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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초대교회의 본고장 ‘터키’로!-5 (끝)

교회 수호에 홀로 분투한 비잔틴의 최후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이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때 완공되어서 테오도시우스 성벽이라 불리워진다. 오늘날에도 잘 보존되어 있어 누구나 성벽에 올라 과거 성벽의 웅대함을 체험해 볼 수 있다. 파노라마 박물관 앞에 위치하고 있다. 아래 그림은 14세기 콘스탄티노플의 모습.

 

참 어리석은 전쟁이었다. 교회가 더 이상 교회가 아니었다. 예수님이 보여 주신 모습과 성도들에게 요구하셨던 것은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이었다. 그런데 교회는 제도화 되고, 이슬람에게 성지를 빼앗기고, 하다하다 안 되니 기독교 국가를 멸망시킨 것이다.

 

성 소피아 교회에 가면 2층 갤러리에 단돌로(Henricus Dandolo)의 무덤이 있다. 단돌로는 베네치아 총독으로 1204년 제 4차 십자군 원정에 나선 라틴 기사들을 부추겨 같은 신앙을 갖고 있는 기독교 국가를 멸망시킨 장본인이다.

 

 

단돌로는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후 엄청난 세금을 거둬 베네치아로 가져갔으며, 성 소피아 교회에 있던 성물과 성상도 찬탈해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성당을 꾸미는 데 썼다. 1205년에 죽자 자신의 무덤을 소피아 교회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 그러나 1261년 비잔틴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다시 탈환해 단돌로의 석관묘를 파헤치고, 그의 유골은 거리의 개에게 던져 줬다.

 

몽골이 세력이 쇠퇴하기 시작한 13세기 말 오스만 족장으로 한 터키족의 일파가 대두해 소아시아의 비잔틴 영토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오스만의 아들 오르한은 1326년 부르사를 공략하고 이곳을 수도로 삼았으며, 그의 아들 무라트 1세는 유럽 측의 아드리아노플(, 에드리네)를 빼앗았다.

 

이후 동로마 제국은 콘스탄티노플이라는 도시 국가만 남기고 모두 오스만 터키에 의해 포의 된다. 그리고 마침내 1453년 메흐멧 2세에 의해 콘스탄티노플도 멸망하게 된다.

 

이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이 성은 3중 성벽으로 성벽 두께만 50m에 이르렀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대단한 대포가 있어도 뚫리지 않았다. 또 하나는 골든혼 지역은 바다로 철로 만든 쇠줄이 있어서 배가 이 지역에 들어서려 하면 모두 박살났다.

 

그래서 오스만 터키는 리멜리 히사르 성벽을 만들어 모든 병기고를 모아 놓고, 밤 사이에 산에 길을 내어 통나무로 소가 사람이 대포를 끌고 산을 넘어 배를 골든혼 바다 앞에 뛰어 놓는다. 그러자 콘스탄티노플을 지키던 병사들은 기겁을 한다. 드디어 오스만 터키의 양동작전(동쪽과 서쪽)이 시작됐다.

 

하지만 성벽이 쉽게 뚫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술탄이 병사들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장 높은 성루에 오스만 깃발을 꽂는 자에게 모든 것을 주리라.” 치열한 전투 끝에 터키군 한 용사가 성루에 오스만 깃발을 꽂는다. 그러자 콘스탄티노플을 지키던 모든 병사들은 겁을 먹고, 전투력을 상실한 채 도망친다.

 

이렇게 하여 오스만 터키에 의해 1000년을 지켜온 기독교 제국 비잔틴이 멸망하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기가 꺾인 병사는 결국 싸움에서 질 수밖에 없다는 것과 같은 기독교 국가였던 서유럽 국가들이 도움을 주지 않아 비잔틴 제국이 역사 속에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된다.

 

엄 폴 선교사 / 침례교해외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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