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모습은 교회의 모습을 통해 드러나며 교회의 모습은 교회 목회를 통해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침례교적 목회를 논하려면 먼저 교회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란 무엇인가? 사실 교회가 건물이나 제도 혹은 프로그램이 아니고 사람들이기 때문에 교회란 누구인가를 물어야 한다. 교회는 사람이다. 간명하게 말하자면 구원얻고, 침례받고 교회 공동체에 가입한 사람들이다.
교회에 대한 이해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 기둥 중 하나이다. 교회는 모든 신앙과 실천의 포괄적 결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에 대한 이해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실천에 프레임을 제공한다. 기독교 신앙은 교회에 의해 시작되고, 전파되며, 성숙되고, 재생산된다. 우리 중 대부분이 교회에 나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만났으며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교회에서 신앙의 성장을 경험했고,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고 신앙의 실천을 성취하고 있다.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고 직접 가정을 꾸려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가정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가정생활을 오히려 등한히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목회자와 성도들도 교회를 소홀히 여기고 교회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신앙생활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과 연관된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와 목적이 무엇일까?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고 기도하셨는데, 그 기도 중에 “아버지께서 내게(예수님에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 17:4)라고 하셨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어 하시어야만 했던 일이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쉽게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답한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러나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찾으신 구원얻은 사람들을 모아 교회를 세우시는 것이 목표였다.
교회는 예수님에게 주어진 사람들(요17:6)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사는 사람들이며(요17:8),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존재이고(요17:11, 14), 세상으로 보냄을 받는 존재로서(요17:18). 주님께서는 친히 교회에 영광을 주셨다(요17:22). 그러므로 교회는 영광스러운 교회,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하시는 교회인 것이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주 예수님의 교회이다. 우리 교회는 영광스러운 교회이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며, 예수님께서 친히 세우신 영광스럽고 거룩한 존재이다. 비록 실존적인 모습은 부끄럽고 부족하며 온전치 못한 것이 많지만 예수님의 교회이기에 소망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친히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마16:18)고 선언하셨다. 그러면 반석이란 무엇인가?
첫째로 로마 가톨릭교회는 베드로로부터 시작된 교황들이라고 주장한다. 반석이라는 헬라어가 페트라인데, 그 말을 바위 덩어리에서 떨어져 나온 돌덩이를 뜻하는 베드로와 같은 것으로 오해한데서 비롯된 잘못된 해석이다. 그들은 교회의 기초가 베드로라고 보고 베드로의 계승자인 교황과 사제들이 교회의 기초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문법적으로 잘못된 해석이다.
둘째로 베드로는 단순히 ‘돌멩이’라는 의미에 지나지 않고 베드로 자신이 증언한 바처럼 예수님께서 친히 반석이 되신다(벧전2:5~8)는 견해이다.
그리고 셋째로 반석을 계시된 진리, 곧 베드로가 증거 하는 신앙 고백으로 본다. 우리는 둘째와 셋째 견해를 받아들일 수 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터)로 하여(고전3:11)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고백을 한 사람들로 세워진다(마 16:16~18; 엡 2:20~22; 벧전 2:5).
교회의 기초는 교회를 세우러 오신 예수님이시다. 그리고 교회는 그 예수님께 대한 온전한 신앙고백을 한 사람들로 구성된다.
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누구냐에 따라 교회는 특성을 달리한다. 어떤 사람들로 교회를 구성할 것인가에 의해 교회의 목회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예수님께 대한 성경적 신앙고백이 교회의 기초임을 확실히 해야 한다.
이명희 교수
침신대 신학과
(실천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