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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m santo spiritus : 주님의 영으로

<최현숙 교수의 문화 나누기>

최현숙 교수
침신대 피아노과

처음엔 이러다 말겠지 했다. 조금 지나고 나서는 두려웠다. 그리고 조금 더 지나면서 두려움은 원인 모를 짜증을 유발했다. 그러다가 이제 서서히 지쳐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예배마저 제대로 드리기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영혼이 메말라가고 일상은 가라앉아 버렸다.


원인도 알 수 없고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만든 현실이다.  의학자들에 따르면 코로나19는 생물이 아닌 단백질 분자라고 한다. 단순한 단백질 분자가 세포 등에 흡착되면 변형되어 공격인자와 중폭세포로 전환된다는데 이렇듯 미미한 존재의 출현에도 맥없이 무너지는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


이처럼 연약하면서도 그동안 우리는 의학과 과학의 발달을 맹신하며 자신만만해 왔다. 그 무모한 자신감이 이번 사태를 악화시킨 원인일 수도 있다. 이 정도쯤이면 괜찮겠지하는 안일함으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책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니 말이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 엄청난 현실을 하루하루 살아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예배를 자유롭게, 마음껏 드리지 못하는 상황 앞에서 예배의 소중함과 자유의 고마움을 깨닫고 있다. 만남이 제한되면서 인연의 소중함도 함께 알게 됐다.


언제나 곁에 있어서 그 존재의 가치를 당연히 늘 그럴 것이라 여겨왔던 사람들이 얼마나 귀하고 필요한 존재였는지 발견하게 된다. 그저 평범해서 하찮게 여겨졌던 나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는지 다시 확인하게 된 것도 이 불행한 사태가 주는 작은 소득이다.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고 좀 더 나은 내가 되고 좀 더 성숙한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 또 다시 옛 음악의 성인들에게 묻는다. 교회음악의 아버지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B단조 미사의 1부 키리에의 마지막 음악이 답이라는 생각에 함께 나눠본다.


 바로 “Cum santo spiritus” 즉 ‘성령과 더불어’란 의미의 라틴어 가사로 돼있는 이 음악은 이 작품 중에서 가장 긴박한 분위기의 곡이다. 이 작품은 바흐의 작곡연대기에서 가장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음악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그만큼 바흐의 열정과 성의가 가득 담긴 역작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25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려 완성된 이 작품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성됐다. 바흐의 음악적 철학과 신학이 집대성된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가가 지나치지 않을 만큼의 완성도 높은 작품이 탄생된 것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희일비하기보다 분명한 목표와 꿈이 있다면 성취될 때까지 일관성 있는 노력과 끈기가 필요하다. 사람의 관계도 그러할 것이다. 진정성 있는 만남이었다면 다소 부족함이 있어도 함께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도 다르지 않다. 이 또한 그 때가 되면 지나갈 것을 믿으며 그날이 다 찰 때까지 필요한 일을 하며 불편을 감내하는 것, 다시 평안이 오기를 소망하며 기다리는 것이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보다는 훨씬 지혜로운 자세일 것 같다.


그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기도는 더 깊어지고 믿음은 단단하게 굳건해 질 것이다. 이 시간을 바흐의 음악이 교훈하는 것처럼, 오직 주님의 영, 성령님과 함께 한다면 그 또한 은혜이며 축복일 테니까! 음악을 통해 전해지는 신앙의 권면이 참 소중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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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