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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한 해를 시작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6월이다. 6월은 우리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다. 6월 6일은 현충일이고, 한국전쟁도 6월 25일에 발발했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6월을 호국 보훈의 달이라 부른다. 호국보훈(護國報勳)이라 함은 나라를 지키고 나라를 위해 힘쓴 사람들의 공훈에 보답한다는 의미다. 그런 만큼 해마다 6월이 오면 전 국민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 흘렸던 순국선열들을 기리기 위한 마음가짐을 품고 일치단결하게 된다.


조지 버나드 쇼는 “역사가 되풀이되고 예상치 못한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다면 인간은 얼마나 경험에서 배울 줄 모르는 존재인가”라고 말한 바 있다. 때문에 우리는 역사를 반면교사 삼고 과거를 교훈 삼아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6월의 역사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


과거 한반도는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인해 혼돈에 휩싸였다. 이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군인 26만 명, 민간인 100여만 명(추정)이 피해를 입었고 공업기반의 절반이 무너졌다. 이는 흡사 예레미야애가 4장에 펼쳐진 광경이 한반도 전역에 펼쳐진 것이라 할 수 있다. 휴전 후 미소 주도의 냉전 체제가 가속화됐고 분단 고착화와 남북 체제 대결 심화와 수많은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특히 우리 침례교단의 경우 교단 역사의 시작인 원산을 북한에 빼앗겨버린 통한의 사건을 경험하게 됐고, 타교단의 경우에도 동방의 예루살렘인 평양을 떠나야만 했다. 그만큼 전쟁은 우리 민족은 물론이고 한국교회에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나큰 상처를 입혔다. 이에 우리는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 순국선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동시에 전쟁의 참화가 다시는 이 땅 가운데 일어나지 않도록 주님께 간구해야 할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북한의 핵 위협 등으로 미래가 불투명하다. 한반도 주변국중 일본이 전쟁가능 국가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으며 중국 또한 미국과의 경제전쟁으로 한반도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대한민국 안에서는 북한과 지금이라도 당장 전쟁을 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보수집단과 ‘민족자주’란 구호를 내세워 주한미군철수 등을 외치는 급진 세력과의 남남 갈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국민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의 수순으로 ‘대체복무’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젊은 세대의 경우 “꼭 통일을 해야 하느냐”는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미국 주도의 세계사 재편으로 인해 유럽과 아시아 등이 큰 갈등상태에 있고 한반도는 다시 열강의 힘겨루기 장이 되고 있다.


한국교회가 국가 내부적인 갈등 치유는 물론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열강들을 화해시키는 중재자 역할을 잘 행하기를 기대한다. 한반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미국에서 가장 큰 교단임과 동시에 세계적으로도 개신교의 주류 교파로 손꼽히고 있는 침례교야말로 각국의 갈등을 지혜롭게 풀어 낼 수 있는 화해 중재자 역할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제 우리는 성경말씀을 토대로 인간적인 오만이 아닌 주님께서 허락하신 지혜로 화합을 이뤄내도록 기도해야 할 때다. 특별히 우리는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 북한에 억류돼 있는 침례교단 선교사들의 조속한 석방과 함께 북녘 땅에 복음이 들어갈 수 있도록 전국의 침례교회가 합심해 기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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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