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퍼센트”(88회)에 이어서, 제한된 범위 안에서 절제에 대하여 좀 더 이야기 하고자 한다:
신자가 여남은 명 정도 출석한 교회에서 한 방문 설교자가 설교를 하면서 마치 수백 명의 회중 앞에서 하듯 음성을 한 옥타브 높여서 사자후를 토했다. 열의는 좋았지만 회중은 목사의 고성에 큰 부담을 느꼈다.
같은 빌라의 이웃 부부들이 한 가정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 만찬이 끝난 후 주인의 요청으로 손님 중 한 여성이 노래를 불렀다. 그리 크지 않은 거실이었는데 그 여성은 눈을 부릅뜨고 입을 한껏 벌리고 목청이 찢어질 듯 큰 소리로 노래했다. 그(녀)는 자신이 어디서 누구를 위해 노래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아름다움은 고사하고 듣기가 여간 거북하지 않았다.
애국가를 부른 한 두 성악가들에 대해 이야기 한 바 있거니와 가곡(歌曲) 또한 이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우리 가곡은, 노랫말이 섬세하고 곡이 민족정서와 잘 맞아서 아름답고 때로는 향수(鄕愁)마저 자아내게 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노랫말을 알아듣기 어렵다는 점이다. 노래하는 이가 자신의 음성을 조금만 절제해도 가사 전달은 물론 음악도 훨씬 좋아질 것 같은데…. 들을 때마다 안타깝다.
오래된 아파트를 개수하면서 바닥과 벽채는 물론 샤워기와 세면대의 수도꼭지까지 새것으로 교체했다. 그런데 거주자들이 입주한 후에 곧 민원이 접수됐다. 그 중 하나가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튀어서 옷을 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도꼭지는 필요한 만큼만 조심해서 열고 사용해야지 한껏 열어버리면 수압 때문에 물이 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을 다 열고도 물이 튈 정도가 아니라면 수압이 낮아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사용할 때는 오히려 큰 불편을 겪게 될 것이다.
얼마 전 광명의 한 교회에서 여성 중창단의 찬양을 듣는데 처음 듣는 음악인데도 노랫말을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었고, 음악을 뛰어넘어 교양미까지 엿보였다. 그들은 한 때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쳤던 한 어린이 합창단의 단원이기는 했지만 지금은 사모를 포함해서 모두가 주부들인데도 공연을 직업으로 하는 “프로”들 보다 수준이 높아 보였다. 재능과 노력에 절제를 더했기 때문일 것이다.
목사가 강대상에서 목소리를 낮추고 청중의 눈치를 살피라거나 기를 죽여 찬양하라는 말이 아니라, 다만 자신과 대상 사이에 놓인 규모(規模)를 알고 필요에 따라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참새 몇 마리 잡으려고 기관총을 난사하랴. 절제(節制) 해야 절재(絶才)된다는 말 유념하시라.
도한호 총장/침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