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팬데믹이 주는 교훈

현재 한국교회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당시의 사회상과 상당 부분 닮았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점점 영향력을 잃어가는 교회, 코로나19 팬데믹은 교황권 약화와 흑사병이 창궐했던 르네상스 직전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뻔하지만 “본질로 돌아가라”고 권면하고 싶다. 코로나19 이후 많은 책들이 “코로나19 팬데믹의 한국교회 OOO”라는 식의 제목으로 출간돼 왔다. 최근까지 교보문고에 등록된 책만 해도 106권에 달한다. 코로나19와 관련한 세미나도 여러 차례 열렸다. 이렇듯 한국교회가 처한 현실에 저마다 이런저런 대안을 찾으며 해답을 내놓고는 있다. 그런데 뭔가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정답일까?


르네상스는 14세기 후반부터 16세기 후반까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서유럽에서 일어난 문화계의 큰 변화를 일컫는다. 르네상스의 기본적인 성격은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의 복원을 추구하는 것으로 흔히 문예 부흥으로 부른다. 르네상스가 발원하게 된 계기를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중세적인 문화가 쇠퇴하고 근세적인 문화가 성립하게 된 것이 배경이라 할 수 있다. 교황권이 약화(1309~77, 1517, 1527)되고 중세 흑사병(1353) 등과 도시의 발달 등으로 봉건 제도가 붕괴(1336~1475, 1648)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문화 변화로, 중세적 문화를 부정하고 근세적 문화로 나아가는 변화를 이끌어냈다. 어찌보면 르네상스의 시작이 반기독교적이라고도 말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역사의 흐름이 곧 종교개혁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것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르네상스가 종교개혁과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나마 유사한 점을 찾자면 르네상스는 고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종교개혁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인 성경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침례교의 역사와 관련해 종교개혁을 그리 좋게 보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성경을 가장 우선시하는 침례교단의 정체성과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라는 기독교의 본질로 돌아가려했던 종교개혁은 마냥 무시하기만 할 존재는 아닐 것이다.


18세기 이후 자유주의 신학이 등장하고 현대에는 동성애를 옹호하는 퀴어신학까지 등장하는 등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이런저런 모양으로 재단하려 했지만 그러한 사조가 힘을 얻어 대세가 됐다거나 교회가 영향력을 회복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란 말이 있다. 차를 아무리 자신의 입맛대로 튜닝해도 결국은 순정이 가장 낫다는 뜻의 신조어로 실제로 순정은 자동차 제조사에서 가장 최상의 조합으로 차를 만든 것이기에 일반인이 튜닝한 것보다 좋을 수 밖에 없다. 말씀 또한, 교회 또한 그러하다. 하나님이 만드시고 세우신 교회의 의미를 되찾는 것, 그것이 코로나19와 그 이후의 시대를 대비하는 나침반이 아닐까 한다. 물론 그렇다면 그 본질이 무엇인지로 또 여러 논쟁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이데올로기와 편견으로 인해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 성경이 말하는 본질이 무엇인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라 판단된다. 우리 모두가 용기 있게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해 본다.
 



총회

더보기
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