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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性이 아닌 聖으로

 

마치 붐(boom)이라도 일듯 요즘은 여성들이 대세인 듯하다. 최근 러시아가 중앙은행 총재로 여성을 임명하더니 미국 연방준비제도의장도 여성으로 지명됐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 또한 홀로코스트(Holocaust) 희생자의 딸인 카니트 플루그를 지명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여성의 고위직 진출은 양보다 질의 양상을 띠고 있으며 앞으로의 진출 가능성은 더욱 높다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사회 분야에 여성들의 진출이 근래에 와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와 계속되는 기술의 진보들은 더 많은 여성들을 사회로 진출하게 할 것이 분명하다.

 

여성의 관점성정치학적 관점을 기본으로 하는 페미니즘(feminism)의 짧은 역사에 비하면, 오늘의 관점으로 바라본 여성은 도리어 남성에 대한 역차별의 주체가 될 수도 있는 위험을 잉태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불편한 가능성은 앞으로의 세대 보다 오늘의 세대가 지혜롭게 위험한 장치를 제거하는 비용과 수고들을 얼마나 잘 감당하느냐에 따라 결정 될 것이다.

 

잘못하면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하였다는 프랑스 혁명에서도 여성은 여전히 불평등했던 것처럼 남녀가 모든 분야에서 평등하다는 오늘과 내일에 있어 여성과 달리 남성이 역차별을 받을 수 있는 불편함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기에 남녀 모두 함께 평등한 공존을 위한 지혜로운 노력들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2013103차 교단 정기총회에서 여성 목사 안이 통과됐다. 물론 모든 대의원이 참여하지 않은 가운데 진행되어 통과 된 것이라 조금은 아쉽지만 합법성을 갖추기에는 충분했고, 일사부재리 원칙에 의해 이제는 시행을 해야 하는 것이 됐다. 사실 오랜 시간 여성 목사 건에 대해 많은 찬반 논쟁들이 있어왔다. 성경적, 사회적 이유들을 들어가며 양쪽이 팽팽히 맞서며 논쟁해왔다.

 

그러다보니 여성목사 측면에서 타 교단에 비해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장기간의 논쟁과 대립은 교단 내 어정쩡한 모습을 연출함과 동시에 만약에 있을 여성안수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오늘을 맞게 했다.

 

어정쩡한 모습은 대부분 목사 부인들이지만 교단 내에서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없게 되자 타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개 교회 내에서는 목사로 칭함을 받지만 교단과 대외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하여 사모로 칭하여지는 우스꽝스러운 목사(사모)이다.

 

이런 면에서 찬반을 떠나 여성 안수의 해결은 여러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찬반의 문제가 이렇다 하여 완전히 해소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찬반의 단계를 넘어서야 할 때다. 누구의 옳고 그름을 떠나 어떻게 하면 남성, 여성의 목사가 아닌, 참된 목사만을 세움으로 목사다운 목사로 서게 하느냐에 초점을 맞추어 하나님과 역사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논쟁 초점은 목사의 이었지만 이제는 에 의해 자격이 결정되는 것이 아닌 에 의해 자격이 결정됨이 옳다. 신앙이나 목회는 결국 , 즉 거룩이기 때문이다. 목사와 목회는 거룩해야 한다. 거룩이 목회의 진정한 얼굴이며 심장이다.

 

그리고 거룩만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다. 그러기에 그동안 여성목사를 반대했던 분들이나 찬성했던 분들 모두 을 넘어 을 중심으로 하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서 주님 앞과 세상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목사를 세움으로 그 목사를 통해 세상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그 목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은 충만하게 드러나고 세상은 예수를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알차고 바른 준비다. 주님 보시기에 좋게 세우는 것이다. 바르게 세우는 것이다. 이것은 교단의 중차대한 시대적 과제이며 각 지방회와 교회의 사명이다. 이같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제안으로 반칙이 없는 선택과 행동을 희망한다.

 

첫째로, 이미 목사가 된 분, 즉 타 교단에서 안수를 받은 여자목사에 대한 바른 처리를 하여야 한다. 그 이유는 이분들에 대한 바른 처리가 앞으로 세워질 여성목사를 비롯한 모든 목회자들에 대한 시금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103차 총회의 결과를 가장 기뻐했을 분들은 다름 아닌 목사 안수를 받았음에도 사모로 불리던 분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진정한 자격, 즉 소명과 훈련이 되어 있는가 물어야 한다. 어떤 과정을 거쳐 어느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이미 본 교단 신학교를 졸업한 것이 아니라면 기존의 타 신학과 타 교단 출신들에게 적용되던 시취 규약을 이유 불문 준수해야 한다.

 

이것이 그들 스스로의 당당함과 정직함을 소유하게 하는 것이다. 이미 목사인데 그런 절차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거나 남편이 담임목사 또는 높은 교세와 인맥 등을 언급하면서 그냥 적당히 호칭하며 교단 목사로 행세 하거나 하도록 해서도 안 된다.

 

교단과 각 지방회가 정한 규약대로 준수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불행한 역사의 오점을 남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인이 목사이고 그 나름대로 지적, 영적 능력이 있다 하여도 합법적 목사 됨을 위해서, 그리고 더 이상 성적(性的) 차별을 받지 않는 당당한 목사로 사역할 수 있기 위해서 잠시 고난의 시간은 필요하다.

 

필요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자신 스스로를 긍정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단과 각 지방회는 그 누구의 입장이나 눈치를 보지 말고 보다 엄격한 규약을 집행할 것을 요구한다.

 

둘째로, 신학교 당국의 의식의 변화다. 여학생들을 전도사로써 목회 보조 정도로 생각해 지도하는 것과 목사와 목회로 생각하고 지도하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크다. 그럼에도 여학생에 대한 사역의 중요성을 남학생에 비해 덜 중요하게 생각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여성목사 안수가 불가능하였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학교나 학생 스스로 자신의 사역의 한계 범위 내에서만 준비와 미래를 위해 공부와 훈련을 하는 소극적인 태도로 큰 저항 없이 순응해 왔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러기에 신학교와 학생은 보조 사역자를 위한 교육과 훈련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목사와 목회를 전제로 한 지도와 훈련을 해야 할 것이며, 마인드 또한 부 사역자가 아닌 전임 또는 담임사역자로의 의식구조를 형성하여야 한다. 이유는 목사, 목회는 성()이 아닌 성()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성적으로 차별해서도 동정을 구하여서도 안 된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부름 받은 자로의 삶인 목사, 목회로 자신을 말하여야 한다. 그래서 목사, 목회는 성()이 아니고 성()인 것이다. 주님이 이 시대 갈망하시0스러운 목사가 되고, 목회를 하는 것은 주의 일에서 사람의 힘과 방법 그리고 모략과 적당히를 제거하는 것이다.

 

목사와 목회는 에릭 프롬(Erich Fromm)의 소유와 존재에서 존재다. 목사는 소유하는 것이 아닌 존재하는 것이다. 목회는 바로 소유가 아닌 존재에서 시작되고 유지되고 열매를 맺는다. 더 이상 으로가 아닌 다운 스러운 목사가 되는 길을 선택하자.

 

계인철 목사 / 광천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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