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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종교와의 대화”에 대한 침례교회의 견해 평가(1)

Analysis of Baptists’ Views on “the Dialogue with Other Religions”


들어가는 말

오늘날 우리는 다원주의 상황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역사 이래로 다양한 종교가 지구상에 존재해 왔지만 다원주의 상황이 특별한 주목을 받거나 신학적인 주제가 된 것은 최근의 현상이다.

종교사회학자인 피터 버거(Peter Berger)는 오늘날의 시대를 종교 백화점 상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종교는 마치 상품처럼 비교 전시되고 있고 고객들은 자신의 취향과 상황에 적절한 종교를 상품처럼 선택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종교다원주의 상황에서 다양한 종교의 공존을 부정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태도이거나 사회적 부적응의 표시로 보고 있다. 이런 시대에는 피할 수 없는 갈등이 드러나게 된다. 세속 세상은 종교들을 향해서 공존하라고 요구하고 있고 종교 그 자체는 자신의 독특성과 차별성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탄생하는 기제가 대화이다. 종교다원주의 상황에서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문제는 어떤 대화를 어떻게 하는가라는 것이다. 오랫동안 복음주의 그룹은 타종교와의 대화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이런 부정적 태도는 지금도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점차 복음주의 내에서도 대화에 대한 개념 자체를 확대시키면서 타종교와의 대화에 대한 다양한 제안들이 등장하고 있다. 침례교회는 일반적으로 복음주의 신학을 따라가고 있지만 침례교회 안에서도 다양한 신학 조류가 존재하면서 다양한 반응들이 등장하고 있다.

본고는 타종교와의 대화에 대한 침례교회들의 견해나 반응을 연구해 보고 이를 분석 평가하는 것이 목적이다. 본고에서 의미하는 침례교회의 견해는 침례교회만이 독자적으로 주장하는 견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침례교회가 아닌 타 교단이나 타 기독교 그룹에서 제시된 의견일지라도 침례교회 그룹에서 수용하는 경우 이를 침례교회의 견해 안에 포함시키는 방법으로 접근하겠다. 침례교의 종교 신학자들, 특히 존 뉴포트(John P. Newport)의 견해를 중심 연구대상으로 분석해보고 침례교 신학자들이 수용하는 타종교와의 대화에 대한 복음주의의 견해를 살펴보겠다.

그리고 세계교회협의회(WCC)와 가톨릭의 종교간 대화 평의회(Pontifical Council for Interreligious Dialogue), 세계복음주의연맹(WEA)이 공동 발표한 보고서인 다종교 세계 속에서 기독교인의 증거”(Christian Witness in a Multi-Religious World)를 분석, 비평해 보겠다.

이 보고서는 침례교 세계연맹의 신학과 선교 분과”(Mission, Evangelism and Theological Reflection, METR)에서 강력하게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표현되었다. 마지막으로는 대부분의 복음주의 그룹에서 수용하고 있는 타종교와의 대화에 대한 견해들을 분석 비평해 보도록 하겠다.

타종교와의 대화에 대한 견해는 기본적으로 대화 자체의 개념과 목적, 대화를 위한 지침, 기본 전제, 태도들을 모두 총괄하는 의미로 사용하겠다.

 

1. 종교 다원주의 세계와 타종교와의 대화가 부상하게 된 배경

종교다원주의 상황이 오늘날 갑자기 화두가 된 배경을 살펴보겠다.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은 종교다원주의 상황은 사실 서구 기독교권 내에서 느끼는 문제의식이라는 점이다. 일부 이슬람을 제외한 나머지 비기독교권에서는 오랜 역사 동안 다양한 종교가 함께 공존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다만 기독교는 처음부터 강력하게 타종교에 대해 배타적인 반응을 보여 왔다. 중세 기독교왕국(christendom) 시대를 거치면서 타종교를 철저히 배제했던 서구가 근대에 들어서자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서 타종교들과의 공존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변했고 이에 대해 충격을 느끼는 것이다.

다양한 요인들 중 지적할 수 있는 첫 번째 요인은 세속화 현상이다. 더 이상 기독교가 유일한 진리라는 담론이 수용되지 않게 된 것이다. 특별히 근대시대(modernism)가 지나고 후기근대시대(postmodernism)에 진입하게 되자 세속화 현상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과학주의가 지배하던 근대시대에 기독교는 일부 어려움을 받기도 했지만, 근대시대까지는 절대성에 대한 이해가 지배적이었으므로 기독교도 하나의 절대 담론으로 수용이 되었다.

그러나 후기근대시대에 들어서자 절대성을 지지하는 담론은 고집스러운 배타주의자들의 목소리로 치부되었고 상호 공존을 주장하는 상대성이 시대의 담론이 되었다. 상대성에 대한 강조가 종교다원주의 상황이 서구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하겠다.

두 번째 요인은 범세계적인 이민현상이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난 나라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전에 이민은 주로 유럽에서 신대륙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제화 현상이 대두되고 1960년대 유럽 국가들이 이전 피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개념으로 이민의 문호를 열자 전 세계적인 이민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태어난 국가 외부에 살고 있는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범세계적인 이민현상은 종교 간 경계를 무너트렸다. 더 이상 불교는 동남아시아에 국한된 종교가 아니다. 아시아인이 이민 간 모든 지역에 불교 사원이 건립되었다.

힌두교도 인도 대륙에 국한된 종교가 아니다. 인도인들이 대거 이민한 피지라든지 인도네시아의 발리 등지가 힌두교 지역으로 변화되었다. 유럽과 북미주를 향한 2/3 세계인들의 대량 이민 현상은 필연적으로 종교다원주의 상황을 만들게 됐다.

세 번째 요인은 이슬람의 지리적 팽창이다. 20세기를 거치면서 이슬람은 6 대륙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특히 유럽에서 이슬람의 성장은 괄목할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위협적인 존재로 등장하고 있다. 물론 이민 현상과 중복되기는 하지만 이제는 유럽에 정착한 이슬람들의 급속한 자연증가 현상이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북미주에서도 흑인 무슬림은 미국 내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이는 종교가 됐다.

마지막 요인으로 지적할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발달이다. 이전에는 한 지역의 상황이 다른 지역에 전파되기 어려웠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 지역 내의 문제들에만 관심을 보이면 됐다. 그러나 오늘날 매스컴과 커뮤니케이션은 아프가니스탄의 과격파 이슬람 집단의 행동과 인도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힌두교 축제 사건들을 실시간으로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소외되고 고립되어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는 우리의 의식과 인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이런 변화를 가장 충격적으로 느낀 지역이 서구 기독교권이었다. 종교다원주의 학자인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Wilfred Cantwell Smith)는 이런 변화를 3의 만남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기독교 역사를 천년 단위로 평가해 볼 때 처음 천년 동안에 기독교는 헬라 문명과의 만남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로 인해 비로소 신학이 발달하게 됐다.


이현모 교수

침신대 선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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