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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성경이 우리 손에 오기까지(7)

조선의 “새빛” 선교사들-8
백정수 목사
더가까운교회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하기 직전, 민중들에게 던진 성경책(한문)은 참으로 놀라운 복음의 열매를 낳았다. ‘박춘권’은 자신의 칼을 맞고 죽어가는 서양 사람이 건네주는 책을 처음엔 받지 않았으나, 상황이 끝나고 돌아갈 때 하나를 주워 집으로 가져갔다. 성경을 정독한 그는 후일 예수님을 영접하고 독실한 신자가 되어, 안주교회(평안남도) 영수(장로)가 됐다. 그의 조카인 ‘이영태’도 그와 함께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믿게 됐고, 훗날 한국어성경 3분의 2를 번역하는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되는 인물로 성장하게 된다.


또한 11세(12세)였던 ‘최치량’은 작은 아버지와 제너럴셔먼호의 상황을 보러 왔다가, 토마스 선교사가 던진 성경 3권을 주웠는데, 그는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두려워 성경을 몰래 숨기고 있다가 한 권을 친분이 있던 영문주사(당시 군 위병소장) ‘박영식’에게 주었다. 박영식은 성경 종이의 질이 너무 좋아 한 장씩 뜯어 자기 집의 벽지로 사용했다. 어찌 보면 세계 최초로 성경으로 도배된 집이 아닐까 여겨진다. 박영식은 벽지의 말씀들을 읽다 감동받아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다. 


성경책을 전해준 ‘최치량’도 어른이 되어, 나중에 성경으로 도배 된 ‘박영식’의 집을 구입해 여관으로 운영을 했었다. 그러던 중 벽지에 있는 말씀을 보고 회심하게 됐고, 어느덧 전 주인 ‘박영식’을 비롯해 회심한 다른 이웃들이 점차 많아지게 됐다. 이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예배 및 모임을 갖고 싶어 했고, 그래서 널다리골에 있던 이 여관이 곧 예배 장소로 변하게 됐다. 이 예배 장소가 평양 최초의 개신교회인 ‘널다리골교회’다. 이후 이 널다리골교회는 명칭이 변경되는데, 바로 이 교회가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의 중심이 된 ‘장대현교회’인 것이다. 


비록 토마스 목사는 하나님에 대해 한마디도 전하지 못한 채 순교했지만, 그가 전해준 성경 들이 사람들에게 전달되면서 성경을 읽은 사람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믿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힘이고, 하나님 말씀의 신비한 능력인 것이다.


당시 중국(청나라)에서 사역을 하고 있던 ‘존 로스’ 선교사는 토마스 선교사의 안타까운 순교 소식을 듣게 됐다. 그때는 ‘짧은 인생, 어떻게 주를 위해 살 것인가?’가 그의 뇌리 속에 파고드는 시점이기도 했다. 존 로스는 복음에 대해 완강하게 반응하는 이름도 모르는 ‘조선’이란 나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강국도 아닌 약소국인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외부 문화에 극단적으로 배척한다는 말인가?’ 그러면서 그는 토마스 선교사가 하지 못했던 사역을 이어 해주고 싶은 강한 열망이 일어났다.


주변 선교사들에게 조선에 대해 물어봤지만, 조선이란 나라에 대해 알지 못했다. 중국 사람들에도 물어봐도 돌아오는 답변은 기대를 갖기가 어려웠다, 처음에는 조선이 중국의 속국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조선에 대해 알고 싶었던 상황에서, 조선의 무역상을 만나보라는 묘안이 떠올랐다. 당시는 인삼으로 거부가 된 조선의 무역상 ‘거상 임상옥’(소설 ‘상도’의 주인공) 덕분에 중국의 여러 곳에 무역 활로들이 많아졌을 때였다. 그래서 조선과 중국을 오고가는 무역상인들이 의외로 많았다. 존 로스는 주변에서 조선의 무역상을 찾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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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