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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교 성지 발굴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자신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계속적인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그만큼 역사란 단순히 옛날 이야기를 뛰어넘어 현재의 거울이자 미래의 나침반 역할을 한다. 


침례교의 역사는 영국의 비국교도운동 및 재침례파에 기원을 두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교개혁 시기였던 16세기 당시 영국 국교회였던 성공회와 상충됐다. 침례교는 불세출의 설교가라 불리는 찰스 스펄전 목사(Charles Spurgeon)와 같은 설교가들을 배출하면서 점차 영국 전역으로 확장됐고, 그 세력은 장 칼뱅의 예정설을 극단적으로 해석해 선교가 필요 없다는 기존 영국인 선교사들에 반발, 세계침례회선교회(Baptist Missionary Society)를 세워 ‘개신교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캐리 선교사(William Carey)를 통해 전세계로 확산됐다. 한국 침례교의 기원은 1889년 12월 펜윅 선교사에 의해 함경남도 원산에 설립된 ‘대한기독교회’(1921년 ‘동아기독교회’로 교단명 변경)로 펜윅은 한국인의 특색에 맞춘 선교에 집중했으며, 도시보다 산간 및 해안가 선교에 집중, 만주까지 선교사를 파송했다. 1949년 ‘대한기독교침례회’로 교단명을 변경했으며, 미국 최대의 교단인 남침례회 총회(Southern Baptist Convention)와 1950년에 제휴해 6‧25 이후 존 애버내시(John A, Abernathy, 한국명 나요한) 등의 남침례회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교세를 확장했다. 1959년 남침례회 선교사를 따르는 교인들과 동아기독교회 출신 토착 교인들 간의 갈등으로 대한기독교침례회연맹(구 동아기독교회 계열, 일명 포항파, 안대벽 목사 중심)과 기독교대한침례회연맹(미국 남침례회 선교사 계열, 일명 대전파, 장일수 목사 중심)으로 분열하기도 했으나, 1968년 분열의 종지부를 찍고 연합하게 됐다.


이렇게 장황하게 교단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펼치는 이유는 그동안 너무 교단의 역사를 발굴하고 알리는 일에 너무 소홀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기 위해서이다. 이는 일선 개교회에서도 많이 나타나는 문제로 교회의 역사를 보존하고 기록하는 일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듯 해 안타까움을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강경교회 등 스스로 역사를 알리고 보존할 길이 없는 교회의 경우 교단에서 나서지 않으면 그 누구도 이 일을 해낼 수 없다. 정체성은 역사에서 나온다. 지난 신문에 ‘신사참배 거부 교단’이란 제목으로 사설을 보도하기도 했지만 교단 차원에서 역사를 정리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백날 천날 우리는 신사참배를 거부한 교단이라고 외쳐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이 완화되면서 국내 여행 중 제주도를 방문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별히 제주도는 여러 기독교 성지순례 코스가 마련되어 있어 또 하나의 제주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특별히 ‘순례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제주도 선교역사를 되돌아보는 코스이다. 사실 잘 꾸며졌다고는 말하기 어려웠고 그저 구색만 갖춘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교단 차원에서 역사적인 방향을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관이나 위원회를 조직하고, 한국침신대에서 전문사역자를 양성해 강경과 공주, 칠산, 문경, 울릉도를 잇는 침례교 성지 순례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를 제안한다. 교단이 침례교 성지순례 사업을 직접 운영하든지 여행사와 협업을 하면 일자리 창출도 되고 코로나로 무너진 성지순례업계에도 힘을 불어 넣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