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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펜윅의 비즈니스 선교에 관한 평가-3

안희열 교수
한국침신대 선교학

2년 후 펜윅의 편지는 1893년에 제임스 존스톤(James Johnston) 박사의 중남부 아프리카에서의 진실 대 허구(Reality versus Romance in South Central Africa)라는 책에 일부 내용이 게재돼 일파만파로 펴졌고 펜윅과 언더우드 간에 갈등과 불신은 더욱 증폭됐다. 


마침내 이 내용은 한국연합선교회에 전달됐고, 선교회는 펜윅을 가르켜 “반드시 소환해야 할 어리석고 화 잘 내는 사람”이라 비난하면서 선교비를 끊어버렸다. 


결국 펜윅은 필화사건으로 인해 한국연합선교회로부터 받았던 선교비가 1893년에 끊기게 됐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비즈니스 선교였다.


3. 원산 선교기지의 차별성을 제시하기 위함
펜윅의 원산 선교기지(mission station)는 초기 내한 선교사의 기지와는 달랐다. 선교기지(mission station)란 선교사들이 사역하기에 편리한 땅을 구입해서 그곳에 교회, 학교, 병원, 유치원 등을 세워 활동하는 것을 말한다.
초기 내한 선교사들은 대개 ‘①교회-②학교-③병원’이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활동했다면, 펜윅은 ‘①교회-②농장-③과수원’이라는 세 축으로 선교했다. 초기 내한 선교사 중에서 펜윅과 같은 선교기지를 만들어 사역한 자는 매우 드물다. 개화기 시절 사과 재배를 선교사역으로 승화시킨 자로는 대구의 제임스 아담스(James Adams) 선교사와 대구 동산병원 설립자인 우드브릿지 존슨(Woodbridge Johnson) 의사이다.


펜윅이 원산 선교기지를 만든 이유는 그가 교단 파송 선교사가 아니어서 생활비와 사역비를 충분히 충당할 선교비가 모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주무기인 농장과 과수원 사역으로 자립 선교를 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펜윅은 원산 선교기지의 비전(①교회-②농장-③과수원)을 완성하기 위해서 세 가지에 힘썼다. 첫 번째로 힘쓴 것이 교회 개척이다. 펜윅은 한국선교 46년 동안에 200개의 교회를 세웠는데, 그가 사망한 이후 1945년 해방 때까지 동아기독교는 성장해 250개로 확장됐다. 이 교회를 지역적으로 분석해 보면 북한 동아기독교가 60개, 재만 동아기독교가 100개, 재러 동아기독교가 47개, 내몽고가 3개여서 북한, 재만, 재러 동아기독교가 총 210개로 84%를 차지했고, 남한 동아기독교는 40개로 16%를 차지했다(초기 한국침례교 지역별 분포도 현황(1889~1945)을 보기 위해서는 안희열, “Malcolm C. Fenwick의 울릉도 선교에 관한 평가,” 복음과 실천 66 (2020): 108을 보라).


이 통계를 본다면 펜윅은 북방 선교 중심의 교회 개척에 힘썼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펜윅을 “북방 선교의 대가”로 부른다.


두 번째로 힘쓴 것이 농장 사역이다. 그렇다면 펜윅이 세운 원산 농장은 고도의 수준을 지니고 있었을까? 이것은 The Korea Mission Field란 잡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잡지의 1907년 11월호를 보면 “침례교회를 대표하는 독립 선교사인 말콤 펜윅 목사는 원산에서 선교기지를 세웠습니다. 펜윅의 원산 농장 위치는 아주 이상적이고, 이 농장의 작업은 고도의 수준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라고 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펜윅이 내한한 지 10년이 채 안 되는 1898년에 The Korean Repository란 잡지에 기고된 원산 농장에 대한 평가가 대단하다: “그[펜윅]의 호박, 옥수수, 밀, 기장, 귀리는 한국인 농부들의 찬사를 듬뿍 받았다. 그가 재배한 호박은 세숫대야보다 컸는데, 이것을 지게에 올리려면 장정 두 사람이 필요할 정도였다.” 이처럼 원산 농장은 비즈니스 선교의 성공의 아이콘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로 힘쓴 것이 과수원 사역이다. 펜윅은 원산 과수원에서 어떤 과일을 재배했을까? 이호철은 “개화기 서양능금과 과수 재배기술의 수용”이란 글에서 개화기에 개원한 외국인 과수원을 소개했는데, 이 자료에 따르면 펜윅은 사과, 앵두, 자두, 배를 재배했고 좋은 성과를 거두었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원산 과수원에서 재배한 사과는 외국에 수출될 정도로 잘됐으니 과수원은 펜윅의 비즈니스 선교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사업이었다. 더욱이 이호철은 펜윅을 서양식 과수원을 최초로 조성한 자라고 밝혔을 뿐 아니라 “근대적인 과수원이 출현”하는데 일조를 한 사람으로 소개했다.


이처럼 펜윅은 ‘①교회-②농장-③과수원’이라는 독특한 선교기지의 중요성과 영향력을 알리기 위해 비즈니스 선교를 시작했다.


II. 펜윅의 비즈니스 선교의 특징과 경쟁력
본 장에서는 펜윅의 원산 농장과 과수원의 특징과 경쟁력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사실 비즈니스 선교의 성공률은 그리 높지 않다. 그 이유는 돈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선교사가 돈에 자유롭지 못하고, 투명하지 못하거나, 수익의 종착역이 영혼구령에 있지 않으면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펜윅은 어떠했는지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1. 펜윅의 비즈니스 선교의 특징
펜윅의 비즈니스 선교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BJC’ 원리를 실현했다. ‘BJC’ 원리란 영어의 Benefit(이익), Job(일거리 창출), Church Planting(교회 개척)의 첫 자를 따서 만든 것이다.


어떤 장사꾼도 일의 규모와 상관없이 이익과 일거리 창출에 집중한다. 차이가 있다면 교회 개척의 유무이다. 선교사가 자신이 힘들게 번 돈으로 교회 개척하는 일이 쉬울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무척 어렵고, 대다수 선교사가 여기에서 실패한다. 하지만 펜윅은 달랐다. 그가 원산 농장과 과수원에서 벌어들인 수익금은 한결같이 제자를 양육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데 사용됐다. 이것이 펜윅의 매력이요, 힘이었다.


먼저 이익(Benefit)에 관한 부분을 보자. 원산은 기후와 토양의 영향으로 인해서 쌀농사는 저조해 쌀값이 대체로 부산에 비해서 높았고, 콩(대두)은 작황이 잘돼 일본에까지 수출될 지경이었다.


그렇다면 펜윅은 원산 농장에서 어떤 작물과 채소를 재배했고, 어떤 가금(家禽)을 키웠을까? 1898년 The Korean Repository에 기고된 “한국의 농사법”(Korean Farming)과 “원산 과일”(Fruit in Wonsan)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펜윅이 원산농장을 시범농장으로 운영하면서 취급했던 것 20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기장, (2) 감자, (3) 콩, (4) 참외, (5) 무, (6) 당근, (7) 쌀, (8) 귀리, (9) 보리, (10) 근채류, (11) 밀, (12) 메밀, (13) 참깨, (14) 양배추, (15) 오이, (16) 옥수수, (17) 호박, (18) 셀러리, (19) 돼지, (20) 닭.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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