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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참배 거부 기념일

최근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 시대에 대한 역사 논쟁으로 몸살을 앓았다. 국가수반의 발언으로 시작된 3·1절 기념사가 역사인식에 대한 찬반논란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의견을 주장하고 이에 대한 건전한 비판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다시 말해 역사적 사실이 계속 나오고 있고 마무리가 되지 않았는데 과거를 무시하며 나아가는 것 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디딤돌로 삼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라는 소리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는 과거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일에 적극적인 종교라는데 이의를 달기 어려울 것 같다. 수천년 전의 기록인 성경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기리며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만 봐도 이를 부인하기는 어렵다. 


5월은 우리 교단에 있어 아픔의 역사가 있는 달이다. 1944년 5월 10일 함흥재판소는 우리 교단의 전신인 동아기독교에 대해 “신사참배와 황궁요배를 거부하므로 일제와 천황을 모독했으며 교단의 교규 내용이 일제의 국체명징에 위배되는 불온사상을 지닌 교단”이라는 죄목으로 교단 해체령을 공표했다. 전국의 교회 건물은 폐쇄 조치를 당하고 모든 예배 행위는 금지됐으며 교회의 종각들은 강제로 일제에 헌납됐다. 교회의 대지와 건물은 매각해 국방헌금에 납입시켰다. 충남 강경의 요지인 옥녀봉 일대의 4000여 평이 넘는 강경교회의 대지를 일제가 강제로 압수해 그들의 신사부지로 조성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닌 1940년 교규서 제출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믿음의 선진들의 4년에 걸친 험난한 박해 속에도 굴하지 않는 신앙은 우리 교단의 자랑스러운 전통임에 틀림없다. 신사참배 강요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1939년 일본제국회의 중의원 회의장에서 신사참배 반대의 뜻을 담은 유인물을 뿌리고 체포된 한국의 기독교운동가이자 교육가인 안이숙 선생의 일화 또한 교단 내에서 유명하다. 안선생은 1928년 일본의 교토여자전문학교 가정과를 졸업한 후 대구 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와 선천 보성여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32년 초부터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가 각 지역 기독교계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자 교직을 그만두고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전념했다.


우리교단은 지난 105차 총회에서 이러한 역사를 되새기기 위해 5월 10일을 침례교단 신사참배 거부 기념일을 제정해 기념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침례교회의 선진들이 걸었던 길들을 발굴하고 일제에 항거한 역사적 사실과 신사참배 거부로 인해 교단의 지도자들의 아픔을 겪고 순교했던 역사들을 재조명해야 한다. 또한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전국의 침례교회에 알려 믿음과 신앙을 지켜왔던 침례교회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계승해 나가기를 바란다. 


아쉬운 것은 우리 교단이 이러한 전통을 계승 발전할 동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개교회들 마저도 자신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에 그다지 열심을 내지 않고 교단 총회 역시 어떠한 사업을 꾸준히 진행해온 역사를 찾기 쉽지 않다. 신사참배는 물론이고 국방헌금에 거금을 자의로 헌납한 교단들마저도 자신들의 역사를 기리는 일에 열심인 상황에서 우리 침례교단이 역사에 그다지 관심을 쏟지 않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교단 총회가 기념일을 지정해 행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자랑스러운 역사를 한국교회에 알리며 수난의 역사, 순교의 역사를 계승해 나가는 작업 또한 반드시 병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부디 지속성 있는 침례교 역사 발굴 프로젝트가 이번 기회를 통해 불같이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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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