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진하는(march) 3월(March)이다. 2월이 또 다른 시작을 위해 졸업을 하는 달이라면 3월은 본격적으로 출발선에서 한발을 내딛는 달이다.
초등학교를 들어가는 큰아이를 둔 여집사가 아이를 데리고 와서 기도를 청한다. 집사님이 기도하면 된다고 해도 부득불 ‘안수해주십사’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한손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한손으로 머리에 얹고 진심어린 마음으로 기도했다. 부모의 염려가 조금 적어지기를 그리고 아이의 마음에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불안보다 기대감이 더 많아지기를….
오늘 새벽에는 오랜 청년실업의 시간을 보내고 그 어렵다는 은행에 들어간 아들이 마음을 잘 잡고 근무하기를 눈물겹게 기도하는 집사님의 기도소리가 들린다. 그간의 마음 저림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유난히 조직생활을 적응하지 못하는 자녀가 못내 불안하신 모양이다.
3월 며칠에 퇴임식을 하게 됐노라고 말씀하시면서 눈만 뜨면 가는 것으로 알고, 집에 있는 숟가락은 몰라도 직장의 구석구석에 있는 묘목하나까지 살피면서 다녔던 일터를 꽃피는 3월에 그만두는 것이 아직 실감나지 않는다는 남자성도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누군가는 긴 인생의 여정을 시작하고 또 누군가는 마치고 이렇게 저렇게 3월은 나와 주변의 일상에서 나아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 봄(Spring)은 보이는 계절(seeing season)이기도 하고 보는 계절(watching season)이기도 하다.
무엇이 보이고 무엇이 보이지 않는가? 무엇을 봐야하고 무엇을 못보고 사는 걸까? 인생에서 봄을 맞고 있는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할까를 생각해 본다.
먼저, 보는 주체는 말할 것도 없이 바로 나 자신(myself)이어야 한다. 나 자신이 보아야 알 수 있고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것이 아니다. 난 아직도 내가 알고 있고 살고 있는 은하계가 우주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매일 만나는 태양과 달이 하나이듯이 우주가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같은 물리학자는 우주가 무수하다고 논리적으로 말한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우주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팽창한다. 모래알처럼 많은 우주에는 내가 모르는 나들이 살고 있을 수 있다. 변수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상황, 그만큼의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입증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허튼소리로 치부하려고 한다.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다. 너무 동떨어진 일은 허튼소리로 치부하고 가능성의 문을 닫아버린다.
그러나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머리도 열리는 나 자신을 만날 수 있다. 나를 보고 더 나은 나를 보이기 위해 행진하는 계절이다.
다음으로, 인생이라는 거대한 구조물을 알아가기 위해서는 그 전체를 설명한 지도 즉, 설명서(manual)가 필요하다.
전화기 하나를 사도 이전에 쓰던 방식으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요즈음은 예약문자도 전송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화기 설명서를 보고 알았다.
하물며 인생이라는 알 수 없고 개개인의 상황이 다 다른 여정을 어찌 마음내키는대로 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바울은 법대로 경기하는 자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경기하는 자가 상 받기를 바란다면 법대로, 정해진 규칙대로, 정정당당하게 경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어진 인생을 살고 우리의 공력들을 그 분 앞에 내어놓을 때, 어떤 이의 공력은 불로 없어지고 어떤 이의 공력은 바람으로 없어지나 설명서대로 산 사람의 공력은 그 분 앞에서 또렷하게 자태를 드러낼 때가 있다고 알려준다(고전 3:10~7).
전자제품의 AS를 받으러 가서도 제일 먼저 받는 질문은 물건의 용도에 맞게 사용하다가 일어난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하여 고객의 부담비용을 정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인생의 매뉴얼 중에 성경만한 것이 또 있으랴.
마지막으로, 설명서를 든 자는 그것이 현실이 되도록 움직여야(maraton) 한다.
때로는 아침출근시간 때의 또각거리는 잰 걸음으로, 때로는 절경을 구경하는 선비의 미음완보(微吟緩步)로, 사안에 따라서 큰 보폭과 작은 보폭이 있을 수 있고, 단거리든지 장거리를 걸어가는 것이 인생이다.
자전거를 탄 자가 넘어지지 않는 최적의 방법은 자전거의 페달을 끊임없이 밟는 것이 최상이라는 말을 상기하게 된다. 우리 각자가 시작한 일이 우리에게 버겁다고 느껴질 때 그 때 우리의 인생에서는 성장이라는 선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일에서 익숙하고도 능숙하다고 생각될 때 성숙이라는 은혜가 경험되는 것이다.
인생은 선물과 성숙이라는 씨실과 날실이 만들어 가는 행진이다.
3월에 나는 3M(myself, manual, maraton)중에 성경을 알고 가지고 살게 됐으니 참 감사한 일이다. 그 설명서대로 덜 치우치면서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그렇게 행진하려고 하나 여러 가지의 사정과 환경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머뭇거리고 있는 또 다른 나에게 걸음을 옮겨야겠다.
교회 화단에 있는 철쭉의 가지에서 행진하는 생명력을 느끼고, 똑같은 햇볕인 것 같지만 봄 햇살의 따사로움이 묻어나고, 골목길을 걸어가는 아이들의 힘찬 재잘거림이 유난히 정겹게 다가오는 3월에 발걸음 가벼운 행진을 시작한다.
윤양수 목사/한소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