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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침례교 초기선교 영향

박창근 목사


한국 침례교 역사 신학회 회원들이 울릉도의 100년 이상 된 침례교회 역사 자료 등을 수집 하고자 탐방 길에 올랐다. 그동안 울릉도 여객선은 도동으로 입항했는데 이번에는 새롭고 넓게 개통한 사동항에 뱃머리를 댔다.
우리가 승선한 포항과 울릉도 왕복 여객선 “우리 누리 호”는 7월 6일 오후 5시 사동항에 도착했다.


항구 근처에 “신비의 섬”이란 식당 2층에서 울릉도의 맛깔 나는 해물들로 저녁식사를 즐겁게 마쳤다. 예약해 대기된 12인 승합차에 탑승해 30분여 달려 북면 현포항 “추억의 펜션”에 여정을 풀었다. 동해의 먼 거리 잔잔한 파도 길을 건너 온 젊은 일행들은 시원한 해풍을 맞으려 방파제로 나갔다. 일행이 항구로 나간 후, 방에 들어와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울릉도 초기 선교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다.


울릉도에 복음전파가 시작되던 시기는 1900년대 초로 생활양식은 지금과는 현저하게 다른 삶의 형태였다. 바닷가 항구에 접안 시설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사동, 도동, 저동 항구 중심의 관광과 상업, 고기를 잡는 어업 생활권이 아니었다 한다. 1960년대 초 대학시절부터 여러 차례 울릉도를 방문할 때마다 들은 이야기 등을 종합해 그동안 공부하며 연구하면서 수집된 책과 문건들의 서류 기록을 참고해 쓰기로 한다.


울릉도 초기 선교는 육지 울진에서 가장 가까워 울릉도에 들어오기 쉽고 작은 무동력 선박이접안하기 적합한 곳은 서면과 북면 일대로 이곳은 산 중턱에 마을이 형성돼 농사를 짓는 농업이 주를 이루었던 때였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들도 산 위에 있는 마을 중심으로 울릉도 최초 침례교 석포교회는 1909년 최인회 감로가 이종우에게 복음을 전하며 시작됐다가 일제의 핍박으로 폐교됐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나 1945년 해방 후 문을 열어 현재까지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면서 항구 접안시설이 발달해 산 중턱 생활권에서 산 아래 바닷가로 내려와 마을들이 형성됐고 차츰 고기 잡는 어업의 발달로 항구 마을이 생기게 된 것이라 한다.


1896년 울릉도에 전도 목적으로 입도한 영천인 최인회 전도자가 1909년 석포 정착민 이종우에게 최초로 복음을 전해 석포교회가 시작됐고, 평리마을은 바닷가에 위치해 1910년 10월 20일 최인회의 전도로 믿게 된 강덕삼 씨가 가정예배로 침례교회가 시작됐다. 1928년 3월 석포에 살던 최 전도인이 평리로 이사와 예배 처소를 옮겨 가며 복음의 씨를 계속 심었다.


1930년 울진에서 남용건 목사의 선친이 가족과 함께 평리로 이사 왔다가 1931년 산비탈 서달 마을로 이사했는데 이미 그곳에 오요한(화진교회 설립자, 이정수 p136)의 전도로 1909년 정 치경이 주님을 믿어, 1911년 4월 5일 정치경에 의해 서달침례교회가 설립됐다.


또 도동과 저동 중심으로 김창규 씨가 울진에서 김종희 전도인을 초청해 1910년 저동교회를 설립했다.
평리침례교회는 1933년 주해도 씨가 토지를 헌납해 14평 목조건물로 건축됐고, 1934~1936년에 산중턱 마을인 홍문동에 김해용, 김시용 형제, 1941년 3월 이진우 가정의 이사로 부흥일로에 있었고, 김해용 총장이 울릉도 감로로 안수받게 됐다.


여기서 울릉도 초기 선교는 평리교회를 중심으로(1910년 10월 20일), 울릉도에 100년 이상 된 침례교회 순서를 기록에 나타난 문서들을 정리해 보면 설립 연도는 정확하지 않으나 대략 석포, 평리, 서달, 저동 4교회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1942년 김해용 감로는 원산에서 번역된 신약성경 30권을 보급받아 활동하다가 일본 헌병대에게 발각돼 압수당한 후, 신사참배 거부 사건 등으로 교회당이 몰수당할 뿐만 아니라 9월 10일 총회 32인과 함께 원산형무소에 수감됐다. 이후 1943년 5월 1일 함흥 형무소로 이감, 5월 15일 재판 결과 기소유예로 석방됐지만 그 후유증으로 1947년 8월 13일 47세를 일기로 순교자 반열에 들었다.


이처럼 1900년대 초 울릉도 초기 침례교 선교 영향은 산등성이 화전민 마을로부터 시작된 교회들이 바닷가 산 아래 마을 항구를 중심으로 발전해 믿음이 좋은 여러 평신도 지도자 감로들과 순교자를 낳은 신앙을 이어받은 성화된 훌륭한 많은 목회자들을 배출해 지금도 울릉도에서는 어선 출항 시, 바다 용왕 신에게 고사·제사 없는 한국 유일의 기독 정신 유산을 남긴 특성의 아름다운 섬이 됐다.     

                           
박창근 목사
침례교역사신학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