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은 무한경쟁시대 속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고 무조건 이기기 위해 돌진하고 있는 현대인의 표상입니다.
현대의 많은 목회자들이 어떤 면에서 “동역자”가 더 무서운 목회 환경 속에서 자신의 소명과 사명 그리고 현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현대판 야곱과도 같습니다. 야곱의 생애는 크게 얍복 나루터를 건너기 전의 전반부와 건넌 후의 후반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의 생애에 나타나는 목회적 교훈을 살펴봅시다.
1. 야곱은 아주 치열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쌍둥이 동생으로 태어난 야곱은 형 에서로부터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탈취했고,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그는 경쟁하고 다투며 자신의 성공과 목표 달성을 향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하며 달렸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 피신한 후에도 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무서우리만큼 참으면서 견뎠습니다. 그렇기에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항상 긴장하며 평안이나 기쁨, 보람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도망치는 도중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 벧엘의 제단을 쌓으며 자신의 생애를 의탁하기도 했지만 그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며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라도 정당화 될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았습니다.
속고 속이고, 가해자가 되면서 동시에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한쪽으로는 얻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잃어버리는 끊임없는 물 퍼담기에 더 이상 탈출구가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귀환의 길을 나서게 됩니다.
야곱이 나중에 자신의 생애를 돌이켜 보면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야곱은 자신의 생애가 “험악한 인생”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창 47:9). 당신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때 어떠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 자신의 인생이 어떠했노라고 고백하길 원하십니까?
2. 야곱은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에서에게로 이끄시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도록 하십니다. 재물도 자존심도, 어쩌면 가족까지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야곱이란 이름의 뜻은 “꼬부라졌다”입니다. 즉 꼬부라진 손으로 계속 긁어모으고, 끌어안으며 소유지향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게 됩니다. 언젠가 놓을 수밖에 없는 것을 부등켜안고 있느라고 정말 붙잡아야 할 것을 놓치고 있던 야곱에게 꼭 붙잡아야 할 것을 붙잡도록 모든 것을 놓게 하시는 하나님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당신에게서 뭔가 떠나는 것이 있다면 그 대신 진정으로 잡아야 할 것을 잡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하면 안될까요? 눈앞에 오고 가는 번잡스러운 것들로 인해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께로 향하지 못했다면 이젠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곳저곳 가야 할 곳도 많고 만날 사람도 많았다면 이젠 조용히 하나님을 홀로 만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모든 인간을 결국 하나님 앞에 홀로 서게 됩니다. 언젠가는 그 때가 옵니다. 생전이 아니라면 사후에라도 반드시 옵니다.
그러나 그 때는 너무 늦어버릴 것입니다. 더 이상 늦기 전에 하나님과 홀로 만나는 거룩한 대면(divine encountering)의 기회가 있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하프 타임에 거룩한 대면의 시간을 갖습니다.
인생 하프 타임은 꼭 나이에 따라 오는 것이 아닙니다. 가능하면 얼른 하프타임의 기회를 갖는 것이 좋습니다.
3. 야곱은 그와 싸워주신 하나님과 씨름하였습니다.
하나님과의 씨름, 매우 특별한 사건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과 싸워서 이기다니요. 인간이 하나님을 이길 수 있을까요? 인간의 종교는 그렇게 말합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니까요. 그러나 인간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된 일입니까? 가만히 보십시오.
문장의 주어가 누구입니까? “어떤 사람이”(창 32:24). 주어가 야곱이 아닙니다. 야곱이 싸웠고 이겼지만 야곱이 주어가 아니라 “그 사람”이 주어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싸워서 이긴 게 아니고 그 사람이 싸움을 걸어왔고, 짐짓 져주었고, 야곱으로 이기게 해주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 오셨고, 그를 얍복 나루터에 홀로 남겨두셨고, 그를 붙잡고 싸움을 걸어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로 이기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승리집착형으로 살지만 진정한 승리를 얻지 못하고 결국은 패배감에 사로잡혀 발버둥치는 인간에게 승리를 맛보게 하심으로 승리집착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의 가치와 전망을 갖도록 해주시는 하나님의 치유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찾아오시어 씨름을 청하실 때 주저하지 마시고 하나님 손에 붙잡히기 바랍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하나님을 붙잡기 전에 당신에게 선택적 관심(elective concern)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당신을 찾아오시고 당신을 붙잡아 당신으로 이기게 하시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4. 야곱은 새로운 이름을 얻었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네가 지금까지 어떤 인간으로, 무엇을 위해,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느냐는 물음입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이름을 주십니다.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즉 하나님께서 져주심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도록 새롭게 해주셨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름을 실제로 바꿀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같은 이름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새로워집니다. 우리의 우선순위가 달라지고 목적과 꿈이 새로워집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추구해왔던 꿈들 너머에 있는 큰 꿈을 바라봅시다. “꿈 넘어 꿈”을 보는 것이 인생 후반전을 맞이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야곱입니까? 이스라엘입니까? 무슨 이름으로 불리기를 바라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이스라엘이라 부르기 원하시는데 나는 여전히 야곱의 인생을 산다면 안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신다면 우리는 이스라엘이 되어야 합니다.
열정과 성취로 점철되었지만 그만큼 갈등과 고뇌도 많았고 위기도 많았으며 온갖 우여곡절을 다 겪은 야곱. 자신의 노력과 투쟁의 결과로 얻어낸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시어 그에게 약속을 주시어 서원하게 하시고, 막막할 때 소망을 주셨으며, 홀로 있을 때 찾아오시고, 두려워 할 때 힘을 주시고,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참아 극복하게 하시고,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을 때 용기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통해 복된 사역의 길을 여시기 원하십니다. 비록 잠시 잠간 동안의 고단함과 답답함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당신을 지켜보고 계심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이명희 교수
침신대 신학과(실천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