의 편견을 통해 소리를 듣고 그의 편견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비로소 안심하고 이해를 하는 것이다. 편견은 그의 지식이며 힘이며 폭력이며 권력이며 그의 안락한 안식처이자 동시에 그의 안락한 보금자리이다. 이 두 편견은 서로 다투며 갈등하고 심지어는 죽음도 불사한다.
어떤 철학자의 농담에 의하면 인류의 역사상 전쟁으로 죽은 사람보다 의견차이로 죽은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편견에서 자유로운 사람, 편견이 전혀 없는 사람이 되기란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나에게도 내가 모르는 내 안의 편견이 어느새 들어있고 그것이 나도 모르게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해 두고 나 자신의 생각을 가끔 경계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때때로 편견인지를 확인하고 싶을 때 인생의 문제에 대한 답을 듣고 싶을 때 불과 십여년전만해도 선생님, 선배나 친구 같은 사람한테 물었는데 최근 십여년 사이에 판도가 바뀌어서 물어보면 다 답해줄 것 같은, 검색하면 다 나올 것 같은 인터넷에 장난삼아 물어본다. 커서가 깜빡거리는 검색란에 ‘나는 지금 잘 살고 있을까?’라든지 ‘그 사람은 나한테 왜 이럴까?’ 이런 말을 넣어도 왠지 답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싱거운 생각을 공론화 시킨 작가가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높은 베스트셀러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이다. 그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뜻을 모아 런던 블론스 거리에 어른을 위한 학교를 세웠다고 한다. 이 작은 공간에 걸린 간판의 이름은 ‘The School of Life’, 바로 인생학교이다. 그는 작가이전에 철학박사인데 그와 함께한 다른 전문가들도 작가나 기자, 정신과 의사 등등 다들 책상물림들입니다.
그렇지만 인생학교에 수학이나 역사 같은 과목은 없다. 대신 인간관계, 죽음, 직업을 선택하는 법, 아이를 잘 키우는 법 같은 과목들이 있는데 인생학교를 설립한 취지가 정보나 학문이 아니라 지혜를 나누는데 있기 때문이다. 지식이나 정보를 나누는 것은 쉽지만 자신의 경험에 비례해서 딱 그만큼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혜라는 것은 도무지 물려주기도 나눠주기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고 정기적으로 만나서 전문가에게 강의를 듣고 서로 토론하면서 답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데 연간 개설 수업은 300개로 다양하고 이 수강료는 강좌 당 우리 돈으로 3만 3천원에서 33만원 정도로 일종의 사회적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역사상 요즘처럼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때가 없었는데 어른이 되고서도 인생은 점점 정답 없는 미로를 이어간다는 사람들이 많다. 어른이라서 혼자서 속으로 앓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사실 친구와 가족에게 물어봐도 별 뾰족한 답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인지상정의 사람들이 직면한 현실 타계법이나 혹은 인생설계법을 얻고 싶어서일 것이다.
인생학교의 시작은 교회이다. 지식의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을 알게 하고 지혜의 근원이 되심을 드러내고자 우리 교회는 노인대학을 시작한다. 백발에게 있는 지혜를 서로 통용하고 나와는 너무 다른 세계인 타인에게 다가가는 소통의 장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윤양수 목사 / 한소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