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기도를 받는다는 것. 어찌 보면 성도가 목회자를 너무 지나치게 의존하는 건 아닐까? 성도라면 누구든 하나님 앞에 일대일로 기도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데, 굳이 목회자를 찾아가서 기도 받을 필요가 있을까?
혹 그 물음을 내게 묻는다면, 난 “있다”고 말하고 싶다. 다른 건 잘 모르겠다만 순전히 내 목회경험으로만 보면 “그렇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벌써 십수년 전 해군의 군목으로 사역할 때다. 그 분은 대위였는데 사람이 그렇게 신실할 수가 없었다. 함정생활로 무척 피곤할 텐데도 정박하면 어김없이 새벽제단을 지켰다. 뿐만 아니라 제일 늦게까지 두 손 들고 기도하였다.
그런데도 그분은 또 내게 기도받기를 즐거워했다. 장기간 출동을 나갈 때면 꼭 목양실을 들른다. “목사님, 이번 출동도 잘 다녀오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알고 보면 뭐 특별한 기도제목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랬다.
더 놀라운 건 기도 받을 때마다 꼭 무릎을 꿇으셨다. 그냥 맨바닥에 본인이 의자를 밀고서 앉으셨다. 그러니 내 기도가 어찌 간절하지 않을 수 있으리.
그분이 바로 지난 번 아덴만여명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해적에 생포된 우리 삼호 주얼리호 인질들을 무사히 구출해 낸 조영주 집사이다. 물론 그는 지금 제독으로 진급했다.
또 한 분이 있다. 역시 해군에서 만난 오00 안수집사님. 그분 또한 제독진급을 앞두고 계실 때였는데, 벌써 두 번째 들어가는 진급 기회라 주변에선 별로 그분의 진급을 낙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분에겐 그 어느 때보다 믿음이 있었던가 보다. 그래서 어느 날 군목실로 찾아와 내게 기도를 요청하셨다. 이분 역시 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대령이 소령 앞에. 물론 하나님 앞에 꿇으신 거지만. 하여간 그렇게 기도를 받으셨다. 그 후 어찌되었을까? 그분은 그해 예상을 깨고 진급의 기쁨을 맛보셨다.
생각해보니 이분들뿐만이 아니다. 김00 해병대사령관도, 문00 해군참모총장도 다 그렇게 기도 받는 것을 사모하셨던 분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왜 하나같이 찾아와서 기도를 받으셨던 분들에게 그런 좋은 일이 생겼을까? 아무래도 이는 그분들의 순진한 믿음 덕분이리라.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목회자를 찾겠다는 것 자체가 큰 믿음이니까. 그러니 그 응답은 목회자의 능력이라기보다, 본인 스스로가 벌써 간절함으로 많이 준비되어 온 결과인 것이다. 거기에 무릎 꿇고 기도 받는 겸손까지 하나님이 예쁘게 보신 게다. 그러니 이는 정말 신앙생활에 권할 만한 일 아닌가?
물론 그렇다고 좋은 결과만을 놓고 내가 이 기도 받음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 겸손함에 사실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확실히 그들은 겸손하다. 신실하다. 목회자를 직접 찾아와서 기도 받겠다는 이들치고 착하지 않은 분을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횐 어떨까? 요즘 우리 교회도 그런 분들이 더러 계셔서 참 신난다. 내가 볼 때 절대로 본인의 기도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런데도 “목사님께 기도 받고 싶어 왔다”하신다. 기도 받는 것으로 목회자를 목회자로 대접해주신다. 그래서 참 고맙다.
물론 내겐 거룩한 부담이다. 나를 찾아와서까지 기도 받으신 그분을 내 기도에서도 외면 못한다. 당연히 내 기도의 우선순위에도 오른다. 내 마음에 그들이 먼저 자리한다. 그러니 이 복된 자리를 다른 분들도 욕심 좀 내보시면 어떨까?
이상은 지난 주 우리 교회 주보 ‘목양칼럼’란에 적었던 내용이다. 그랬더니 착한 우리 성도님들은 또 착하게 순종하신다. 하란다고 정말 하는 성도들이다. 난 그게 더 고맙다.
김종훈 목사 / 오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