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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신문의 발자취

1977년 4월 14일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 본부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18-7)에 사무실을 두고 (침례회보) 명칭으로 (등록번호 라 2221호) 문화공보부에 등록했다.


1977년 5월 7일 박경배 목사를 발행인, 김용도 목사를 편집인으로 해 복간 제1호를 발행했다. 침례신문의 근간(根幹)은 1955년 8월 19일 서울시 중구 충무로5가 55번지에 사무실을 두고 ‘침례회보’ 명칭으로 제3종 우편물 인가를 얻어 기독교한국침례회 기관지로 발간하게 됐다. 시작부터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경영에 많은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나라의 경제가 어려워 국민들의 삶이 말할 수 없이 힘들었기 때문에 당시의 교회들도 경제적인 자립할 수 있는 교회들이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위기를 맞으면서도 침례회보는 매월 발간됐다. 그러다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1970년 7월1일 169호 발간을 끝으로 자진 폐간하게 됐다.


이렇게 7년간의 공백기를 끝내고 1977년 5월 7일 복간 제1호를 발행해 이번 주 발행되는 신문이 복간 1,000호를 맞이하게 됐다. 침례신문의 발전을 위해 1979년 5월 이사회를 구성하고 제1대 이사장 겸 사장에 송종호 안수 집사가 취임했다. 또한 새로운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윤응식 목사가 1981년 7월 7일 편집국장으로 취임했고 침례회보는 실제적인 체계를 잡아가게 됐다.

 

1988년 2월 2일 지면을 타블로이드판에서 타블로이드 배판으로 바꾸고 발행기간을 원간에서 격 주간으로 변경해 문화공보부에 등록했다. 그 후 침례회보는 미국지사를 설립하고 이원희 목사를 지사장으로 위촉했다. 그리고 1991년 11월 20일 미주 판 6,000부를 발행해 북미 지역 한인교회에 배포하게 됐다. 허나 1994년 미주지사가 사정에 의한 소멸로 미주 판 발행이 중지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 뒤 침례회신문은 격 주간에서 1998년 4월 3일부터 주간으로 발행하게 됐다. 1999년 9월 27일 침례회신문을 침례신문으로 변경 등록해 발행함으로써 신문 본연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 이렇게 침례신문이 양적, 질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적인 위기 때마다 선배들의 헌신과 뜨거운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위기에 직면해 파산직전에 이르렀을 때 강남중앙교회 담임이었던 김충기 목사와 성도들의 헌신으로 인해 위기를 면하게 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총회와 전국에 교회들의 변함없는 관심으로 기도하며 물질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고 헌신해주었기에 위기 때마다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침례신문은 지령 1,000호를 발행하면서 총회와 11개 기관 2,900여 교회들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자 한다.


이제 새로 출발한다는 각오로 이사진과 직원은 최고의 신문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다. 물론 현실에 경제적인 위기는 과거나 현재나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러나 2,900여 교회들과 독자들을 믿는다. 왜냐하면 침례신문은 전국 교회들과 독자들이 주인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주인 의식과 책임정신을 가지고 구독료를 내며 물질적인 후원이 이뤄진다면, 보는 신문, 읽혀지는 신문, 교회와 성도들의 정보교환, 목회정보를 공유하는 신문이 될 것이다. 또한 교단 정론지로써, 교단의 얼굴로써, 교단의 부흥과 발전을 위해서 목회를 돕고 평신도 지도자를 양성하는 신문으로써 침례교인의 바른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질적 성장을 도모하고 책임성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비록 경제적으로 열악해 직원이 줄었지만 주어진 업무를 감당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직원들의 헌신에 감사할 뿐이다. 침례신문 독자들과 교회들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지령 1,000호 발행을 맞으면서 전국의 교회들과 독자들에게 간절히 호소를 드린다.

 

신문을 계속해서 사랑해주고 변함없는 관심과 후원해 주기를 소망한다. 전국교회와 함께 1,000호 발행을 감사하며 기뻐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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