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국제선 항공에서 모기업의 임원이 승무원을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일로 SNS에 퍼지면서 일파만파가 되었고 결국 그 임원은 사임하기에 이르렀다. 사건은 지난 15일 인천공항을 출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대한항공 국제선 항공기 안에서 벌어졌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당시 비즈니스석에 탑승한 포스코에너지 상무급 임원 A씨가 기내 서비스 등을 문제 삼아 여승무원에게 폭행을 행사했다. 이 사건이 20일 일부 언론에 보도되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당시 상황을 정리한 것으로 추정되는 카카오톡 화면 갈무리 자료가 퍼지면서 파문이 확산됐다. 이 자료에 따르면 A씨는 탑승하자마자 자신의 옆자리가 비어있지 않은 것을 문제 삼기 시작해 아침식사 메뉴, 기내 온도 등 줄기차게 불만을 제기했다.
심지어 식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따로 삼각 김밥과 라면을 주문해놓고 라면이 제대로 익지 않았다며 수차례 다시 끓여오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급기야 A씨는 두 번째 식사 서비스 과정에서 읽고 있던 잡지책 모서리로 여승무원 눈두덩이 쪽을 때렸다. 그러나 기내 사무장이 가격 사실을 확인하려들자 자기가 책을 들고 있었는데 승무원이 와서 부딪혔다며 폭행 사실을 부인했다.
이 같은 일은 비단 승무원들만의 고충은 아니다. 얼마 전 보도된 뉴스에 의하면 어떤 백화점 점원은 무릎도 꿇어봤고 질질 끌려서 백화점을 한 바퀴 돌아본 경험도 있다고 한다. 감정을 숨기고 고객을 대하는 자들을 감정노동자라 하는데 이들은 현재 630여만 명에 이른다. 이들 중 25%는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 증세에 시달린다고 한다.
이들도 동일한 인격체인데 이러한 일들이 자행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고객제일주의의 함정이 아닐까 싶다. 고객은 곧 왕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갑을 열어야만 기업이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밉상인 고객도 고객은 고객인 셈이다. 아니 도리어 그들에게 더 고개를 숙여야만 한다. 그래야 지갑이 열리니까. 이런 와중에 최근 현대카드가 칼을 빼들었다.
여승무원 폭행 사건으로 비난 여론이 들끓던 지난 20일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은 자기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손님이라고 (무조건) 친절하게 대하니 착각을 심하게 한다. 얼마 전 현대카드 시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어 ‘문 닫아도 좋으니 단호하게 대하라’고 했다.”
올해 초 현대카드가 연회비 60만원 이상 VIP 회원들을 위해 운영하는 서울 청담동의 한 멤버십 레스토랑에서 고객이 종업원에게 행패를 부렸다. 단 2명이 와서 10인용 넓은 자리를 달라고 떼를 쓰다 직원이 곤란하다고 하자 고함을 지르고 급기야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현대카드측은 즉각 경찰에 신고했고 해당 고객은 입건 돼 사법처리 단계로 넘겨졌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몰지각한 고객의 민원보다 직원 보호가 앞서야 하고, 악성 고객 때문에 선의의 고객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업어야 한다고 판단했기에 단호하게 대처했다”고 말했다. 현대카드는 지난해 2월부터 전화상담원에게 성희롱이나 폭언을 하는 고객에게 2차례 경고한 후 그치지 않으면 상담원이 먼저 전화를 끊으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러자 2011년 13.3%에 달하던 상담원 이직률이 지난해 6.5%로 줄었다. 과연 고객이 왕일까? 그동안 권위주의에 눌려왔던 현대인들에게 고객은 왕이라는 말이 참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 그것은 모든 성도가 제사장이기에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정신에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하다 보니 언제나 대중이 답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다수가 그렇다하면 그런 것이 된 것이다. 이것이 종교다원주의, 그리고 포스트모던 시대의 함정이다.
과연 교회는 어떨까? 혹시 연회비를 많이 내는 VIP 회원이기 때문에 막말을 해도 참아야 했던 기업들처럼, 교회도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횡포에 눈감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나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경우 예수중심에서 교인중심으로, 성경중심에서 성도 중심으로 바뀐 교회도 꽤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안 그러면 그나마 있는 교인마저 다른 교회로 옮겨갈까봐 두려운 게다. 과연 교회에서도 교인이 왕일까를 생각해 본다.
현대는 절대가치가 상실된 시대이다. 그래서 교권도 무너지고 강단도 무너지고 있다. 다수가 원한다면 그리해야 하는 시대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왜냐하면 고객이 사라지면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카드사가 벌인 과잉친절추방운동은 우리에게 좋은 선례가 된다. 우리는 이쯤에서 교회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고객중심이 아니라 성경중심으로 돌아와야 한다. 교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닌 하나님께서 하시고 싶어 하는 말씀을 선포해야만 강단이 살아나고, 강단이 살아나야 시대가 변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절대가치가 무너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마지막까지 절대가치를 붙들어야 하는 곳이 교회이다.
그렇게 하면 인기가 없어진다 할지라도 절대가치는 끝까지 붙들어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왕은 교인이 아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시다.
조범준 목사 / 영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