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아침 햇볕이 따뜻하다고 생각되는 가을입니다.
오늘도 성령님은 환경을 넘어서 나약한 저를 통하여 일하고 계심을 고백합니다.
어느 날 현지인 파트너 야로슬라브가 분캐리 집시촌 지역에 예배처소로 사용할 2평 남짓한 장소를 보여 준다고 했습니다. 길을 가던 중 동네 큰 길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인사하며 지나갔습니다.
누군가가 “성붕, 엘레자를 위해서 기도 해 주세요.”하고 말했습니다.
남루한 옷에 마냥 여리고 지친 모습인 22세의 엘레자는 작은 애를 안은 채 또 다른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마치 애기가 애기를 키우는 것 같아 참으로 안쓰러웠습니다.
동네 입구에 있는 엘레자의 집을 방문 해 보았습니다. 한 방을 들여다보니 가구라고는 일인용 침대에 상자박스에 들어 있는 옷들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구차하게 살면서도 저를 대접하겠다고 그녀의 남편이 얼른 콜라와 과자를 사왔습니다. 저는 집시하면 구걸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행동을 보고 내심 놀랐습니다. 그 때부터,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 가정을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분캐리에서 예배를 마친 어느 날 다시 엘레자를 만났습니다. 제 앞에선 집시여인은 툭 건드리면 삭은 나무마냥 부서질 것 같이 지쳐보였습니다.
‘지금이 하나님의 사랑을 엘레자 가정에 나타 낼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생각을 하나님이 주시는 소원으로 믿고, 다음 토요일에 엘레자 가정과 함께 지낼 계획을 세웠습니다.
마침내 토요일, 어린 애기는 옆집에 사는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남편과 어린 아들딸이 거적 같은 옷을 벗고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우리는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아이들이 아빠, 엄마의 손을 잡고 시내를 향해 걷는데, 어린 딸은 흥에 겨워 얼굴에 웃음이 철철 흘러 내렸습니다.
‘언제 이런 가족동반 나들이가 있었겠는가?’ 생각하며 걷는 나의 마음에도 뿌듯함이 온 몸에 차올랐습니다.
우선 평상시에 봐 두었던 선착장 앞의 저렴한 옷 가게에 들렀습니다.
“엘레자, 아이들 옷 필요한대로 골라봐.” “예.”
“그리고 엘레자 옷도 고르고.”
자신의 옷도 골라 보더니 “저는 됐어요.”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녀의 아들 신발 옆이 갈라진 것을 보고 여름 샌달도 구입했습니다. 도나우강변 여름상설 야외 카페도 갔습니다.
이곳은 내가 초여름에 장사가 시작될 때마다 찾아와 푸르른 하늘을 보며 강바람을 쐬며 커피를 마시며 독서하고 언어 공부하는 곳입니다.
피자와 커피와 음료를 시켜서 가난에 지친 집시가족과 함께 주말 오후의 여유로움을 누렸습니다. 커피를 마신 뒤 공원을 산책하면서 공원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공원 끝 강 옆에는 1600년도에 세워진 비딘의 상징 <비다 할머니 성>이 있습니다.
비딘은 도나우강을 따라 운항하는 유럽의 유람선이 정박하는 곳이기에, 비다할머니 성은 미국인, 독일인 등 관광객들도 들려서 구경하는 곳입니다.
“엘레자, 비딘 성에 들어 가봤나요.” “아니요.”
“뭐, 아직도 한 번도 안 들어 가 봤어요?” “예.”
이 성의 입장료는 1인당 4레바(한화 3,200원)입니다.
이 곳에서 평생 산 이들이 성을 한 번도 못 가 본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집시들이 비딘의 삶과 문화의 자리에서 얼마나 소외되어 사는가를 여실히 보여 주는 것입니다.
입장료를 내려고 매표소에 갔더니 오늘은 무료라고 합니다.
이들이 비딘에 살면서도 그저 겉으로만 보고 궁금해 했을 그 비딘성 안으로 들어가자,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엘레자의 얼굴이 처녀의 얼굴처럼 변했습니다.
엘레자의 가정에 비딘에서 찍은 가족 사진들을 선물하기 위해서 다시 찾아 갔습니다.
“엘레자, 성붕 왔다.”
어디 갔다가 들어오던 엘레자가 시어머니의 말을 듣더니,
“성붕, 왔어요?”하며 집으로 급하게 들어옵니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천진하고 생기 도는 엘레자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성붕, 많이 기다렸어요!”
그러면서 차를 만드는 나무의 꽃을 털어서 판 돈으로 산 아이들의 옷과 신발을 가져와서 자기가 샀노라고 자랑합니다.
아이들의 엄마 아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집시 가정을 보며, 저는 그 가정에 피어난 작은 행복을 함께 즐거워했습니다.
저는 옥한음 목사님이 “목회자의 관심은 하나의 영혼이지 수적인 성취욕이 아니다.”라고 하신 말씀을, 선교사인 제가 늘 새겨야할 황금률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집시여인 엘레자 가정에 피어난 행복이 바로 집시선교 센터가 존재해야 할 이유입니다.
요즘은 분캐리 집시촌 엘레자의 집 마당에서 복음을 전하고 집시찬양을 가르치며 주일 오후 3시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성붕, 우리 하나님이 도와주시게 기도해요.”
기다리던 집시선교 센터 법인의 설립이 확정되어 서류를 소피아에서 하리 변호사로부터 받았습니다. 불가리아에서 집을 구입한 경험이 있는 선교사들의 말을 빌리면 거의 구입 비용만큼 수리비용도 든다고 합니다. 집시선교 센터도 지어진지 오래된 집이라서 전체적으로 손을 보아야 합니다.
비딘 정착을 도와주었던 에브게니가 주공사를 맡았고 제가 보조로 돕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게 살아가는 집시촌에 집시교회를 세우고, 복음과 구제사역으로 주님의 눈물을 닦아 드리는 선교를 오늘도 변함이 없이 계속 할 수 있는 것은, 제 안에서 친히 사시는 성령님이 일하시며 믿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집시선교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필요한 재정이 돕는 손 길를 통하여 공급되기를 기도 부탁드립니다.
풍요로운 추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3년 9월 17일
불가리아 비딘에서
변성붕-박마리나 후원계좌
외환 181-0401158-508 변성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