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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망

광야에서
김근중 목사
늘푸른교회

특별한 생각 없이 곧잘 쓰는 말이 있다. ‘희망사항’이라는 말이다.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희망사항’이라는 말은 확실한 지식과 의지가 없고, 실현가능성을 믿지 않는 상태에서 하게 되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막연한 소원, 현실성 없는 꿈을 희망사항이라 말하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장차 무엇이 될 것이냐, 소원이 무엇이냐?”라고 물어보면 “내 소원은 이것입니다” “내 목적은 이것입니다” “10년이 걸리더라도 이것만은 꼭 이룰 것입니다”라고 분명하게 대답하는 젊은이가 거의 없다.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대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나약하고 초라하다. 어쩌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허상의 고백을 듣는 것 같아 아쉽고 쓸쓸하다.


나약한 정신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확실한 희망과 이상이 없다면 결단이나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나는 희망이라는 말보다도 소망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소망은 바라는 바를 분명히 말한다. 막연한 희망사항이 아닌, ‘간절한 기대’(企待)를 가지고 있다. ‘간절한 기대’는 먼 곳에 있는 것을 목을 길게 빼고 바라본다는 뜻이다. 우리 안에 갇혀 있는 소가 담장 너머로 푸른 풀밭을 내다본다. 갈 수는 없다. 묶여 있지만 목을 길게 빼고 푸른 풀밭을 바라본다. 간절한 기대인 소망이다. 무슨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행동이 따르는 것도 아니다. 행동으로 옮겨봐도 지금은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소용도 없다. 말대로 학수고대(鶴首苦待)일 뿐이다. 그럼에도 ‘소망’은 미래적이고 구체적이다.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의지적이다.


‘희망’은 나 자신인 인간으로부터 출발하지만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으로부터 출발하는 신앙적 응답이다. ‘희망’은 미래를 투사한 인간의 의지지만 ‘소망’은 미래로부터 시작하는 한 하나님의 의지다.


하나님의 의지를 내가 내 것으로 받아들일 때에 비로소 희망이 소망이 된다. 그래서 나는 소원이나 희망이라는 말보다 소망이라는 말을 좋아하고 사람은 소망을 먹고 산다고 말한다. 2023년의 시작이다. 소망으로 가득 채우자. 소망을 먹고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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